합성에는 단순히 집합적인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이어지지 않고 병렬 관계가 되거나 충돌·대립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거나 뜻 자체를 없앨 수도 있다. 더욱이 오늘날의 환유적인 시들은 행의 대립이나 병치를 통해서 미적 정서의 효과를 배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낱말과 문장들이 충돌하거나 대립하도록 배열함으로써 어떤 뜻을 없애는 시도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충돌이나 대립은 말들끼리 전혀 이웃 관계가 없어 도저히 이어놓을 수 없는 말들을 연결고리 없이 붙여놓음으로써 새로운 의미나 미적 효과를 창출하기도 하고 의미를 무화시키기도 한다. 이때 낱말이나 문장들끼리는 연결고리가 없지만 정서적으로 전류가 흐른다.
입술/악사/구름을 소재로 서로 아무 연결고리 없이 배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름은 침묵을 연주하는 악사 입술에서 피어나는 꽃봉오리 언니는 스물에 집을 나갔다
주어진 세 낱말은 언뜻 앞 뒤 연결고리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낱말들은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이어진다. “언니는 떠돌이 악사를 사랑했다. 그래서 스물에 집을 나갔다. 그 예쁜 나이에…….” 이렇게 해놓으니 낱말들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걸 알 수 있다.
[연습 8] 예시 ①을 참조하여 다음 말들을 행(연)과 행(연) 사이에 침묵이 흐르도록 문장을 만들어 배열해보시오. 그러나 발전적으로 이어지도록 하시오.
① 바람/식민지/시인/몽유병
바람은 나의 식민지 몽유병은 시인의 영토
② 휴전선/성냥 꽃/퇴적된 시간
③ 목련/단풍/계단/눈빛
④ 말하는 돌/질주/무대/의자/마녀
시는 의미를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시는 대상에 대한 정조(情調)이며 언어의 미적 배열이기 때문이다. 합성을 통해서 마치 풍경 속을 산책하듯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사색과 사색 사이, 혹은 말과 말 사이에 여러 색깔의 뉘앙스가 나타나 아름다운 언어가 만들어진다. 이때 시는 어떤 뜻도 없어도 된다. 시는 아름다운 느낌만으로 충분히 다가오면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어 수집가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은 여러 곳이나 시간에서 수집해 온 구절이나 말, 리듬 등을 무작위로 갖다 붙이고 연결하고 짜 맞춘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들끼리 얼마나 상승작용을 하느냐이다. 무작위로 수집한 구절이나 낱말들을 짜 맞추어 미적 효과가 나타나면 그 말들은 풍성한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초보자일 경우 자신을 시의 주인공으로 하여 낱말이나 문장을 배열하면 보다 쉽게 그 문장이나 말들이 만들어내는 미적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 친구, 사회의 분위기를 끌고 와서 쓰면 자신의 뜻도 담을 수 있다. 먼저 낱말이나 문장들을 조사하고, 그 다음에 그 낱말이나 문장들을 정서적으로 풍성한 느낌이 나도록 배열하면 시가 된다. 그것이 콜라주이다. 말이 안 돼도 느낌만으로 말들을 합성하거나 나열할 수도 있고 이야기체로 엮을 수도 있다.
■ 다음은 거리에서 조사한 단어나 이미지이다. 이를 토대로 시를 엮어보겠다.
① 조사한 자료
새들 같은 아이들이 가끔 인사동으로 몰려온다. 인사동은 그림들이 많이 전시된다. 외국인들도 많다.
시
새들이 가끔 인사동으로 내려와 그림 속을 날아다니고 외국어로 칙칙거리는 부채들이 팔랑이며 걷는 오후 일곱시
② 조사한 자료
계절과 계절이 다툼하는 날씨 한 우울이 장마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뚝, 뚝, 뚝
시
겨울이 가을 속에서 웅얼거린다. 우울이 흘러내린다. 나무에서 구름에서
①의 경우, 단순한 사실적 조사에서 시작하였지만, 말들끼리 합성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 난다. 새 같은 아이들이었는데, 그것을 새들이 인사동으로 오는 것으로 했고, 외국인이 많다는 것을 ‘외국어로 칙칙거린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장마를 우울로 바꿔 ‘흘러내린다’로 썼다. 그리고 그것들이 합성하니, 새로운 느낌이 나는 인사동이 됐다. 이는 ②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②는 조사한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도 시가 된다.
[연습 9] 다음의 낱말이나 정서적으로 합성된 말들로 한 편의 시를 쓰되 미적 정서가 느껴지게 하나의 주제로 배열하시오. 시에서 주제란 통일된 정서라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① 소나 돼지가 반체제 인물이다 ② 개들은 뒷골목을 다니며 망명자 행세를 한다 ③ 폐가가 허물어지는 목소리 ④ 종말론자 ⑤ 영혼을 돈에게 팔다 ⑥ 우체통처럼 빨개진다 ⑦ 시부렁대는 시계 ⑧ 오늘은 자꾸만 뾰족하다 ⑨ 나의 대륙에 서다 ⑩ 밤마다 야근을 하는 달은 시급이 얼마나 될까 ⑪ 나의 고민 때문에 자구가 무거워지다
[연습 10] 다음의 자료를 지시대로 한 다음 그것들을 앞뒤 말들이 충돌하게 합성하되, 자신의 시의 주인공으로 삼으시오. 모든 자료를 다 이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① 옷이 투정하는 소리를 적으시오. ② 상식은 빵집 아줌마 통장에 있어. ③ 정신병동에서 도망쳐 온 바람 ④ 창문의 표정을 읽으시오. ⑤ 책이 걸어오는 말은? ⑥ 자신이 써놓은 글씨의 생각은? ⑦ 백지의 고뇌는 무엇일까요? (예: 고독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⑧ 절망이 목 뒤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⑨ 어머니인 척하는 볼펜에 대해서 답을 해보시오.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1.13.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