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상을 아는 일 단지 그뿐이다' 저는 마음의 고유성질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유성질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1초에 1200번 일어나 머물다 사라지는 찰나적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선 난생 처음 마음이 참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89개로 분류해놓은 것을 보고서 마음이 다시 어려워졌어요. 89개로 분류한 마음들은 각각 내용이 달랐고 그 각각의 내용들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는 마음의 고유성질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그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익한(업을 짓는)마음'과 '해로운(업을 짓는)마음'은 '대상을 아는 작용'과 함께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치더라도(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저의 가정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기의 마음들' 특히 '과보로 나타난 마음'은 '대상을 아는 작용'과 너무나 무관하게만 보여서 머리가 아픕니다. 지금의 제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네요. 워낙 초보여서 질문의 수준이 많이 낮겠지만 자비로운 마음으로 제 의문에 답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예, 법우님. 이렇게 용기 내시어 질문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배울 때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동영상 법문을 들으며 이 말씀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다행히도 여기 법우님들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오늘날에는 그나마 외우는 것도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해문 법우님께서 올려주신 질문을 읽고 저도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펼쳐놓고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물음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1.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마음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는 1권 326쪽 이하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의 역할이 여러 가지로 나왔습니다.
2. 아마도 ‘법’에서 고유성질은 각각 서로 구별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탐욕과 성냄은 서로 그 고유성질이 다르지만) 축생에게도 해당되고 인간에게도 해당되고 천신들께도 해당된다고 합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아비담마 해설서를 읽었는데, 짐승이 화를 내어도, 사람이 화를 내어도, 욕계 천신께서 화를 내어도 그 성냄은 “마치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함을 특징으로 가진다.” (1권 249쪽) 라는 취지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성냄’은 ‘탐욕’(1권 246쪽)과는 다른, 자신에게만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추측해보면 축생과 인간과 욕계 천신들은 모두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 이 마음은 참으로 많은 것들(괴롭고 즐거운 느낌들, 생각들, 인식들, 의도들, ...)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느낌들과 생각들과 의도들과 그밖의 온갖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구분되는 마음만이 가진 어떤 특별한 성질이 바로 ‘대상을 아는 것’ 인 것 같습니다.
3. 마음이 89가지로 불어나는 것은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몸(피부 등)에 무엇이 닿을 때 그것을 감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감촉은 다시 ‘딱딱하다’, ‘거칠다’, ‘말랑하다’, ‘매끈하다’ / ‘뜨겁다’, ‘차갑다’ / ‘배가 팽챙해진다’, ‘배가 꺼진다’ 등의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떨까요? 여기 김철수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가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눈의 알음알이(眼識). 그러자 갑자기 ‘저 사람들은 옷도 잘 입고 행복하구나.’하는 그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조금 전에는 없던 마음이 새로 일어남)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의기소침해지고(새로운 마음이 이어남), 우울해졌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자신을 못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이런 자신이 싫고 미웠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여러 감정에 휩싸였습니다(새로운 마음들이 일어남). 조금 뒤에 남과 비교하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3-1.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김철수가 마음챙기며 알아차렸다면,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이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성냄이 있다, 지금은 질투가 있다, 지금은 자만이 있다, / 지금은 평온이 있다’ 등등. 그래서 아마도 마음은 그 고유성질이 ‘대상을 아는 것’이지만, 그 각각의 마음들의 내용은 이렇게 다양하니, 그 마음들을 몇 가지 기준을 세워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제가 다소 시간이 지난 얼마 전에 어떤 분께 질문 드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서 그분은 계를 잘 지키시는데,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좀 쉬려고 가만히 있으면, 또는 길을 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가만히 서 있으면, 또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평온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1권 206쪽에서 37번 마음입니까, 45번 마음입니까?’ 하고 질문 드렸더니, 대답해주시기를 ‘37번 마음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욕계의 유익한 과보의 마음 8가지는 일상생활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죽어서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며 살아왔다면) 그때 8가지 중에서 1가지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추측해보았습니다.
