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9일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제1독서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전에 신부들과 산책을 함께하다가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산책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신부가 “뱀”이라며 급박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 말에 함께 걷던 신부 모두는 움찔했고,
그중에 동작 빠른 신부는 다급하게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뱀’이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땅에서 뱀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신부의 장난이었습니다.
도망친 신부는 뱀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노끈을 보고서 놀라서 도망친 것이었지요.
노끈이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신부의 말에 ‘뱀’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깜짝 놀라고 공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 말과 행동으로 자기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즉, 직접 보고 판단하면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말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바꿀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바꿔야지만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직접 활동하셔서 이 모든 상황을 벗어나 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이 역시 주님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생명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도 아닙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위대한 사람인 우리는 우리의 생각 변화로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따라 성전에 봉헌되십니다.
이 자리에 시메온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복음은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쎄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루카 2,25)라고 전해줍니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하는
다른 유다인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생을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기다렸던 그는 드디어
주님의 그리스도를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또 그 뜻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거라는 안일한 마음을 버려야 하며,
또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다리는 삶. 성령과 함께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의 명언: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늙어서도 항상 찬사를 듣습니다(삶과 죽음에 대한 연극 중).
사진설명: 렘브란트,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