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돌아와 바보는 뒷처리 하느라 바쁘다고 혼자 다녀 오란다.
차를 끌고 나가 수원지 정문 앞쪽에 옹색하게 세워두고 등산로 철문을 통과하니 4시 40분이다.
걸음이 바쁘다.
혹시 복수초라도 보일까 저수지 옆길을 눈 부릅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저수지 끝에서 계곡을 만나 내려간다.
이끼가 푸르고 물도 여름철과 별 다름없이 많은 편이다.
물 위의 돌 사이를 건너뛰며 계곡을 올라간다.
첫돌다리를 만나 길로 들어간다.
흙이 둥그렇게 골라져 있는 곳을 보니 멧돼지가 몸을 뒹군 모양이다.
계곡은 편해지다가 점점 급해진다.
돌다리도 넘고 데크로 상판을 한 다리도 몇 개 건넌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작은 폭포옆 데크 계단을 오르니 뒷쪽 하늘이 붉어지려 한다.
잔뜩 흐리지만 구름 사이로 해는 제 모습을 알린다.
거의 한시간이 다 되어 용추폭포에 닿는다.
바위벽에 하얀 얼음을 달고 있지만 물소리는 힘차지 않다.
바위가 차가워 모자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바밤바막걸리는 달디 달다.
부지런히 내려온다. 벌써 6시가 지났다. 아직 어둠은 내려오지 않았다.
벌집바위쪽을 급하게 내려오는데 굽은 뿔을 단 흑염소 두마리가 길가에 서 있다가 날 보고 후다닥 계곡을 건너 나무속으로 달아난다.
그 두 놈이 한꺼번에 덤비면 내가 질텐데.
나무 사이에 숨어 멋진 모습을 담을수도 없다.
조금 질척이는 길을 내려와 저수지 가까이 오는데 아랫쪽에서 두두둑 소리가 난다.
커다란 멧돼지가 콧소리를 내면서 도망간다.
나와 맛붙을 일이 없이 비켜주니 고맙다.
수원지사무소로 들어가는 철사문은 닫혔다.
2000년 초 화순에 근무하며 올랐던 뒷 철망옆의 길은 살아 있다.
닫힌 정문 앞의 차로 오니 6시 반이고 주변엔 불이 켜져 있다.
다행이 바보는 일하느라 바빠서 날 재촉하는 전화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