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심판은 하느님의 몫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 공무원은 법 조항만 따지며 주민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살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걸 지켜보는 나는 화를 낸다. 국회의원은 고발해서 벌주고, 공무원은 답답하다고 나무라며 비난하고 싶다. 그러면 그런 나는 정의로운가?
예수님도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 10,18).”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의로운 분노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몫이다. 나의 분노는 선하지도 의롭지도 않으니 그걸 따라가면 안 된다. 그러면 죄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 먼저 내 영혼과 육체 건강에 해가 되고, 그다음으로 이웃에게도 실제로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열매는 파괴와 죽음뿐이고, 악은 일단 시작하면 반드시 그 끝을 보고야 만다. 그러니 그것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세상은 법대로 하는 게 정의라고 하고, 예수님은 사랑이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는 거라고 가르치신다. 그래서 우리의 의로움은 법이 아니라 사랑이다. 살인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형제에게 화내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거다. 예수님은 분노와 비난 금지를 넘어 나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이를 찾아가서 화해하라고 하신다. 그래야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저녁노을에 눈물짓고, 앙증맞은 작은 들꽃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분노와 비난은 절대로 이런 아름다움을 지어낼 수 없다. 창조주 하느님은 사랑인 게 분명하고, 그분과 함께 있고 그분과 하나가 되려면 사랑해야 한다.
그런 줄 잘 알지만 화가 나고 답답해지는 걸 막을 길이 없다. 맞다, 그건 내가 그런 게 아니다. 화가 나는 건 죄가 아니지만 화를 내는 건 죄가 된다. 화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화를 내지 않고 비난하고 욕하지 않을 수는 있다. 정말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선과 정의의 기준이 아니다. 설령 나의 판단이 옳다고 해도 나도 아는 걸 하느님이 모르시겠나. 의로운 분노와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이웃을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심판받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비난을 마치 상한 음식을 토해내듯 내 몸과 마음 밖으로 내보낸다. 참는 게 아니라 배설하는 거다. 그건 토하는 거만큼 괴롭지만 수초 내로 끝나고, 배설되면 편안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억지로라도 기도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예수님, 늘 깨어 있으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주님 계명을 지키겠습니다. 하늘나라에 꼭 가야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마음을 살피며 매 순간 하느님 뜻을 찾아내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