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 서수찬
앉은뱅이 밥상 네 다리 중
흔들리는 다리 하나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안 보이는 쪽으로 돌려놓아도
거기 화살처럼 꽂히는 눈들
밥 얻어먹는 내내 내 마음도
테이프를 붙이게 되는데
밥을 다 먹고 난 뒤 밥상이
테이프를 붙인 다리마저 접고
냉장고 뒤에 난 좁은 틈으로 들어갈 때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뼈다귀만 남은 몸으로 우편물 가방을 메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이십 년 동안
대림동 구석구석들 돌던 아버지
어깨와 다리에 다닥다닥 붙인
파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커다란 음식점을 놔두고
냉장고 뒤 같은 허름한 골목 분식집으로
밥상이 되어 들어가시는
아버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 『시금치 학교』,삶창,2007.
* 집일까, 식당일까. 어느 쪽이든 낡은 앉은뱅이 밥상에 다리 하나가 시원찮아졌나 보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것을 테이프를 몇 번이나 감아서 겨우, 밥상 구실을 하고 있으니 궁기가 역력하다. 집의 가장이든 식당의 손님이든 간에 밥상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로서, 이런 궁색을 데면데면히 지나기가 어려웠나 보다.
온전한 것보다 뭔가 허술하고 부족한 데서 인간미를 느끼는 건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나 자신의 모습도 그러한 면이 많아서이기도 하겠다. 다리에 몇 겹이나 테이프를 두른 밥상이나 몸에 다닥다닥 파스를 붙인 아버지나 삐걱거리거나 고로롱대는 걸 면치 못하는 신세다. 게다가 불편한 다리를 접고 “냉장고 뒤에 난 좁은 틈으로” 들어간 밥상은 영락없이 “허름한 골목”에서 끼니를 때우며 좀처럼 삶을 펴지 못하던 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는 대목이 오히려 슬픔에 빠져드는 걸 방해하는 면이 있지만 실제 그러했을 것이기에 다른 표현을 고민하지 않았을 걸로 보인다.
앉은뱅이책상이든 앉은뱅이 밥상이든 오래된 것을 꺼내서 찬찬히 닦고 싶은 마음이다. (이동훈)
첫댓글 가난의 궁핍함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이제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계속 되는 나의 삶
예, 다들 가난하게 사는 듯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