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으로 문학기행
10월의 첫 일요일 순천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태풍 ‘콩레이(kong-rey)’가 한반도를 훑고 지나간 이튿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태풍의 이동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취소해야 할 상황도 고려했다. 그렇지만 길을 떠나기 전날 태풍이 소멸됨으로써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글밭에서 함께 품앗이를 하던 동도들이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창원에서 이른 새벽에 나서 두 시간을 조금 넘겼을 무렵에 순천드라마촬영장에 도착했다.
순천드라마촬영장에 도착해 부산의 가락에서 아내와 아들을 대동해 현지로 직접 달려온 C시인 가족과 순천 토박이인 K시인이 합류했다. 과거 인기몰이를 했던 ‘사랑과 야망’이나 ‘에덴의 동쪽’ 같은 드라마가 촬영지로 지난 60~70년대의 거리와 그 시절 달동네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거리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간판도 옛날의 투박한 상호들이라서 정겨웠다. 아울러 가파른 산비탈의 위태로운 돌계단 양옆으로 옹기종기 되살린 모습은 아련했던 그 시절을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연이었던 순천만국가정원은 2015년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대략 34만평에 이른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동천(東川)이라는 큰 내(川)가 공원 중심부를 관통하며 동서로 가르며 순천만으로 유유히 흐른다. 그 때문인지 이 공원 출입문은 동문(東門)과 서문(西門)이 있었다.
먼저 동문을 통해 입장해서 왼편으로 발길을 옮기며 호수정원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걷다보면 여러 나라를 상징하는 고유한 정원이 나타났다. 아울러 호수정원에 만들어진 여러 언덕을 오르내리는 나선형 길은 압권이고 백미였다. 그 중에서도 인공섬에 데크(deck)로 가설된 산책로를 따라 봉화언덕 정상을 향하는 나선형 길을 뱅글뱅글 돌면서 오르는 묘미는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이는 여태까지 봐왔던 자연 친화적 발상 중에 가장 발군으로 여겨졌다.
한편, 동쪽과 서쪽 공원을 잇기 위해 동천 위로 가설한 ‘꿈의 다리’가 있다. 여기에는 “세계 16개국 14만 명 어린이가 자신의 꿈을 담은 그림이 전시된 공간으로 어린이들의 꿈이 있는 공간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다리 상판은 데크를 깔아 보통의 교량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밋밋하고 단조롭다. 하지만 이는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있는 미술관이란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긴 지붕이 있는 인도교(人道橋)라는 얘기이다. 다리의 상판 위에 동천의 너비에 해당하는 길고긴 직사각형의 컨테이너 박스를 엎어 놓은 모양새이다. 이 인도교의 벽면에는 한 변의 길이가 8cm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로 축소시킨 14만 명 어린들 그림이 아로 새긴 아크릴 수지 조각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서쪽에 자리한 공원엔 꿈의 광장, 순천만국제습지센터, 야생동물원, 스카이규브 정원역 따위가 자리하고 있다.
순천만국가정원 서쪽의 ‘꿈의 광장’ 언저리의 스카이 규브 정원역에서 스카이 규브(sky cube)라는 소형무인궤도차를 탈 수 있다. 정원역에서 출발하여 동천변(東川邊)을 따라 개설된 3.5~10m 높이의 궤도(rail)로 4.6km를 대략 12분가량 달리면 스카이 규브 문학관역에 도착한다. 이를 두고 ‘순천만을 날아가는 나만의 하늘택시’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왼쪽으로는 동천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비경을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너른 들녘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야트막한 산기슭에 띄엄띄엄 박힌 듯한 한가로운 농가들이 무척 평화로운 정경으로 투영되어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자연 그대로의 청청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풋풋하게 살아 숨 쉬는 강건한 정경이 한없이 부러웠다.
