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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일(주일) 오전예배
말씀 : 마태복음 20:20~28
제목 : 섬기는 자가 되라!
도입 : 섬김
기독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섬김’이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원래 하인이 주인을 섬길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조선시대에 보면 종이 주인을 모시고 수종드는 것을 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용어로 섬긴다는 것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길 때 사용을 많이 합니다. 혹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섬길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기독교 용어가 이렇게 사용이 된 것은 주님이 섬김을 보여주었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 중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약한 성도들 보살피고 돌보는 일을 합니다. 다 섬김입니다. 교외에 오래된 성도가 새가족을 섬기고 봉사합니다. 이것을 섬긴다고 합니다.
오늘 이 섬김의 신앙에 대해 은혜를 받고 우리도 섬기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후반부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절하며 무엇을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은 요한과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절하고 무엇을 구하였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왕으로 앉아서 통치하실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주님의 양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서 주님의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통치를 하는 것을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후에 심판주가 되셔서 온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또 심판자가 되실 때 주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형제이며 물고기 잡는 아버지 세베대를 떠나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가 됩니다. 혈육으로는 제자들 중에 제일 가까우니 주님의 좌, 우편에 앉혀달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이 2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오해하는도다, 나의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마실 잔은 십자가에 죽음입니다. 주님이 체포되셔서 채찍에 맞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인데 너희도 그렇게 죽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뭘 알고 말을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잘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 가운데서 죽임을 당하시는데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요한은 그 현장에서 목격을 했습니다.
23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훗날 주님이 죽으신 후 제일 먼저 야고보가 순교합니다. 그리고 요한도 복음선교 하다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고 결국 죽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머지 10제자들이 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두 형제의 말을 듣고 분노하고 길에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길 한복판에서 ‘너희들이 다 먹겠다는거냐?’ 난리가 난 것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주님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25~26절에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은 자기 임의대로 권세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 치하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황제가 있고 그 밑에 호민관 즉 의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방과 나라에 총독들이 있습니다. 질서가 분명하여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권세가 엄했습니다. 세상 나라는 집권자들이 권세를 부리고 권력을 행사를 합니다. 심지어 국민들에게 군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 성도는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높은 자가 더 섬깁니다.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맡으려면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교회에 집사가 되려고 하면 헌금도 해야되고 봉사도 해야 됩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에서 권사나 장로가 되려면 더 희생을 해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더 많이 돌아보고 더 많이 봉사를 하고 더 헌금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지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곳이 아닙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종이 되어야 합니다. 차량운행도 해야 됩니다. 주차 안내도 해야 됩니다. 교회 청소도 하고 심지어 헌금도 많이 내야 합니다. 만일 남전도회가 있는데 식사를 하러 갔을 때 밥을 사고 더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 직분자가 됩니다. 커피를 사고 밥값을 내고 희생하는 사람이 나중에 직분자가 되고 하지 아무것도 인하는데 누가 직분자로 세워주겠습니까!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이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섬기고 봉사를 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낮고 천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섬기고 돌봅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돌보고 케어합니다. 이것이 섬김입니다.
성경예화)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셨고, 주님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성찬식을 하시고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준비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베드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 스승이 어찌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가? 그리고 주님은 만왕의 왕이신데 어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내가 너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내가 너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러면 머리부터 발까지 다 씻어주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너희는 이미 목욕을 한 자이니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과 관계된 성도는 이미 깨끗해졌으니 먼지 묻은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준 후에 당부하셨습니다. [스승이 되고 주가 된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준 것으로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섬김을 말합니다.
섬김에는 꼭 물로 발을 씻어주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든지, 물질로 돕는다든지, 혹은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일 등이 다 섬김에 해당 됩니다. 성도의 필요가 있을 때 협조해 주는 것이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인자는 예수님 자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섬김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희생당하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가장 큰 섬김은 십자가의 섬김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섬김을 받지 않은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은 주님의 섬김을 받아 본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안입니다. 반면에 누군가 자신은 주님의 그 큰 섬김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그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섬기신 것은 ‘너희도 가서 다른 형제들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20:18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길로 예루살렘으로 가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 자신을 이방인에게 잡아 넘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19절에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 즉 로마인에게 넘겨져 온갖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채찍질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삼일이 다시 부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길에서 미리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길에서 대판 싸웠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높은 사람이 되는가 때문입니다. 그 발단은 요한, 야고보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그 아들 야고보도 섬기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합니다. 그리고 요한도 주를 위해 복음선교하다가 헌신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직 연단이 안 되어 그들이 주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높이 되려고 하다가 분쟁이 일어나고 그것도 길에서 대판 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국교회에서도 직분자 피택하여 안되면 교회 옮겨버리고 난리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많은 경우 피택하고 나면 시험이 많이 듭니다.
서로 높아지는데 관심이 있고 섬기는데는 관심이 적습니다. 많이 섬기고 많이 희생하면 당연히 귀한 직분을 맡게 되겠죠. 또 직분을 맡게 되면 더 많이 섬겨야죠.
예화) 손양원 목사
우리나라 위대한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경남 함안 출생입니다. 선교사의 전도로 아버지 손동일장로 등 가족이 전도되어 예수믿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전도사 때 부산 상애원에서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곳은 나환자 공동체입니다. 호주 선교사님이 세운 나환자 치료하는 공동체이며 또 교회였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가 목사 안수를 받고 여수 애양원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섬김으로 수고했습니다. 나환자들의 고름을 짜내주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목양하였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때는 신사참배 반대로 5년간 옥고를 치르고 해방이 되어서야 출옥을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좌우 사상대립으로 공산청년들에 의해 여수반란사건 때 두 아들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 공산청년을 양아들로 삼고 전도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이 목사가 되어 지금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 손양원 목사님은 6.25 때 공산군에 의해 잡혀서 총살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적대시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섬김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위대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 그런 목회자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이만한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을 섬김으로 주님의 명을 따라 다른 성도를 섬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이도 주님의 종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당부를 기억합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대로 우리도 섬기는 신앙이 됩시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도들을 섬길 수가 있습니까? 몸으로 헌신함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다른 약한 성도가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또 물질이나 작은 정성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힘들어 하는 성도가 있으면 도와주고 또 작은 정성으로 음식도 대접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몸으로 남을 도울 건강도 안 된다. 그리고 남을 도울 물질도 안 된다. 그러면 기도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몸이 가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도 섬기는 것입니다.
결론) 너희는 서로 섬기라!
섬김은 사실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가령 물질이 있는 사람이 물질로 섬기면 물질이 없는 성도는 몸으로 봉사하며 섬길 수도 있습니다. 서로 약한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다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