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나’(Manna
for five days) (681)
주님의
사랑 받는 배터리 선교사!..... ⑮ -1-
Ⅰ.
2,500만 원짜리 선교사(심실제세동기)
한국에
들어와 서울연회를 참석하고 모스크바에 들어와 사역에 임하는데 밤에
잠을 자려면 숨이 가빠서 애를 쓰게 되여 2년 전에 해야 될 수술을 미뤘더니 악화되어 가는 줄 알고 귀국하여 수술을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6월로 선약을 하고 온 감리교 C.I.S. 선교사대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준비관계로 대회를 주관할 지역에 대표가 없어는 아니 되겠기에 끝난 후에 일행과 동행하여 나가려고 마음먹고 대회를 맞이했다.
본부선교국위원장이신
권용각 감독님과 실무자인 이원재 부장이 참석하고 러시아에 파송 받은 8명, 우크라이나 장종일
선교사와 그리고 러시아감리회 소속 현지목회자들이 옵서버로 참석하여 광림교회에서 2박 3일간의
대회를 마치고 다음주일(6월 17일) 제2회 목사
안수 식을 준비하는데 밤에만 어렵던 호흡이 주간에도 자주 찾아왔으나 신학교 교수협의회 교수들이 방문하게 되어 선교지를 비울 수가
없었다.
주일
11시에 로고 세르게이 전도사, 마테이바 이라이다 전도사 2명의 목사 안수례를
집행하였다.
주례는
권용각 감독 보좌에는 류지열 선교사, 이원재 목사가 협력하여 성대히 거행하여 러시아 감리교단의 현지 목사
5명이 되었다.
이어서
수요일부터는 현지 목회자 사모들이 목회 협조를 잘 못하여 나의 전 임지 원천교회 박온순목사에게 특별부탁을 한 터라 모든 목회자 사모들을 소집하여
한 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려 고대 안암병원으로 직행했다.
한
주간 동안 정밀검사를 했으나 2년 전에 심장에 이상부위가 악화되어 수술로는 어려우니 계속 약으로
치료하라(약 먹으며 지내다가 죽으라!)기에 6일 만에 약을 싸 들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오전에 선교국 총무와 장광영 감독회장님께 귀임 인사차 찾아갔더니 감독회장님이 호통을
치셨다.
“유선교사!
너 그대로 들어가면 죽어! 내가 모스크바까지 가서 장례식을 치르란 말이야?”
나는
마음속으로 “누구는 가고 싶어 가나? 병원도 소개해 주지 않으며 그런 말을 나도 할 수
있다.”
멀쑥해져서
총무 앞에서 불평을 하고 나왔더니 다음날 이요한 총무가 나를 백방으로 수소문 하였다기에 이 총무께 전화를 했더니 감독회장님의 선처로 천호동
“부활내과”에 입원하라는 전갈을 받고 급기야 토요일인데 입원을 했다.
금란교회
장로님이 원장으로 병원의 분위기가 사뭇 기독교식으로 목회자들께는 무료로 헌신하여 돌보아 주는 병원이었다. 한 주간을
누워서 주사를 맞으며 요양을 하는데 딸들의 성화가 대단하다. 이유인즉슨 심장치료 전문병원도 아닌데 거기 있는 것 보다
다른 병원에 가서 재진을 받아 보라는 열화 같은 권고로 타 병원의뢰서를 들고 퇴원하는 길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먼저
병원의 치료를 마치고 귀임 인사차 감독회장님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심장병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최고야! 고재영 목사도
시기를 놓쳐 위급한 중에 그 병원에서 수술하여 나았지!”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찾아 갔으나 환자들이 너무 많아 진료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초진을 하고 재진 날짜가 한 달 후에 잡혀서 조급히 임지로 들어가야 할 처지에 방법을 강구하여
원목실을 찾아 알아보았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재진 날짜를 적은 신청서를 들고 신림동 딸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평소에
어쩌다 보이던 병원! 멀리서 보기에는 한가해 보이기만 하던 병원을 가까이에서 보니 왜 렇게도 붐비는지!
