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廢家]에 부쳐/ 김관식
길을 가다 보니
외딴 집 한 채가 비어 있었다.
무슨 이 집의 연척(緣戚)이라도 되는 양
앞뒤를 한 바퀴 휘둘러보다.
구렁난 지붕에는
풀 버섯이 같이 자라고
썩은새 추녀 끝엔 박쥐도 와서 달릴 듯하다.
먼지 낀 툇마루엔 진흙 자국만 인(印) 찍혔는데
떨어진 문(門)짝 찢어진 벽지(壁紙) 틈에서
퀴퀴한 냄새가 훅 끼치고
물이끼 퍼런 바가지 샘에
무당(巫堂)개구리 몇 놈이 얼른 숨는다.
이걸 가지곤
마른 강변(江邊)에 덴소 냅뛰듯
암만 바시대도
필경 먹고 살 도리가 없어
별똥지기 천수답(天水畓)과 골아실 텃논이며
논배미 밭다랑이 다 버려둔 채
지게품을 팔고
막벌이를 하더라도 도회지(都會地)라야 한다고…
오쟁이 톡톡 털어 이른 아침을 지었을 게고
게다가 차(車) 안에서 먹을 보리개떡도 쪘을 테지만
한번 떠난 뒤 소식(消息)이 없고
장독대 옆에
씨 떨어져 자라난 맨드라미 봉숭아꽃도 피었네.
돌각담 한모퉁이 대추나무에
참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들어
심심파적(破寂)으로 주인(主人)의 후일담(後日譚)을 말해 주는 양
저 혼자 재재거리다 말고 간다.
찌는 말복(末伏)철 저녁 샛때
귀창 터지거라
쓰르라미만 쓰라리게 울고 있더라.
이촌향도(離村向道)의 아픔과 농촌의 황폐화
이 시는 산업화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도회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의 서글픈 현실을 폐가의 풍경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시인은 퇴락한 집안의 시각·청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생계를 위해 정든 터전을 등진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상상한다. 마지막 연의 쓰르라미 울음소리는 무너져가는 농촌 공동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민과 슬픔을 집약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 김관식 약력
출생 및 사망: 1934년 충남 논산 출생 ~ 1970년 사망 (향년 36세)
호: 추수(秋水), 만오(晩悟), 우현(又玄) 등
학력: 강경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충남대, 고려대, 동국대를 거치며 학업(중퇴), 어려서부터 한학을 깊이 수학함.
등단: 1955년 《현대문학》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시 〈연(蓮)〉, 〈자하문 밖〉 등을 발표하며 등단. (서정주 시인과는 동서지간임)
주요 경력: 서울상고 교사, 세계일보 논설위원 등 역임. 1960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림.
문학적 특징: 해방 후 천상병 등과 함께 문단의 대표적인 기인(奇人)으로 꼽힘. 풍부한 한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호방하면서도 가난한 이웃과 시대적 모순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시에 담아냄.
대표 저서: 《해 너머가기 전의 기도》, 《자다가 일어나 보니 배추밭에서》, 《가난예찬》, 유고시집 《다시 광야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