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절집에서는 울력이라 불리는 자원봉사 산행이기에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바
포교를 위한 글이 아닌 산행 과정에서 일어난 일 들을 후기로 정리한 것이니
불편함을 호소하는 회원님이 안 계셨으면 합니다.]
반공일에는 비가 올 것이고 공일에는 눈이 올 것이니 미뤄야 하나 어찌 해야 하나
하늘을 보며 중중거리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주섬주섬 짐을 챙깁니다.
지난 3월 눈이 잔뜩 쌓인 서대 수정암에서 올랐다 가져다 드리기로 약속한
물품을 싣고, 여러 벌의 두꺼운 옷과 덥고 잘 이불도 한 채 챙겨 넣고는
오대산으로 달립니다.
거뭇거뭇 거리던 서녘 하늘의 해는 산 너머로 떨어져 어둠이 활개를 치는 거리를
나 홀로 달리며 오만 생각에 빠져 있다가 갈림길에서 너무 멀리 지나칩니다.
한 참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수고도 아끼지 않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 열한시를
넘어서고 나서야 오대산 하고도 월정사 아래 들머리에 다다릅니다.
짐승도 잠이 들어 있는 산 아래에서 나 홀로 잠을 잊어 소란스럽게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를 벗 삼으니 때 묻은 기둥 위 뿌연 가로등 불빛이 춤을 춥니다.
야심한 시각에 문지기 처사님과 여러 문답을 나누고 나서야 휑하니 불어대는
널따란 마당 한 자리에서 지쳐 늘어진 잠을 청하려 누우니 흐르는 물소리가
시끄러운 듯 별들이 귀를 막고 내려다봅니다.
이 번 길에 동행하려다 서울로 튀어버린 친구라는 녀석에게 ‘도착해서 잠을 청하려 하니
잘 자라.’ 는 말을 남기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슴푸레 잠이 들었는데 깨웁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참을 나누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귀여운 아기별이
귀를 막고 찡그리는 모습이 이해가갑니다.
찾아들던 잠이 멀리 달아나고 나서야 잘 자라는 말이 귓전으로 스며들게 만들어
여운이 되어 사라질 때쯤 곤한 잠을 청했는지 괘종 소리에 놀라 눈을 떠봅니다.
시간이 다섯 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니 여느 날 보다 반시간은 더 눈을 붙였고
지난 3월에 덜덜 떨었던 때와는 다르게 날이 많이 풀린 덕으로 따뜻하게 잤습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곳을 두리번거리며 부산하게 꿈지럭 거리니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후루루 쩝쩝 거리며 배를 채우고 있는데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집니다.
빗방울을 마냥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짐을 챙깁니다.
챙겨간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고 나르는 지개를 펼쳐 놓고 물품들을
비에 젖지 않게 검정 비닐을 씌우고 지개에 쟁여 쌓습니다.
지개 작대기 대신 꼬챙이 두 개와 눈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신는 설피를 챙겨 신고
꿈지럭 꿈지럭 산을 오릅니다.
얇게 맺혀 내리던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는지
제법 쏟아져 내려 메마른 옷 속으로 스며들어 적셔갑니다.
인정머리 없는 빗줄기는 축축하게 젖은 틈새를 비집고 살갗으로 물기를 옮겨옵니다.
머리에 걸친 모자챙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친구삼아 군데군데 남아 있는
얼음을 딛고 푸석거리는 눈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등성이를 하나 넘어서고 질척거리는 맨땅을 지나니, 아직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 빗물과
뒤섞이고 있고, 어설프게 디딘 발아래로 꺼져 내린 눈이 장딴지까지 감춥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 너머로 나무를 부리로 쪼아대는
딱따구리를 숨을 돌리며 바라보고 있노라니 녀석의 부지런함이 부러워집니다.
어깨를 짓누르며 무게를 더해가는 지개를 추스르며 올라서고 올라서다 보니
우물이 보이고 닫힌 사립문이 보이기에 행여나 반갑습니다.
소요하지 않게 밀치고 들어가 짐을 내려 한 쪽에 쌓아 놓고 문을 닫고 걸음을 옮깁니다.
짐을 부려 놓고 내려서는 발걸음이 가볍다보니 세상만사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빗물을 제법 머금었는지 발 딛는 곳마다 이곳저곳 가리기 어렵게 발이 빠집니다.
주책없이 빠져대는 발걸음을 옮겨 나머지 짐을 지고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갑니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쌓아 놓았던 짐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보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님이 옮겨 놓으셨나봅니다.
방으로 들어와 차 한 잔 하자 시는 것을 옷도 젖고 바지에 흙이 튀어서 방안이
지저분해진다고 말씀 올리고 버텨봅니다.
애초에 일 하러 왔으니 그간 켜놓은 통나무 옮겨 놓으려 했더니 비 오는 날은
땅이 질척거려 미끄럽고 막노동 하는 이들도 쉬는 날이라고 말리십니다.
법당에 들어 아미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건너와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비켜 앉아 우려 주시는 찻물을 마시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스님 말씀인즉 예전에 법당에 모신분이 대세지보살님인데 보물이라 지금은 상원사에
내려 모셨고 그 이후에 모신 부처님이 아미타부처님이시랍니다.