환자들이 넘쳐서 입원실이 없어 예약하며 기다리는 의료계를 체험하면서 지난 60년간 병원 한 번 가지 않도록
건강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침대에 쉬다가 답답하여 밖에 나와 좁은 담장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맥이 빠지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방안에
있던 딸이 ‘쿵’하는 예상치 못했던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인근에 사는 언니에게 연락을 하여
3자매들이 앰뷸런스를 부르고 급기야 경적을 울리며 한강 성심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강남의 남쪽에서 병원
기록이 있는 안암동 고대병원으로 북동쪽을 향하여 시가지를 “비켜! 비켜! 경적을 울리며 달려가
응급실에 내려서 의료진의 진료를 받았다. 전 주에 입원해서 돌봐 주던 주치의 도움으로 8층
입원실로 옮겨서 부정맥 전문의 김영훈 박사와 심장병 전문의 노영무 박사 두 전문의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과정의 경로를 밟고 검사를 거쳐서 최종결론에 이르렀다.
불규칙적인
부정맥으로 보통 때는 잠재해 있다가 게릴라식으로 나타나 쓰러트림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서는 고도의 박동기를 부착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제세동기”는 미국에서 발명한지 몇 년 안 되고 수입하기 시작한지도 근간이라 아직 의료보험혜택도 받지 못하여 고액을 지불해야
했다. 2,500만원 상당의 기계 값과 수술비를 합하면 고국에 땅 한 평 없고 집 한 채 없는 선교사로서는 거금의 비용을
충당할 길이 막연했다.
몇
일간을 기도 중에 있었는데 병원 측에서는 수술 일자를 잡자고 성화다. 그렇다고 외톨이 인생에 목회자이면서도 성도 한 사람
없는 선교사가 의논할 대상이 없었다.
생각다
못하여 선교사의 직속기관인 선교국 이원재부장과 소속교회인 신당제일교회 장학일 담임목사에게 연락하여 의논하고 일단 수술을 하기로 하여 일자를
잡았다.
마침
문병 왔던 원천교회 박온순 목사와 박진우 전도사 부부가 딱한 사정을 보고 감신 대학원 재학 중인 동급생 중에 언론계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말해
보겠다며 돌아가 며칠 후에 ‘기독교 타임즈’ ‘국민일보’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기독교 C-3 TV’에 기사화
되고 방영되니 여론이 확산되어 은행구좌로! 직접 병원으로! 도움의 손길들이 줄을 이어 병원비를
청산할 수가 있었다.
70여
일간의 입원 수술을 마치고 2,500만원 상당의 제세동기를 부착하고 약봉지를 검어 쥐고 건강을 되찾아 건강하게 남은
생애를 살아 갈 소망을 품고 퇴원하여 장녀 안나의 차를 타고 신림동으로 돌아와 둘째 딸 미라네 집에서 몸을 요양하며 귀임을 준비하고 있던 중
선교국 이원재 부장으로부터 기쁜 연락이 왔다.
감리교세계선교협의회에서
주관하여 금년에 최초로 선교대상을 시상하는데 내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재 감리교 선교사가 300여명 파송되어 나보다 먼저 나가서 사역도 더 많이 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상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사선을 넘어 수술하고 새로 탄생한 나에게
위로를 위하여서인지?’ ‘기독교러시아감리교단을 만든 공로인지?’ 여하튼 과분한 상임엔
틀림이 없었다.
11월
2일 인천숭의교회에서 세계선교협의회가 주최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님이신 장광영 감독회장님으로부터 ‘선교대상
패’와
상금 200만원을 부상으로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이 상은 300여
선교사에게 주는 상을 내가 대표해서 받았으며 상금은 나의 치료비로 보태고 싶었으나 선교사 모두의 희망사항인 ‘감리교선교복지센타’ 건립을 위하여 종자돈으로 선교국에 기증하고
말았다.
연중
연회에 보고 차 귀국한 선교사들이 고국에 들어와 거처할 집이 없어 떠돌이 “부머”같이 눈치를 보며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 다가 눈물을 먹음고 임지로 돌아가는 아픔이 해소되고 평안한 안식처가 하루 빨리 건립되기를 소망하며 기쁜 마음으로
11월 6일 모스크바로 귀임하였다.
2016,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