스카이 규브 문학관역에서 하차하면 자연스레 순천문학관에 이른다. 이 지역 출신 김승옥 소설가와 정채봉 아동문학가 기념관을 둘러봤다. 그리고 1.2km 거리에 있으며 걸어서 대략 15분 걸린다는 무진교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초가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동천의 둑길을 걷는 게 고역일 뿐 아니라 귀가 시간을 고려해 중간에 백기를 들고 돌아섰다. 끝가지 다가가서 순천만자연생태관 등을 둘러보며 갈대밭을 살피는가 하면 용산전망대에 올라 순천만을 제대로 조감했으면 좋았으련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에게 내린 복이 여기까지인 것을 그 무엇을 탓하랴.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을 모질게 훼손시켜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고 우쭐대왔다. 그렇게 파괴된 환경은 이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해 재앙의 빌미가 되는 아픔을 수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순천에는 지혜로운 지도자를 만나는 대운이 트였던가! 남들 같으면 거대한 토목공사와 공단 유치라는 망령을 쫓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우직하게도 먼 미래를 내다보며 습지를 보호하고 나무를 심으며 순천만에 공원을 짓는 걸출한 결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푸른 들과 숲을 가꾸며 자연에 순응하는 결단을 내린 뒤에 곁눈질하지 않고 우직한 행보를 거듭한 슬기로움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고 있다.
긴 호흡과 장구한 세월을 내다보며 열성을 다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남이리라. 푸르고 역동적인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원은 수 만 명이 매일 떼져 찾아오는 명소로 거듭 태어났다. 자연을 살리면서 거기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더해 빼어난 공원을 만듦은 선견지명의 혜안이었다. 물론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문제가 따르리라. 하지만 관련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긍정적인 효과를 두루 감안한다면 자연 파괴적인 개발에 비해 걸출한 묘책이 분명하다. 찰지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삶을 누릴 후손들은 진정 고마워하리라.
문학기행을 마칠 무렵 생뚱맞게도 지도자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얼치기 지도자는 현실의 이해타산에 매몰되어 소리(小利)를 뛰어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에 비해 빼어난 발군의 지도자는 백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바탕으로 담대한 결정을 하는 관계로 어정잡이들과 사뭇 다를 게다. 환경 파괴적인 개발 대신에 천혜의 자원을 이용하여 공원을 만들고 습지를 보전하며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외롭고 힘든 원대한 계획에는 얼마나 큰 고뇌가 따랐을까!
세상은 어떻게 접근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명색이 문학기행인데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미치는 내가 과연 정상인지 모르겠다. 깜깜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귀가길이다. 모두가 오늘의 기행에 대해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내 뇌리에는 자꾸만 순천만국가정원과 옛 자태 그대로인 너른 순천 들녘이 어른거렸다. 이는 진정한 부러움의 발로일까 아니면 현대화라는 허상을 맹신하던 정신적 가난뱅이인 천민의 옹졸한 용심이나 시샘일까.
현대문예, 2019삼사월호, 103호, 2019년 4월 25일
(2018년 10월 8일 월요일)
첫댓글 그때의 풍광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잘읽었습니다. 근무라 함께동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고 글속에 함께해 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다시 그곳을 보는것 같아 감사합니다
함께 동행 해 주셔서 든든했습니다. 교수님!
섬세한 기록을 통해
한 번더 실감나는 순천문학기행을 하는 듯 합니다.
다니시는 곳마다 무언가 열심히 적으셨던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전 사진에 몰두해 그 풍경과 시심을
오롯이 사진에만 담아왔습니다
감사히 공부하겠습니다.
정갈한 자연의 멋을 잘 살린 순천문학기행
도타운 정도 많이 쌓았던 소중한 시간들
한판암 교수님과 여러 문인 도반들과 함께 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문학기행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순천만의 가을 풍경과 시와늪 배움교실 도반님들과의 가을 나들이가 멋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교수님 계셔서 늘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교수님과 같이 간 문학기행은 더욱
즐거웠습니다.
스카이큐브를 하늘자동차로 비유하신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희들이 말벗이 못 되어 드려 죄송하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함께 문학기행
가입시더~^^
아들 일기장에 교수님 말씀이 좋았다고
적혀 있네요ᆢ
비록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맛깔스런 밥상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식긴 했지만 아직도 따스한 밥상에 앉아 있는 듯한
가만히 앉아서 염치없이 받아먹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렇게라도 이 좋은 느낌에 저도 자리합니다
가을날의 문학기행 함께 해주신
13명 선생님들의 각각의 글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교수님 잘 읽었습니다
부럽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