두릅나무가 보아도 대세지보살님이 아니신데 서울도 아니 갔다 왔으면서 박박 우깁니다.
스님이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다움’ 이랍니다.
무엇 무엇답다. ~ 답다. 이 말은 자체가 완벽하기에 더 이상 같다 붙일 뜻이 없답니다.
사람답다, 어른답다, 아이답다, 이 말 뜻대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더 바랄나위 없는
참된 세상이 될 거랍니다.
많은 법을 설 해 주셨는데 두릅나무가 아둔한지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겨우 ‘다움’ 한 가지입니다.
우려낸 찻물을 넘기고 입안에 향을 담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스님은 후원으로 공양
준비하러 가시고 두릅나무는 월정사로 가기 위해 신발을 신습니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고 움푹움푹 빠지는 눈길을 디디며 아름드리
전나무를 뒤로하고 가파른 경사진 길을 내려섭니다.
이제 연꽃을 닮았다는 오대산 다섯 개 봉우리만 오르면 뜻 먹고 마음먹은 대로
모두 이룬다는 생각을 떠 올리며 개울을 따라 걸으며 해우소를 찾습니다.
닫혀있는 오대산이 열리는 날 두릅나무의 오대산 종주는 시작됩니다.
부탄가스 한 상자와 현미 건빵 두 상자를 주룩주룩 내리는 빗물에 젖을 새라
깜장 봉지에 넣어 지게에 싣고 설피도 매달았습니다.
닫혀 있던 산문을 소요하지 않게 밀치고 들어섰습니다.
안에 들어가 지고 올라간 짐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나옵니다.
다시 산문을 닫아놓으니 감쪽같기는 하건만 소요하지 않게 한다고 했는데
수행을 훼방 놓은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올라갈 때는 낑낑거리고 내려 올 때는 신나게 내려와 놓고 두 번째로 부탄가스
한 상자와 현미 건빵 한 상자를 지고 올라가 산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이거야 원 경사가 무척 가파른데 사진으로 보니 놀다가도 되겠습니다.
그다지 깊지 않게 보이는데 지게지고 올라가다가 장딴지까지 빠졌던 곳입니다.
이리 닫혀 있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곳이거늘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은
저 문을 열고 기어코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얼굴 붉히며 나와서 씩씩댑니다.
두릅나무는 생각이 있었는지 사전에 허락 받고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짐을 지고 들어갔습니다. 사다리 밑에 첫 번째 짐을 쌓아 놓았는데
사라진 것을 보니 스님이 치우신 모양입니다.
비는 쉬지도 않고 깜장 봉지를 두드리며 줄기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두릅나무가 막내로 있는 산악회에서 준비 해준 보시 품과 우리 산악회 회원님이
준비해 주신 물품을 아미타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집안에서는 어른께 먼저 드리듯이 절집에서는 저렇게 부처님 전에 먼저 올립니다.
앞에 있는 편액이 서대 염불암이고, 뒤에 있는 편액이 이 암자의 처음 이름인 서대 수정암입니다.
수정암의 수정은 근처에 우물이 있기에 지은 이름이고 산 아래 월정사는 이곳 수정암의 정자를 따서 지었습니다.
절집 건너 천주님 집에 사시는 우리 산악회 수정이 님이 수정암에
물품을 준비해 주셔서 신기했습니다.
스님은 수정이가 누구기에 수정암에 보시를 했냐고 다음에 같이 오라하십니다.
두릅나무에게는 속가에서는 필요가 없다 생각하시는지 머리나 깎으라 하시더니……
원래 이름이 수정암인데 지금은 염불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만
조만간 원래 이름인 수정암이라는 편액이 걸릴 것입니다.
스님이 하루에 꼭 두 시간씩 울력으로 쌓아 놓은 장작더미입니다.
“저거 아까워서 어찌 불을 지피신대요?” 하니 웃으십니다.
수정암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두릅나무는 공양하면서 딱 한 번 내려다봤습니다.
수정암 북서쪽에 자리 잡은 수각입니다.
수각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근심을 푸는 곳인 해우소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 빗물이 흘러내려 글씨가 잘 안 보입니다.
지난 3월에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 잘 보이니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만
다들 바쁘시니 두릅나무가 대신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통수
이곳은 한수의 발원지로 물빛과 맛이 특이하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워 우통수라 불리며
속리산 삼파수와 충주 달천과 함께 조선 삼대 명수로 전하여지고 있다.
오대신앙을 정착시킨 신라의 보천태자가 수정암에서 수도할 때 이 물을 매일 길어다가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한다.
큰 물병은 두릅나무가 먹던 물병에 물을 담은 것이고 우측의 작은 물병은
노때 마트에서 사다가 수정이님 길어다 드리려고 물통에 퍼 올려 가지고 내려온 물입니다.
http://cafe.daum.net/nodje/nAFI/39?docid=4165271765&q=%C0%DA%BF%F8%BA%C0%BB%E7&re=1
2013.04.07. 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