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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나 등산이 주는 유익은 훌훌 털고 덜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산등선을 넘고
돌아 4시간동안의 시간 여행이 오감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꽃구경보다야 성지순례가 낫겠다는 홀리한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막가파 날라리는
아니거든요,은하수로 알려진 미리내 성지는 신유(1801), 기해(1839)박해 때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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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답니다. 반공방첩 구호를
부르짖던 시절 등화관재를 해보셨나요? 숨죽이며 사는 이들이 밤이면 무엇 때문에 호롱
불을 켰는지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라고 불러지게 되었다고 합디다.
미래네 성지에 4번 째 왔는데 등산은 처음입니다. 요새는 등산도 쎄미트래킹이 유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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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복장으로 출발합니다. 고고싱! 김 대건 무덤 옆 삼덕고개라는 곳에서 출발하여
몇 개나 되는 산등선을 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산길치고 훌륭하게 잘 닦아놔서 영어 회화
3시간, 음악 1시간 들었더니 금방 주차장입니다. 가을 산은 조금은 쓸쓸하고 봄 산행은
충전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미리내가 유명해진 것은 김 대건 신부 때문인데 그 양반 한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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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되고 이 민식 씨가 주검을 수습하려 이곳에 숨어들면서 삼덕고개도 덩달아 성지가
된 것 같아요. 안내 표지판에 애덕고개-쌍 영산 삼거리-석포 숲 사거리-망덕고개-문수
봉 삼거리-곱든 고개-신덕고개-은이 성지까지 13.4Km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30리
길이나 됩니다. 중세의 대강을 대-충 공부했는데 프랑스 편에서 나폴레옹이란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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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보충 수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사후 200년 만에 박통시절 중학교
참고서(완전정복) 겉표지로 환생 했을 것입니다. 우리시대 연이은 군통들의 치세는
‘적극적사고’와 “나의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 가 환상의 궁합을 만들어 냈지 싶습니다.
나폴레옹보나파르트는 1789년 프랑스 대 혁명이 일어날 무렵 활약한 인물입니다.
저는 바로(이집트)-산혜립(아시리아)- 느브갓네살(바벨론)- 고레스(바사)-알렉산더(그리스)-
옥타비아누스(로마)-나폴레옹(프랑스)으로 이어져 온 정복자의 반열에 들어있는 나폴레옹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8부작 영화를 보면서 나폴레옹의 여성편력이 인간적인 차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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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왔고 조세핀이 프랑스 여성의 보편적 캐릭터라면 새로운 롤 모델로 프랑스 여성을
연구해볼 생각이 있습니다. 중세 스터디를 통해 얻은 수확은 왕정시대를 마감하고
공화정시대를 여는 중세 유럽의 복잡한 역사를 그 닥 디테일 하진 않지만 감 잡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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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나마 서머리한 것입니다. 제가 이해한 ‘프랑스 대혁명’은 명분 적으로는 불평등한 귀족
사회에 대해 백성들이 들고 난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뛰어난 능력을 가진
평민)가 귀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리베르테,
에갈리테, 프라테르니템(자유, 평등, 박애)정신으로 물들이고 있었어요. 귀족들은 처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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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왕이 없는 국가가 되었는데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혼란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백성들이 '피로 얻어낸 자유국가를 포기'하고 황제가 됩니다. 아무리 미화를 해도 쿠데타는
쿠데다 입니다. 황제가 된 뒤로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어요. 말하자면 독고다이에요.
