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앞두고
이월은 주말과 함께 맞았다. 첫날이 토요일이고 이튿날이 일요일이다. 첫 주 월요일이 개학이라 점심나절 거제로 건너가려고 인터넷으로 버스표를 예매해 놓았다. 봄방학 전 짧은 기간 거기 머물다 다시 창원으로 복귀해 중간에 한두 차례 거제로 가야할 일이 있지 싶다. 그간 묵혀둔 와실 먼지를 닦고 방바닥도 데워야 하기에 다른 일요일 오후보다는 조금 이르게 길을 나설 참이다.
일월 한 달을 만행 만보로 산과 들과 강가를 누비고 이월 들어 첫날 어제는 도심 산책을 나섰더랬다. 용지호수에서 시청 광장을 둘러 용지문화공원으로 갔다. 관공서 거리를 지나 도청 정원에서 창원대학 동문으로 들어 캠퍼스를 둘러보고 창원의집에 들렸다. 솜털이 감싼 목련꽃망울이 도톰해지고 매화송이도 부풀고 있었다. 창원의집에서는 홍매화가 송이송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홍매라면 자장매로 불리는 통도사 영산전 영각 앞 매화가 떠올랐다. 그 매화도 입춘이 지나고 우수 절기인 이월 하순이 되어야 피는데 올해는 자장매도 예년보다 일찍 피지 싶다. 언젠가 기상 전문가로부터 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봄꽃은 겨울을 넘기면서 기온과 강수량의 정도가 꽃의 개화를 당기느냐 늦추느냐 관련이 깊다고 했다. 올봄은 당연히 전자에 해당해 꽃이 일찍 필 테다.
나는 일월 중하순 진동 산기슭에서 피어나던 진달래 꽃봉오리를 본 바 있다. 지방도를 따라 걸어 구산 해안에서 진동 다구리를 지나다가 제말 장군 무덤 아래 활짝 핀 매화를 보았다. 진해 소죽도공원에서는 벚꽃이 핀 것도 봤다. 그 벚나무는 개량종인 듯 해 봄꽃 개화가 이르다고 단정하지는 않으련다. 어제 창원대학 캠퍼스에는 풀꽃에서 핀 봄까치꽃도 만나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월 첫 일요일 점심나절이면 거제로 길을 나설 형편이라 시내버스로 이동하는 동선을 잡지 못했다. 날이 밝지 않은 새벽녘 산천 주유가 아닌 동네 산책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아파트와 이웃한 중학교 앞을 지나 퇴촌삼거리로 갔다. 반송공원 북사면 창원천 수변길엔 산책 나온 인근 주택지 주민이 몇몇 보였다. 내가 한동안 봉곡동 소재 학교 근무할 적 출퇴근길이기도 했다.
산책로에는 사철나무 울타리 사이 산수유나무와 벚나무와 배롱나무가 섞여 심겨져 자랐다. 이른 봄날 산수유꽃이 가장 먼저 피고, 그 다음 벚꽃이 화사했다. 이후 여름부터 가을까지 목백일홍이라도 하는 배롱나무가 오래도록 선홍색 꽃을 피웠다. 창원천 따라 반지동으로 내려가면서 여러 수목들의 열병을 받았다. 이즈음 산수유나무는 가지마다 꽃눈이 몽글몽글 부풀어가고 있었다.
반지동 대동아파트 앞을 지나 명곡교차로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창원천 건너편 창이대로에는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이 몰아 나온 차들이 질주했다. 창원천으로 찻길과는 떨어진 산책로라 매연이나 소음에서 자유로웠다. 이른 아침이라 쌀쌀하긴 했으나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미세먼지는 보통 이상으로 시야가 좋지 않았다. 씨티 세븐 곁을 지나 홈 플러스 맞은편까지 내려갔다.
창원대로에 이르러 대원레포츠공원으로 들었다. 잔디밭엔 나이 지긋한 그라운드골프 동호인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삼동 창원수목원으로 올라가니 대암산에서 아침 햇살이 번졌다. 최근 완공된 선인장을 키우는 유리온실은 개관 시간이 아니라 문이 닫혀 바깥에서만 쳐다봤다. 충혼탑사거리는 내가 연전 근무했던 창원여고와 가깝다. 그곳 뒤뜰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싶었다.
충혼탑에서 창원종합운동장으로 넘어왔다. 우람하고 높게 솟구친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봄이 오는 낌새를 모르는 듯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원이대로 건너 반송시장으로 들었다. 아침이라 가게들은 문은 닫혀 있었다. 노점 김밥아주머니만 영업을 개시하고 횟집은 활어차가 와 수족관에 고기를 채우고 있었다. 어느새 내가 사는 아파트에 닿아 떠날 짐을 꾸렸다. 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