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부균분(破釜均分) - 가마솥을 깨드려 똑같이 나누다, 어리석은 욕심을 경계하다.
[깨뜨릴 파(石/5) 가마 부(金/2) 고를 균(土/4) 나눌 분(刀/2)]
솥을 깨뜨린다는 破釜(파부)라 할 때 破釜沈舟(파부침주)를 먼저 떠올릴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장에서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혀 죽기 살기로 싸움에 임한다는 項羽(항우)의 고사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생소하지만 더 교훈이 되는 가마솥 깨기의 성어가 있다.
크고 작은 가마솥 두 개를 똑 같이 나누기 위해(均分) 부순다면 두 개 모두 쓸 수가 없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모두에 손해가 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곳이다. 조선 전기 학자 徐居正(서거정)이 고대로부터의 일화 또는 한담을 엮어 저술한 ‘筆苑雜記(필원잡기)’에 수록돼 전한다.
제1권에 실린 슬기로운 판결 이야기가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소개돼 널리 알려졌다. 내용은 이렇다. 咸禹治(함우치, 1408~1479)라는 형조판서, 좌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일이다. 양반집 가문의 형제가 크고 작은 가마솥을 두고 서로 큰 것을 가지려고 관청에 소송을 걸어왔다.
이 말을 들은 감사가 크게 노해 아전에 가마솥을 가져오게 하고 명령했다. ‘마땅히 깨뜨려서 저울로 달아 양측에 나눠주도록 하라(當擊碎均其斤 兩而分之/ 당격쇄균기근 량이분지).’ 깨어진 쇳조각은 작은 가마솥보다 못한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형제는 소송을 취하했다.
중국에도 비슷한 판결 이야기가 薛宣斷縑(설선단겸, 縑은 합사비단 겸)이란 성어로 전한다. 前漢(전한)시대 臨淮(임회)란 지역에서 태수를 하고 있던 설선이 잘잘못을 명확히 해결하여 재판 기록서에도 남았다. 한 비단장수가 장으로 가다 소낙비를 만나 비단을 펼쳐 피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흠뻑 젖은 채 같이 피하자고 했다.
비가 개자 비를 피한 사나이가 비단이 자기 것이라고 우겨 시비가 벌어졌고 할 수없이 태수 설선에 주인을 가려 달라 했다. 설선이 비단을 잘라 나눠주고는 미행을 시킨 뒤 기뻐한 사나이를 족쳐 범행을 자백 받았다. 비단을 뺏긴 주인은 기분이 좋을 리 없어 범인을 가린 것이다. 일시적으로 좋아했던 사내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가마솥을 깨뜨려 반분하라는 판결에 형제는 정신을 차렸지만 비단 반을 공짜로 챙긴 범인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잃었다. 구약성서 列王記(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제3대 솔로몬(Solomon)왕의 지혜가 칭송되는 이유도 슬기롭게 분쟁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출산한지 사흘이 되는 갓난애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친 엄마라 주장했다. 아이를 두 동강 내서 반씩 갖도록 하라는 서슬 푸른 판결에 다른 여자 주라는 친모가 판명 났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기만 하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솔로몬까지는 아니라도 명판관이 와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