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의 술기운에 지고 있다가 후다닥 일어난다. 점심 챙기기도 애매해 맥주하나에 과자를 몇 개 넣는다. 너릿재 아스팔트 옛길을 걸을까, 용추폭포로 가 서석대까지 다녀올까 아무래도 눈이 많아 입산을 통제할 것 같다. 2수원지를 포기하고 용연마을로 들어간다. 건너의 당산나무는 아래 굵은 가지에 눈을 매달고 있다. 마을을 지나 작은 발자국인 찍힌 길을 따라 개울 앞 다리에 서니 대설주의보로 입산통제라고 불빛글씨가 지나는데 가로막은 올려져 있다. 이제 아무도 없는 눈길을 걷기 시작한다. 바닥의 돌들에 신발이 자꾸 미끌린다. 눈덮힌 숲속을 걷는 맛은 좋은데 사고나면 어쩌지 하는 겁을 낸다. 겨우 종아리도 올라오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겁을 내는 내가 째째하다. 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곰적폭포는 바위쪽에 흰 얼음을 달고 소리내며 떨어지고 있다. 사람 다닌 흔적 없는 눈길을 지나 너와나 목장 앞에 이르니 식당 주인 차인지 한대가 보인다. 공원탐방안내소로 가니 문이 닫혔다.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옆 등로 입구는 입산통제 가로막이 걸려 있다. 배가 고프다. 눈속에 맥주와 컵을 꺼내고 과자도 꺼낸다. 과자와 썩어가는 사과를 안주삼아 한캔을 마신다. 장불재로 올라갈까, 만연산쪽으로 가다 너릿재로 돌아갈까? 눈길을 걸은 몸이 반쯤 지쳐서인지 겁이 나서인지 장불재를 포기하고 만연산쪽으로 향한다. 그쪽도 입산통제지만 사람이 없으니 들어간다. 무돌길 허리를 걷다가 능선을 오르자 눈이 쌓인 곳은 무릎까지 빠진다. 만연사 삼거리 부근은 눈이 소나무까지 덮고 작은 시누대도 아랫쪽만 파랗다. 사람 흔적없이 눈덩이가 떨어져 패인 곳이 듬성한 능선을 미끌리며 간다. 한참 가니 사람 소리가 난다. 하얀 눈 속에 비닐로 텐트를 만들어 댓명의 남녀가 속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조용히 몰래 사진을 찍고 지난다. 그들이 지나온 자국을 따라 걷는길은 조금 편하고 안심도 된다. 교리 내려가는 삼거리쪽으로 발자국이 나 있다. 내가 가야하는 수레바위 지장산 너릿재는 흔적이 없다. 수레바위에 서니 건너편 분적산과 화순읍내 광주시내가 일부가 보인다. 배가 고프다. 3시ㅣ 반의 광주극장 영화를 보려면 밥 먹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눈이 깊지 않은 평지에서는 반 달린다. 너릿재 고개에 오니 사람 발자국이 많고 아파트 쪽에서 올라오는 이도 있다. 유아숲을 지나 정류장에 와 스틱을 접고 있는데 화순교통 217번이 세게 달려온다. 손을 드니 급하게 정류장으로 틀어 멈춘다. 2시 반이 안되었다. 남광주시장 고흥국밥집에 들러 모둠국밥에 소주 한병을 주문한다. 주인은 포두 옥강이 고향이라고 한다. 소주가 조금 모자란 듯한데 일어나 지하철을 타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