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서류 업무로 할일이 산더미 같이 많은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일찍 읽은 '바다거북이 새끼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글을 읽다보니 뭔가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어 회원님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글쓴이는 서울대 배철현 교수입니다.
제목 : 내공
최고의 경쟁력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자신’의 발견이며, 그런 자신을 훈련하는 ‘내공’이다.
그런 내공은 새끼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알을 깨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임시치아’臨時齒牙와 같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거북이는 신비하다. 알에서 방금 깨어난 수십 개의 조그만 생명체가 모래 속에서 꿈틀거린다. 자신은 살아있으며,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선포한다. 태어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새끼 거북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처럼, 저 멀리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태양빛에 반사된 빛의 파장을 따라 바다를 향해 단호하고도 후회 없이 힘차게 나아간다. 새끼 거북이의 인생 여정은 사실 오래전부터 그(녀)의 어미 거북이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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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거북이 자신이 살아있음과 생명의 신비를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하기 위해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녀는 바다를 횡단해 자신의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온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20년 귀환보다 극적이다. 바다에는 그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귀향을 막는 괴물들이 있다. 바로 바다의 왕자들인 상어와 고래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최고봉인 인간이라는 동물이 막강한 무기로 언제든 그들을 포획해 죽일 수 있다. 어미 거북은 이들을 피해, 이들이 거부하는 최악의 날을 선택한다. 사실 최악의 조건과 시간에 그녀에겐 최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파고가 제일 높은 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거칠고 높은 파도를 가르며 2,300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땅 해변에 돌아온다. 그녀는 6주 전에 임신한 알을 낳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해변 가에 도착해 바닷물이 닿지 않는 해안으로부터 수십 미터 떨어진 후미진 모래사장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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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거북이는 자신의 몸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30센티미터 정도 모래를 판 다음, 그 안에 들어가 머리만 모래사장 위로 삐죽 내놓고는 사방을 둘러본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해변이지만 모래사장 밑에서는 바쁜 발길질이 시작된다. 그녀는 뒷지느러미를 이용하여 깊은 구덩이를 판다. 얼마나 팠을까? 어미 거북이는 그 신비한 장소에 200개정도의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뒤 어미 거북이는 자신이 낳은 알을 볼 수도 없고 보려하지도 않는다. 곧바로 뒷지느러미와 앞발을 이용하여 둥지를 덮어놓는다. 맹금류로부터 알들을 보호하고 알껍질에 스며든 점액이 마르지 않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세 시간여 동안 이 모든 일을 마친 어미 거북이는 자연의 위대한 순환에 맞추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시간은 신적이다. 2개월 동안 알 안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무형의 형질들이 유형의 형질로 천지개벽한다. 이 과정을 아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주의 근본적인 질문은 ‘무에서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왜 창조되었는가? 생명이 어떤 과정으로 등장했는가?
알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신비롭게도 새끼 거북이는 알 속에서도 자기 생존을 위한 무기를 만든다. 그 무기가 바로 ‘카벙클(carbuncle)’이라는 임시치아(臨時齒牙)다. 새끼들은 카벙클로 알의 내벽을 깨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이 자신의 자유를 억제한다면 스스로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환경을 깨지 못하면 나는 질식할 것이다. 만일 새끼 거북이는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고 정의하는 알 안에서의 세상의 전부로 수용한다면, 그(녀)는 빛 한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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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거북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다. 알을 깨느라 카벙클이 부러져 피가 난 새끼 거북이를 맞이하는 것은 아빠 거북이도 엄마 거북이도 아니다. 어미 거북이가 알을 낳기 위해 덮어놓고 간 30센티미터가 넘는 두께의 모래다. 어미 거북이가 얼마나 단단하게 다져놓았는지 이 모래성은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새끼 거북들이 이 모래를 뚫고 표면으로 올라오기까지 3일에서 7일 정도가 걸린다. 새끼 거북이의 몸무게는 알을 깨고 나올 때에 비해 30퍼센트가 준다.
새끼 거북이들은 섣불리 모래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모래 위는 바다 갈매기, 독수리, 그리고 사람이라는 괴물들이 이들의 연약한 목숨을 한 순간에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 거북이들은 숨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한밤중이 되면 새끼 거북이들은 운명의 질주를 시작한다. 한순간에 쏟아져 나온 새끼들은 ‘자석 컴퍼스’magnetic compass라는 본능적이 감지 장치에 따라 자신들이 가야 할 길,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을 향해 일제히 움직인다. 이 과정은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새끼 거북이들은 바다라는 생명을 만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죽음을 건 질주가 생명을 담보하고 앞으로 펼쳐질 신나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저 높이에는 이러한 새끼 거북이의 행진을 응시하는 갈매기와 독수리가 있다. 아직도 촉촉한 새끼 거북이는 이들의 스낵으로 제격이다. 갈매기와 독수리들이 쏜살처럼 하강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돌진을 감지한 새끼 거북이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사지를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집어넣는다. 갈매기와 독수리가 백사장에서 발견한 것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껍데기뿐이다.
새끼 거북이들은 본능적으로 생존력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이러한 자발적이며 순간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바다는 새끼 거북이에게 천국인 동시에 지옥이다. 새끼 거북이는 바다에 입수한 뒤 48시간 동안 미친 듯이 수영을 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다의 가장 밑바닥 심연深淵이다. 인류최초도시 우룩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가 불노초를 발견한 그 심연이다. 이곳에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큰 물고기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끼 거북이의 인생을 시작한다. 바다 거북이의 첫 1년간 바다 생활을 관찰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시간은 ‘실종의 기간’이다. 실종의 시간이 그를 온전한 영웅 거북이로 변모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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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년을 홀로 살아남아야지 비로소 ‘거북이’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그 후 그들은 대개 떠다니는 미역에 몸을 실어 영양을 보충한다. 그리고 20년 정도가 지나면 짝짓기를 하고, 암 거북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새끼 거북이가 어른 거북이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확률은 0.1퍼센트다. 천 마리 중 한 마리만 생존하고 대부분은 이 기나긴 과정에서 죽는다.
오늘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절대절명의 경계다. 내가 나에게 감동적인 나를 만들기 위해 나를 둘러싼 세계와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굳어진 세계관을 깨야한다. 그 편하고 단단하고 나를 길러준 알이 이제는 나를 감금하여 죽게 만드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나를 감싼 세상이 알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내 입안에서는 임시치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수많은 모래 중에 하나라는 절실한 깨달음이 나의 임시치아다. 이 임시치아가 내 내공이다. 연약하지만 이 임시 치아로 편견, 상식, 전통, 흉내, 체면,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야겠다.
첫댓글 주말에도 쉬지못하고 일하시네요 늘
바다거북이 실종1년..꿈에도 몰랐던것 오늘 알았네요
그러게요. 주말이 대표님께는 보통의 날보다 더 바쁜 하루시네요.
바다거북의 삶과 일생을 알고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생명,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모든 생명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글귀가 생각나네요
새는 알을 깨고 날아간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다
어미 거북이가 새끼 거북이를 탄생시키기 위한 힘겨운 여정,
새끼 거북이가 카벙클로 부수고 부셔 탄생의 몸짓을 내밀었으나 어미가 쳐 둔 방어막 모래벽을 또 뚫고 나아가며 또다른 세상을 열어가야 하는 노력,,,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의 신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겠죠
어미 거북이의 모성애
포유동물이 아닌 갑각류에도 모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상상할 수 없는 경이감이 감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