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인상적인 삶의 궤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37인의 마지막 메시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그 무엇’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미(美)를 추구하고 현실문제에도 눈 감지 않았던 문화예술인,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더 큰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어준 독립운동가, 사회활동가, 지식인 등 우리 역사 속 인물 37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담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 생을 살다간 인물들이기에 인생 끝자락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낳는다. 이중섭, 김영랑, 이태석 신부, 성철 스님, 전태일, 신채호, 전봉준, 안중근 등 저마다 추구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우리 가슴에 뭔지 모를 먹먹함과 뜨거움을 전해준다. 직접적인 유언이나 자신의 작품, 묘비명, 인생 전반에 오롯이 새겨진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살펴보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그 무엇’을 들여다본다.
인생의 향기를 간직한
37인이 전하는 인생 수업!
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美),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眞),
어떻게 살 것인가(善)?
문화예술인, 독립운동가, 사회활동가, 종교인, 지식인 등 범상치 않은 삶을 살다간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의 인생 끝자락을 더듬어본다. 왜 그토록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37인이 그 주인공이다.
굴곡진 우리 역사만큼이나 평탄치 못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끝내 자기 소신과 추구하는 이상을 놓지 않았던 인물들이기에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역시 진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중섭, 윤이상, 백석, 이상 등 문화예술인, 백범 김구와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 전태일과 윤상원 등 사회활동가, 이태석 신부와 법정 스님 등 종교인 및 이황과 정도전 등 지식인 등을 두루 담아냈다. 그들의 인생 궤적을 가볍게 살펴보고 유언이나 작품 등으로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주목해 본다.
애틋함과 미안함,
뜨거움이 느껴지는
그들의 치열한 삶
그 속에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는 어떤 울림이 있다
이 책에 담긴 인물들의 치열한 삶과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있노라면 뭔지 모를 뭉클함과 애틋함, 미안함과 뜨거움이 절로 올라온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는 듯한 어떤 울림도 느껴진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보여주는 귀감이 되기도 하고, 일상에 치여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37인의 인생이 모두 만만치 않고 크게 다른 만큼 그 울림의 진동과 파장도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전달될 것이다. 더 큰 울림이 느껴지는 곳에서는 좀 더 머물며 그 잔잔한 여운까지 온전히 느껴보면 좋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시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하거나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가슴 아파서, 미안해서 그리고 감동해서 말입니다.
치열하게 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말이 결코 가볍거나 단선적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 한마디의 의미와 맥락을 살피는 작업을 하면서 저 역시 몇 번이나 울컥하고 누가 볼세라 애써 울음을 꾹꾹 속으로 눌러 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나오면 그대로 흘리시고, 분노가 일면 의자 팔걸이라도 한 번 치시고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면 웃으십시오. 저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이 책에 실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가장 잘 만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 p.6
이중섭이 죽고 며칠 동안 그의 시신은 방치되었다. 돌보는 이 없고 찾는 이도 없는 무연고자였기 때문이다. 3일 뒤 친구인 시인 구상이 찾아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다음 뼈의 절반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의 가족에게 보냈다.
가족에게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처절하게 그림을 그려왔던 이중섭은 한 줌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삶을 갈아 붓으로 찍어 옮긴 소, 닭, 꽃, 아이들은 오늘도 쾌적하고 널찍하고 품격 넘치는 공간에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황금의 광채를 발하고 있건만.
--- p.18
지금 당신이 호흡하는 공기 속에서 자유의 싱그러움을 느낀다면 한번쯤 당신은 시인 김수영을 떠올려야 한다. 그 자유로 건너오는 강 어느 지점엔가 ‘하…… 그림자가 없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풀’이 징검다리 되어 놓여 있을 테니.
--- p.24
동베를린 사건 이후 조국의 거부로 살아생전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했던 현대 음악의 세계적인 거장 윤이상은 2018년 3월, 세상을 떠난 지 23년이 지나서야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다. 거장의 영원한 안식처임을 알리는 너락바위에는 ‘처염상정(處染常淨)’ 네 글자가 새겨진다.
‘연꽃같이 맑고 깨끗하여라’라는 고인에 대한 후인들의 기억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삶을, 그의 인품을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그의 음악을 ‘연꽃 같은 맑고 깨끗함’으로 기억한다는 뜻이다.
--- p.30~31
서울 성북동에 있는 절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다. 요정 주인인 김영한 씨가 10년 동안이나 법정 스님에게 절로 시주하겠다고 끈질기게 요청해 1995년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대법사’라는 절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7년 시주자 김영한 씨의 법명 ‘길상화’를 따서 ‘길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길상사는 7천여 평의 넓이로 기부 당시 시가가 1천억 원대였다. 당시 한 기자가 김영한 씨에게 그렇게 큰 재산을 기부하는데 아깝지 않느냐 물었다.
이때 김영한 씨가 한 말이 “그까짓 천 억,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였다. 백석, 김영한 그리고 백석의 시. 더해, 백석의 나타샤. --- p.33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