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달러(약 10조7000억원)가 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미국의 억만장자 척 피니(Cuuck Feeney)가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일(현지시각) 대서양 자선재단은 세계적인 면세점 업체 DFS의 공동 창업자인 피니가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망 전까지 방 두 칸짜리 소형아파트를 임대해 살았으며, 노후생활을 위한 200만달러(약 26억원)와 5명의 자녀에게 남긴 유산을 뺀 재산이 전부였다.
피니는 그의 전기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에서 기부를 한번 해보면 당신도 좋아할 것이라며 “죽었을 때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을 공개하는 자선가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대학, 병원, 연구소, 인권 단체 등에 기부했다. 그가 27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기부한 5개 대륙의 1000여개 건물 가운데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은 한 곳도 없다. 단체와 개인에게 전달한 기부금은 출처를 감추기 위해 자기앞수표로 지급했다.
1931년 4월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피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역한 뒤에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 코넬대에 입학했다. 1956년 코넬대를 졸업한 뒤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어 유럽에서 귀국한 미군을 대상으로 주류, 담배, 향수를 판매했다. 그 뒤 유럽, 아시아, 미주 전역의 공항과 주요 도시에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피니는 50살에 뉴욕·샌프란시스코·런던·파리 등지에 호화로운 저택을 소유했다. 그러나 그는 성대한 연회, 요트 등 호화로운 생활에 괴로움을 느꼈다. 코너 오클리어리는 2007년 펴낸 피니의 전기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에서 “그는 많은 돈을 가질 권리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돈, 모든 치장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피니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그만뒀다. 리무진을 팔고 대신 지하철이나 택시를 탔다. 비행기도 일반석을 탔다. 옷은 기성복으로 샀고 고급 레스토랑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익명으로 기부하기로 결심한 피니는 1982년 영국령인 버뮤다에 재단을 설립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정체는 1997년 그와 DFS를 같이설립했던 공동창업자가 지분을 루이비통모엣헤네시에 매각한 뒤 공개됐다.
피니에게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가 넘는 기부금을 받은 코넬대는 2012년 그에게 ‘업계의 아이콘’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당시 코넬대는 15달러(약 2만원) 안팎의 저렴한 시계를 차는 것으로 알려진 피니에게 일부러 13달러(약 1만7000원)짜리 카시오 시계를 선물했다. 이에 피니는 “이베이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해줘 감사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20여년 전 피니는 기부 서약서에 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에 개인적으로 헌신하는 것보다 더 개인적으로 보람되고 적절하게 부를 사용하는 방법은 없습니다(I cannot think of a more personally rewarding and appropriate use of wealth than to give while one is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