이상이 제가 책을 찾아보고 생각하고 추측한 내용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추측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제 글은 단지 참고만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문 법우님께서 공부가 향상되시어 해탈 열반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참고: 오늘 아침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어제 빠뜨린 부분이 있었구나. 나도 처음에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을 고유성질로 가진다고 배웠을 때는, 마음은 그 성질만 있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고 ... 등의 역할은 마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배우고 생각하다가보니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고유성질로서 "마음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할 때는 단지 저기 저 사람을 '김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약 김철수가 농부라면 그는 김철수라는 사람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일터에서는 농사일도 하고, 집에서는 아이의 아빠 역할도 하고, 사회에서는 시민의 역할도 할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상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선법을 증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다 마음이 적절한 마음부수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이해할 때는 먼저 고유성질로 '대상을 아는 것'을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일도 한다, 업을 짓는 역할 등도 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
고요2님 감사합니다. 귀한 시간 내주시고 책까지 직접 찾아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초보불자여서 이게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알 방법이 없네요. 그래서 제가 의문을 해결해나간 과정을 여기에 남겨볼까 해요. 저는 위에 질문 첫 문장을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상을 아는 일 단지 그뿐이다"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유성질을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적었지요. 마음의 고유성질과 마음이 찰나적 존재라는 두 가지 사실이 초보였던 제게 너무 놀라운 사실이였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마음이 참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런데 1장의 진도를 더 나가자 수많은 찰나의 마음들을 89개로 분류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딱 막혀버렸죠. 89개의 마음들은 각각 내용이 달랐고 제가 이해하고 있었던 마음의 고유성질과 그대로 부딪쳤어요. '마음은 일어나서 대상을 아는 일만 해야하는데 저 많은 내용들은 도대체 뭐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무턱대고 초기불전연구원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제 의문을 새 법우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소식이 없었고 스스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여기까지인가보다 낙담하고 있었는데 법우님께서 답글을 주셨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법우님께서 남겨주신 조언 첫 문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마음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법우님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적은 "'느낌들과 생각들과 의도들과 그밖의 온갖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구분되는 마음만이 가진 어떤 특별한 성질이 바로 '대상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제 오류를 스스로 볼 수 있었어요. 저는 마음의 고유성질을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상을 아는 일 단지 그뿐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의 오류는 '단지 그뿐이다'였습니다. 적어놓고보니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제겐 이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고유성질이라는 말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렸어요. 마음은 오직 '대상을 아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토록 가볍게 느껴졌겠지요. 하지만 저만해도 집안에서 아들 역할을 하지만 그게 제 전부가 아니고 살아가며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죠.
이렇게 저는 제가 스스로 판 함정에서 고요2님의 도움 덕분에 잘 걸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덧붙여 주신 글을 보고 제 의문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설명해주시는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긴 조언을 해주었는데 제가 이해한 건 너무 적다는게 좀 아쉽고 머쓱하네요. 말씀해주신 욕계, 색계, 무색계, 과보의 마음 등의 내용들은 제가 아비담마의 진도를 더 나가고 공부가 깊어지면 그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쪼록 감사합니다. 끝으로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눈으로 보니 잡을 수 있었던 아비담마 길라잡이 강의에서 각묵스님이 하신 말씀을 남기면서 답글을 맺을게요. "세상에 아무리 많은 마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는 하나입니다" 초기불교tv 아비담마 길라잡이 5-1강 [과학자의 눈 부처님의 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고요2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예, 법우님. 이렇게 용기 내시어 질문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배울 때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동영상 법문을 들으며 이 말씀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다행히도 여기 법우님들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오늘날에는 그나마 외우는 것도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해문 법우님께서 올려주신 질문을 읽고 저도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펼쳐놓고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물음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1.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마음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는 1권 326쪽 이하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의 역할이 여러 가지로 나왔습니다.
2. 아마도 ‘법’에서 고유성질은 각각 서로 구별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탐욕과 성냄은 서로 그 고유성질이 다르지만) 축생에게도 해당되고 인간에게도 해당되고 천신들께도 해당된다고 합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아비담마 해설서를 읽었는데, 짐승이 화를 내어도, 사람이 화를 내어도, 욕계 천신께서 화를 내어도 그 성냄은 “마치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함을 특징으로 가진다.” (1권 249쪽) 라는 취지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성냄’은 ‘탐욕’(1권 246쪽)과는 다른, 자신에게만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추측해보면 축생과 인간과 욕계 천신들은 모두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 이 마음은 참으로 많은 것들(괴롭고 즐거운 느낌들, 생각들, 인식들, 의도들, ...)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느낌들과 생각들과 의도들과 그밖의 온갖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구분되는 마음만이 가진 어떤 특별한 성질이 바로 ‘대상을 아는 것’ 인 것 같습니다.
3. 마음이 89가지로 불어나는 것은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몸(피부 등)에 무엇이 닿을 때 그것을 감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감촉은 다시 ‘딱딱하다’, ‘거칠다’, ‘말랑하다’, ‘매끈하다’ / ‘뜨겁다’, ‘차갑다’ / ‘배가 팽챙해진다’, ‘배가 꺼진다’ 등의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떨까요? 여기 김철수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가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눈의 알음알이(眼識). 그러자 갑자기 ‘저 사람들은 옷도 잘 입고 행복하구나.’하는 그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조금 전에는 없던 마음이 새로 일어남)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의기소침해지고(새로운 마음이 이어남), 우울해졌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자신을 못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이런 자신이 싫고 미웠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여러 감정에 휩싸였습니다(새로운 마음들이 일어남). 조금 뒤에 남과 비교하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새로운 마음이 일어남).
