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0) - 얼갈이배추
한겨울 배추 못 구해 안달난 문 대감에 맹복이 귀한 얼갈이배추 올리는데…
“네 아비가 그런 변고를 당한 것은 오로지 네 아비 잘못이지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알겠지.”
땅땅땅! 문 대감이 판결하듯이 곰방대로 놋재떨이를 두드렸다.
맹복이는 문 대감 앞에 꿇어앉아 죄나 지은 듯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리 집 마부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나이 어린 너를 가엽게 여겨 거둔 것이니 열심히 하거라.”
맹복이 아비는 문 대감네 마부였는데, 말 뒷발질에 차여 석달을 누워 있다가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문 대감에게 빌린 약값에 인질 잡힌 맹복이는 대를 이어 문 대감네 마부가 됐다.
삼일장을 치른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제 아비를 곧잘 돕던 맹복이는 마부 일을 능숙히 해냈다.
하루 두번씩 말여물을 끓여주고 갈기 빗질도 빼먹지 않았다.
아비를 죽인 원수이지만 짐승이 무슨 앙심을 품고 그랬겠는가.
정작 문 대감네 마부로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동짓달이면 머나먼 남도 끝자락 해남까지 파발꾼마냥 후다닥 다녀와야 했다.
제주 부사를 칠팔년 지냈던 문 대감이 자리젓 배추쌈 맛에 중독된 탓이다.
아삭아삭한 배춧잎에 뽀얀 쌀밥을 한숟갈 놓고 그 위에 잘 삭은 자리젓을 얹어 볼이 터져라
와그작와그작 먹는 그 맛. 한양에 올라와서도 점심·저녁 하루 두끼 빠지는 날이 없었다.
초여름 서귀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오동통한 자리돔을 이년이나 삭힌 자리젓을
직접 공수해오는 정성을 들였다.
겨울이 오자 문 대감이 미치기 시작했다. 얼갈이든 봄동이든 쌈배추를 구할 길이 없었다.
궁리해낸 수가 땅끝 해남에서 배추를 구해오는 것.
해가 지면 주막에서 자고 날 밝으면 일어나 말 엉덩이가 찢어져라 채찍질을 해도
해남까지 가는 데만 닷새가 걸렸다. 맹복이가 배추를 구해 두 가마니를 만들어 말 등에 싣고
한양까지 올라오는 덴 거의 열흘이 걸렸고 대설이라도 만나면 보름이나 걸렸다.
받은 가마니를 풀기도 전부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 문 대감이 신이 나 가마니를 풀어 헤쳐보면
싱싱한 배추는 어디 가고 시래기뿐. 오는 새 얼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니 배추가 시래기가 될 수밖에.
이러니 문 대감의 미간이 펴질 날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자리젓은 맛깔나게 곰삭는데 겨울 쌈거리가 안 좋으니 가뜩이나 성마른
문 대감 성미가 시래기처럼 바싹 말랐다.
소한이라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문 대감은 맹복이로부터 받은 작은 보따리를 풀어보다가 기절할 뻔했다.
보따리 속 서너겹 젖은 천을 벗기자 꿈에도 그리던 싱싱한 얼갈이배추가 있는 게 아닌가!
문 대감이 아귀가 붙은 양 정신없이 먹어 치우니 그 귀한 얼갈이배추가 두끼를 가지 못했다.
문 대감은 아편쟁이가 아편장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듯 맹복이에게 매달렸다.
맹복이는 입을 다문 채 그저 먼 산만 바라보다가, 얼갈이 세 보따리로 문 대감에게 졌던 빚을
몽땅 탕감했다. 선친 약값으로 진 빚을 탕감한 후부터는 아주 값비싸게 문 대감에게 팔았다.
정신없이 얼갈이에 쌈 싸먹고 배가 불러오면 문 대감도 그제야 본전 생각이 났다.
“얼갈이 한단 값이 쇠고기 열근 값이라! 다시는 그놈의 얼갈이 먹지 않으리라!”
하지만 작심삼일이 아니라 이틀도 버티지를 못했다.
맹복이를 붙잡고 도대체 얼갈이를 어디서 구해오는지 물어봐도 맹복이는 여전히 벙어리
먼 산 쳐다보기다. 엄동설한에 싱싱한 얼갈이가 문 대감 입맛만 돋웠으랴.
부자들은 너도나도 맹복이를 찾았다. 얼마 후 맹복이는 문 대감네 마부 일을 때려치웠다.
사실 맹복이가 가져오는 얼갈이는 그 홀어미 밭에서 났다.
궁리궁리한 끝에 한겨울 얼갈이 재배법을 터득한 맹복이는 남향받이 산자락에 붙어 있는
초가삼간 앞마당 스무평을 초가을부터 틈나는 대로 파내려갔다.
네자 깊이로 땅을 파고 길가로는 흙벽돌을 모로 세워 구들길을 만들고 개울가 산비탈에서 구한
넓적한 청석을 평평하게 놓고 흙을 덮었다. 세상을 떠난 제 아비와 초가삼간을 지을 때
구들 놓는 법을 배워둔 게 일을 쉽게 만들었다.
너와 문짝에 한지를 바르고 들기름을 먹여 위쪽을 덮고서 아궁이 불을 지키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마침내 얼갈이배추 씨가 싹을 틔웠을 때 맹복이와 어미는 얼싸안고 울었다.
맹복이는 서너평씩 시차를 두고 씨를 뿌려 수완 좋게 얼갈이를 시장에 내다 팔 줄도 알았고,
마침내 나라님 수라상에도 진상했다.
큰 부자가 된 맹복이는 문 대감 말고삐를 잡는 대신 문 대감의 혓바닥을 꿰게 됐다.
[출처 ]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첫댓글 지금의 비닐하우스가 맹복이의 농법을 밴치마킹 한거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내용상은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픽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