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 악을 녹이는 멋진 삶의 사랑(仁, 愛)을 써야 한다
박경리 문학관에 가면
반갑게 반기는 글이 있다
‘악을 녹이는 독’이라는 문구다.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도구’다.
악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쁜 것’을 뜻한다.
독은 몇 가지 의미 중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을 말하는 것이겠지.
녹인다는 건 ‘얼음이나 얼음같이 매우 차가운 것을 열로 액체가 되게 하는 것’이고,
참여란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하는 것’이다.
삶을 예술처럼 아름답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붓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그 끝엔 세상의 나쁜 것들을 녹일 만큼 사납고 모진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삶은 이야기꾼 그 이상이어야 한다.
세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나쁜 일들이 넘쳐난다.
정치도 법도 악을 녹이지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고, 악은 더 큰 악을 불러온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은 삶을 송두리째 바쳐
기어코 복수를 이뤄냈지만 가해자의 사과나 반성은 얻지 못했다.
넷플릭스 콘텐츠 ‘성난 사람들’은 분노와 앙갚음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주고받다가 함께 만신창이가 되는 사람들을 그린다.
두 이야기는 악을 녹이지 못한 복수는 통쾌함이 아니라 찜찜함을 남긴다는 걸 알려주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1898년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간첩의 누명을 쓴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편에 섰던 에밀 졸라가 떠오른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치는 일은 쉽지 않다.
졸라의 용기와 날카로운 펜은 악을 녹이는 독이 됐다.
사르트르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참여’가 필요함을 알았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시민들이 관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당시 촉발된 프랑스 지식인들의 앙가주망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도 글을 통해 풍자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는
자신의 글쓰기에 역사적 진실 탐구와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주인공은 삶을 송두리째 바쳐 기어코 복수를 이뤄냈지만
가해자의 사과나 반성은 얻지 못했다.
넷플릭스 콘텐츠 ‘성난 사람들’은 분노와 앙갚음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주고받다가 함께 만신창이가 되는 사람들을 그린다.
우리들은 각자 붓을 가지고 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와 사람들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참여’할 수 있다.
그들의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다면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나의 붓은 뭉툭하지만 언젠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붓을 가지고, 좋은 글로 악을 녹이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붓 끝에 惡을 녹이는 멋진 삶의 仁인 사랑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