3-1.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김철수가 마음챙기며 알아차렸다면,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이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성냄이 있다, 지금은 질투가 있다, 지금은 자만이 있다, / 지금은 평온이 있다’ 등등. 그래서 아마도 마음은 그 고유성질이 ‘대상을 아는 것’이지만, 그 각각의 마음들의 내용은 이렇게 다양하니, 그 마음들을 몇 가지 기준을 세워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제가 다소 시간이 지난 얼마 전에 어떤 분께 질문 드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서 그분은 계를 잘 지키시는데,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좀 쉬려고 가만히 있으면, 또는 길을 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가만히 서 있으면, 또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평온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1권 206쪽에서 37번 마음입니까, 45번 마음입니까?’ 하고 질문 드렸더니, 대답해주시기를 ‘37번 마음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욕계의 유익한 과보의 마음 8가지는 일상생활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죽어서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며 살아왔다면) 그때 8가지 중에서 1가지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추측해보았습니다.
이상이 제가 책을 찾아보고 생각하고 추측한 내용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추측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제 글은 단지 참고만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문 법우님께서 공부가 향상되시어 해탈 열반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참고: 오늘 아침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어제 빠뜨린 부분이 있었구나. 나도 처음에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을 고유성질로 가진다고 배웠을 때는, 마음은 그 성질만 있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고 ... 등의 역할은 마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배우고 생각하다가보니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고유성질로서 "마음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할 때는 단지 저기 저 사람을 '김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약 김철수가 농부라면 그는 김철수라는 사람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일터에서는 농사일도 하고, 집에서는 아이의 아빠 역할도 하고, 사회에서는 시민의 역할도 할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상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선법을 증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다 마음이 적절한 마음부수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이해할 때는 먼저 고유성질로 '대상을 아는 것'을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일도 한다, 업을 짓는 역할 등도 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
고요2님 감사합니다. 귀한 시간 내주시고 책까지 직접 찾아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초보불자여서 이게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알 방법이 없네요. 그래서 제가 의문을 해결해나간 과정을 여기에 남겨볼까 해요. 저는 위에 질문 첫 문장을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상을 아는 일 단지 그뿐이다"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유성질을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적었지요. 마음의 고유성질과 마음이 찰나적 존재라는 두 가지 사실이 초보였던 제게 너무 놀라운 사실이였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마음이 참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런데 1장의 진도를 더 나가자 수많은 찰나의 마음들을 89개로 분류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딱 막혀버렸죠. 89개의 마음들은 각각 내용이 달랐고 제가 이해하고 있었던 마음의 고유성질과 그대로 부딪쳤어요. '마음은 일어나서 대상을 아는 일만 해야하는데 저 많은 내용들은 도대체 뭐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무턱대고 초기불전연구원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제 의문을 새 법우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소식이 없었고 스스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여기까지인가보다 낙담하고 있었는데 법우님께서 답글을 주셨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법우님께서 남겨주신 조언 첫 문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마음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법우님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적은 "'느낌들과 생각들과 의도들과 그밖의 온갖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구분되는 마음만이 가진 어떤 특별한 성질이 바로 '대상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제 오류를 스스로 볼 수 있었어요. 저는 마음의 고유성질을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상을 아는 일 단지 그뿐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의 오류는 '단지 그뿐이다'였습니다. 적어놓고보니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제겐 이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고유성질이라는 말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렸어요. 마음은 오직 '대상을 아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토록 가볍게 느껴졌겠지요. 하지만 저만해도 집안에서 아들 역할을 하지만 그게 제 전부가 아니고 살아가며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죠.
이렇게 저는 제가 스스로 판 함정에서 고요2님의 도움 덕분에 잘 걸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덧붙여 주신 글을 보고 제 의문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설명해주시는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긴 조언을 해주었는데 제가 이해한 건 너무 적다는게 좀 아쉽고 머쓱하네요. 말씀해주신 욕계, 색계, 무색계, 과보의 마음 등의 내용들은 제가 아비담마의 진도를 더 나가고 공부가 깊어지면 그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쪼록 감사합니다. 끝으로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눈으로 보니 잡을 수 있었던 아비담마 길라잡이 강의에서 각묵스님이 하신 말씀을 남기면서 답글을 맺을게요.
"세상에 아무리 많은 마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는 하나입니다"
초기불교tv 아비담마 길라잡이 5-1강 [과학자의 눈 부처님의 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고요2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예, 법우님.
제 부족한 글을 이렇게 잘 섭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사유하셔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시니 장하십니다.
해문 법우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