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수염 원숭이 / 배정인
처음 해를 바라본 어느 분을 따라 몇억겁 개의 발이 밟고 가서, 붉은 산 맨살엔 혼자로라도 길이 간다. 비가 몸을 감춘 황톳길은 얼음 뺨치게 미끄럽다. 내리막길은 더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인간이 길을 욕한다.
우거진 나무는 검은 부토를 좋아한다. 살심 좋은 땅에 사는 나무들은 부유한 뿌리를 깊이 감춘다.
길섶 비탈에 선 가지 성근 나무들이 뿌리를 내놓는다. 늘 흔들리는 자세로 초연이 서서, 삶이 서툰 길손들의 발을 염려한다. 옹골차게도, 비탈을 붙잡고 부주의한 인간들의 발에게 직립의 의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빈약한 뿌리는 뭉개짐을 인내한 속살이 뼈로 굳었다.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희생은 없다.
디딘 땅 얕아 비탈에 선 나무는 걱정을 앓는다. 바람 불어 가슴을 앓고, 이슬 내려 그리움을 앓는다. 마음을 앓는 자, 멀리 눈 들어 허허히 하늘을 바라본다. 그런 날 손바닥으로 툭툭, 그의 허구리를 쳐주고 들난 뿌리를 살푼히 부러 밟아준다. 그럴 땐 단아한 속살이 느껴진다. 나무는 간지럽다고 살짝 엄살을 떤다. 나도 기분이 좋다. 내 어릴 적 그 어느 날, 고된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 어머니가 흐뭇이 웃으시지 않았던가. 한 번 더 토닥토닥, 이번에는 어루만지며 두드려준다. ‘내일 또 봐.’하는 인사이다. 나무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거기에 서서 기다린다.
하행선은 젖은 비탈이다. 삐끗, 미끄러지던 발이 가난한 뿌리에 붙잡혀 섰다. 우리가 붐비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구두에 발을 밟혔을 때 그 불의의 아픔을 견디었던 경험이 있다면, 내 등산화의 억센 바닥이 툭 부어 있는 나무의 벗은 발등을 밟았을 때 그 고통이 발을 움켜잡고 팔짝팔짝 뛰게 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나는 나무의 아랫도리를 손바닥으로 투욱, 투욱, 쳤다. ‘뭘 그걸 가지고.’나무가 별것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산다는 것이 온통 빚지기임을 내 일찍 통감하고 있겄만, 또 빚을 졌구나! 얼음을 지치는 원숭이 자세로 엉거주춤 내리다가 땅바닥에 용접된 눈이 걸음을 멈췄다.
검은 원숭이가 긁괭이로 길바닥에 메스를 긁고 있었다. 긁혀나온 살이 서너 사발은 되겠다. 그 옆엔 오직 도구일 뿐인 망치와 낫과 도끼, 톱이 행세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순간, 쭈그린 원숭이가 얼굴을 들었다. 계면쩍게,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또 만났다는 듯이.
‘아 그렇지! 그 검은 고양이 수염 원숭이야!’
지난번에는 도끼질 중이었다. 나무뿌리가 발을 걸어 넘어뜨려, 아래를 가리키며 저기까지 굴렀다고 했다. 민첩한 몸 덕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만인을 위하여 그냥 둘 수 없다고. 그리고 강조했다. 자신은 왼손이 모르게 봉사하는 거라고. 암, 그렇고 말고. 맞장구를 치며 망치와 낫, 도끼, 긁괭이가 나에게 어깨 근육을 불뚝거렸다.
‘꽃가루와 같이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는,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을 아닌 척 갈쳐내어 제 것으로 달고 다니는 검은 원숭이. 그게 ‘나홀로 비밀’ 임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낯짝이 더 두껍다. ‘여러분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겠다.’…겠다 …겠다 … 겠다. 미지수는 냄새가 난다. 언제나 미지수로 존재할 뿐이라는 냄새가.
뭐 하시는 거요?
요놈들 때문에 내가 엄청 고생했거든요.
왜요? 또 나무뿌리가 발을 걸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서너 달 전이요. 봄, 비 그친 해거름 참에 바로 여기서 미끄러져 가지곤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었거든. 첨엔 못 서겠더라고. 욱신욱신,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병원엘 갔더니 꼬리뼈가 깨져서 고름이 들었다는 거요. 요놈의 나무뿌리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석 달을 누워 있었단 말이오. 괘씸한 것들.
허, 제 살기만 해도 바쁜 나무뿌리가 가만히 있는 당신 엉덩이의 꼬리뼈를 깨뜨리다니?
그러니까 요런 놈들은 그냥 두면 안 되는 거요. 싹 쓸어버려야지.
입술은 옹다물어지고 손놀림이 집요해진다. 이미, 눈과 귀가 감옥문에 면회 사절을 내걸었다는 방증이다.
빗나간 분노는 증오를 부르고 증오는 파괴를 부른다. 하여, 고아高雅와 정의는 원천이 고독하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일루의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 불행하게도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그러므로 일루의 희망이 존재한다.
애써 원숭이의 긁괭이 손을 말렸다. 소용없었다. 서슬이 톱날 같았다. ‘당신이 뭔데?’ 허. ‘당신, 입원해봤어? 입원도 못해 본 주제에 무슨!’
도의라는 것, 고양이수염원숭이에게 그런 나무 법장法杖은 만년 고분에서 출토된 퍼석 장도粧刀로나, 오래전에 골동품 됐다. 황금으로 도금된 사자상의 금색 막대기를 경배하는 원숭이들, 이 십상시들의 앞에서는 하다못해 ‘산불방지’ 그런 완장이라도 하나 차야 하는 세상이다. 걷는 자여, 그냥 지나쳐 가라. 삶이 너를 용서하리라.
휘-익-. 동강난 뿌리는 던져졌다. 사막이다. 뿌리 부존의 사회. 고양이수염원숭이가 휘파람을 불며 내려간다. 톱 도끼 낫 망치 긁괭이……등·어깨에 빽이 양양한 앞길을 노래한다.
오버 헤드 킥을 하는 거야? 발이 한껏 허공을 걷어찬다. 공은 보이지 않고, 발질하는 헛발이 꺼꿀잡이로 높았다.
‘외상도 없는데? 뇌진탕인가? 뒤꼭지가 땅박기 했나? 발이 미끄러져서 뒤로 넉장거리를 한 것 같긴 한데-’ 목에 청진기 건 119가 수군수군 갈팡질팡댄다.
무명씨 눈에 박힌 고양이수염원숭이, 부르릉 몸을 떤다. 몽니를 못박는 망치질에 딱따구리 주둥이가 민망하다. ‘네 탓이다, 네 탓이다, 오직 네 탓이다…….’
아, 산이 돌아앉는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