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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사모 -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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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 문학방 술 익는 마을
푸른 돌(靑石) 추천 0 조회 41 23.04.29 14:1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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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4.29 18:00

    첫댓글 1.이전에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면 꼭 술을 담갔다. 집집마다 나름대로의 술 담그는 비법이 있어 술 맛이 달랐다. 그 당시 1등 며느리는 살림 잘 사는 것이다. 시부모님 모시며 세 끼 밥 잘 챙겨드리고 아들 딸 낳아 키우며 알뜰하게 살림 잘 사는 것이다. 옛날엔 모든 걸 자급자족하던 시절이었다. 1년 내내 길삼하여 여름엔 삼베나 모시베 짜고 겨울엔 무명옷을 지었다. 그 당시에도 삼 베나 모시 베는 비싼 편이라 큰 살림 밑천이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밤낮없이 낮에는 들일로. 밤이나 비 오는 날에는 길삼으로 바쁘게 살았다.
    술과 담배는 국가 전매 사업이었으니 개인이 담배를 재배하거나 술을 담그면 불법이었다. 술을 해먹다 걸리면 벌금을 매겼다. 그러니 막걸리나 다른 과일 술도 개인이 집에서 담가 먹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밀주 단속 반이 수시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 다니며 단속을 했다. 밀주를 자주 담가 먹는 사람들에겐 그들이 '저승 사자'였던 것이다. 술을 해 먹다 단속 반에 걸렸다는 벼라 별 소문과 에피소드가 동네에 넘쳤다. 밀주를 숨기는 방법과 요령이 동네마다 이심전심으로 공유하며 서로 주고 받았다. 단속반이 뜨면 순식간에 서로 알렸다..=>

  • 작성자 23.04.29 18:00

    2.바로 위 세 째 누님 매형이 도가집에 큰 머슴으로 5~6년을 살았다. 그 때 병역을 필 하고자 면 사무소 행정 보조 방위병으로 근무를 했다. 그 도가집도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 있었는데 주인이 집안 일가로 할어버지 뻘 되는 어른이었다. 간혹 매형 만나러 가면 어르신이 반갑게 맞아주며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곤 하셨다. 집에서 면 소재지 마을이 십 리 길인데 아침 출근은 걸어서 나오고 저녁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하루에 세 차례 버스가 읍내를 왕복 했는데 아침은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병사계 행정 보조 요원이 평소에는 별 할 일이 없었다. 호병계 소속으로 호적부 원부를 보고 병력 자원을 적출해 내는 업무를 도왔다. 징집 대상자들에게 징병 검사 통지서를 전달하고 예비군 훈련이 있으면 대상자들에게 소집 통지서를 나르는 일이었다. 군 입대 영장을 가지고 가면 대개의 부모님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군대 가서 고생 할 거라며 대성 통곡을 한다. 그러면 "요즘 군대는 이전과 달라 많이 좋아졌으니 걱정 마시라'고 위로를 해주곤 했다. 그래도 자나 깨나 자식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 작성자 23.04.29 18:00

    3.할머님은 아흔 여섯 살까지 정정하시고 눈도 밝아 밤낮으로 길삼을 하셨다. 노인이 밖에 나가서 할 일이 없으니 방안에서 길삼을 하신 것이다. 겨울엔 목화를 방아간에서 타오면 물래로 무명실을 자으셨다. 1년 내 모시나 삼베 무명실은 거의 할머님께서 다 삼으셨다. 그러면 계절에 맞춰 베를 짰다. 어머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베틀에 올라 베를 짰다. 날씨가 맑은 날은 들 일에 매달렸고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엔 베틀에 매달렸다. 상일이는 어릴 때 큰 방에서 딱딱! 하는 베틀 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베를 짤 때는 적당한 방 온도 유지가 중요해 겨울에는 낮에 굼불을 때 곤 했다.
    목화는 고려 공민왕 시절(1363년)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붓 뚜껑 속에 숨겨 가지고 돌아왔다. 경북 산청에 있는 처가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 선조들은 땀을 잘 흡수하는 목화로 무명 옷을 만들어 입었다. 겨울에는 솜을 만들어 옷감이나 이불에 넣어 혹독한 추위에도 얼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화학 섬유의 발달로 많이 처졌지만 목화가 우리에게 준 영향과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작성자 23.04.29 18:00

    4.우리 동네에 제비가 돌아왔다. 거의 3~4년 만에 돌아온 것 같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최근에 서울 근교에는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 한다. 대기 오염이 심해져서 그럴 것이다. 3~4년 전에 한 번 왔는데 금년에 뜻밖에 우리 동네에 제비가 다시 돌아왔다. 서울 근교 대기 오염이 좋아졌다기 보다 제비가 환경에 적응하고 면역력이 커졌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느새 집을 다 짓고 알을 품는지 어미 한 마리가 집안에 웅크리고 꼼짝 않는다. 며칠이 지나면 새끼 제비들이 노란 부리를 내밀며 재재거릴 것이다. 제비는 길조(吉鳥)라 여겨 사람들이 제비 집을 보면 반가워 한다. 길 가는 동네 아주머니에게."우리 동네에 제비가 왔어요"하고 가르쳐 주니, 어디요? 하더니 제비 집을 몇 십 년 만에 본다며 엄청 좋아 했다.
    제비 집을 짓는 곳이 거의 어떤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우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북쪽 벽이다. 여름엔 북풍보다 주로 남풍이 분다. 또 위에서 빗물이 흘러 내리지 않아야 좋다. 그래서 북쪽이며 위에 베란다나 옹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바람도 피하고 빗물도 흘러 내리지 않는다. 조물주가 준 자연의 순리를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 작성자 23.04.29 18:01

    5.햇볕을 좀 쐬고 싶어 오전에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갔다. 볕은 좀 따갑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한 느낌이다.진달래는 지기 시작했고 노란 황매화는 아직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금 더운 듯 했지만 산책하기 그만 인 날씨다. 놀이터에는 이른 시간이라 두세 명의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놀고 있다. 주택가에 서 있는 큰 은행나무는 연두색이 이제 짙은 초록으로 변했다. 그동안 잘 안 보이던 참새 여러 마리가 나무 위에서 짹짹 거린다. 나비 몇 마리도 바람에 나풀거린다. 찾는 꽃이 귀한데 어디 가서 배를 채우나. 진달래는 꿀이 없는지 나비나 벌이 들락거리지 않는 것 같다. 소나무에 둥지를 튼 까치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느라 깍깍! 거리며 바삐 들락거린다. 이전에 까치가 사철나무에는 집을 짓지 않는 걸로 잘 못 알았던 같다. 아마 환경에 따라 저들도 적응하고 변했을지 모른다.
    멀리 보이는 남한산성은 이제 완연한 초록 산이 되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서문 전망대와 수어장대까지 한 번 다녀 와야겠다. 가까이 이런 명산이 있어 얼마나 좋은가? 이전에 6~7년을 토요일 새벽마다 남한산성을 올랐다. 이제 여러 해가 지났지만 같이 산을 다녔던 친구들이 그립다..^*^

  • 23.04.30 22:42

    덕분에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작성자 23.05.01 15:30

    화창한 월요일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힘찬
    새 봄이 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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