쿠데타는 독고다이가 하는 것이니 참고하시라. 저는 이 부분에서 나폴레옹의 대(깡)를 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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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중 최고로 칩니다. 박통이 나폴레옹 벤치마킹을 많이 했는데 심지어 키가 작다는 것까지
했어요, 삼 통령 정부에서 제2통령과 제3통령은 명예직에 불과하였고 당연히 권력은 제1통령인
나폴레옹에게 모아졌어요. 유명한 '알프스 산 탄생 신화'때 나폴레옹은 과거 한니발 이후 대규모의
군사가 처음으로 알프스를 넘어갔어요. 당시 그의 부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나폴레옹을 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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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류하였으나 그는 단호히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며 험준한 알프스를 넘고
1800년 6월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굴복시켰고, 다음해 2월에 오스트리아는 강화 제의를
받아들여 라인 강의 절반을 프랑스 측에 할양하였으며, 북이탈리아 등을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강화로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은 붕괴되어, 영국만이 전쟁을 지속하다가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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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인 소 피트가 사망하자 1802년 3월 양국 간에 아미앵 조약을 체결하여 10년 만에 안정을 맞게
됩니다. 이 시대 유럽 국가 중 영국만이 살아남았어요. 설마,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란 말이
여겨서 나왔나? 나폴레옹은 영국을 항복시키려고 함대를 몇번 보냈으나, 섬나라라 영국의 해군
력을 당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국이 승리하자 프랑스는 대륙봉쇄령을 내립니다.
영국은 아메리카, 아시아와 무역을 하며 버텼어요. 유럽에게 영국은 아메리카, 아시아의 자원을
사서 유럽에 팔고 유럽의 상품을사서 아메리카, 아시아에 파는 무역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타격이 솔차니 컸을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영국과 무역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상황에
처했고, 러시아가 영국과 밀수를 하자 프랑스는 68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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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존 많은 나라가 거대한 러시아를. 물론 대패했지만 말입니다. 유럽공동연합은
찬스를 잡아 ‘제2 대 프랑스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공격합니다. 프랑스는 패배했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귀양을 갑니다. 프랑스 루이14세가 돌아와 다시 정치를 했는데 나폴레옹의
전 부하들이 찾아와 프랑스 국민이 나폴레옹을 원한다며 나폴레옹을 탈출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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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나폴레옹보나파르트는 황제가 되었어요. 유럽연합은 ‘제3 대 프랑스 동맹’을
맺어요. 웰링턴장군이 이끄는 유럽연합은 ‘웰링턴 대전’에서 승리합니다. 나폴레옹은 패전을
했고 아프리카 동부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다시 귀양을 갑니다.
나폴레옹이 사이즈가 큰 사람이라는 것은 연합세력들을 늘 혼자서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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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많은 어록 중에 "나는 2년 후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때가 없다."
"나는 언제나 노동하고 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내가 항상 어떠한 일에 당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즉시로 처리하는 것은 미리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두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에서는 그의 고독이 송곳처럼 저의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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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육사를 마친 나폴레옹은 1769년-1821년 까지 50년 동안 군인이었고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10년 동안 황제를 해먹었습니다.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귀족으로 시작해
27살에 사단장을 했답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45세에 별을 달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투 스타를.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죠. 그가 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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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중에 가장 잘 했다고 하니 만약 MBTI 검사를 했다면 죄 뇌 성향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의 업적 중에 ‘나폴레옹 법전’은 전 세계의 민법 관할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사상 등 혁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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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들이 온 유럽에 전파 됩니다. 근대 유럽은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혁명을 통해 탄생한 세계였으며 결국 이후 전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근대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럽 화가 된 만큼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군사 부분에서는 군사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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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 투하체프스키, 슐리펜)들이 나폴레옹의 전술과 전략, 훈련, 조직, 군수 심지어
는 의복과 포상제도에 이르기까지 교과서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가 육성한 프랑스 육군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조직된 선진 군대였고 결국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프랑스 육군을 흉내 내게 됩니다. 19세기의 첫 10년 동안 나폴레옹이 이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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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국은 나폴레옹 전쟁을 주도합니다. 유럽의 모든 강대국이 이 전쟁에 휘말렸으며,
많은 승리 뒤에 프랑스는 유럽의 지배적 자리에 앉게 되지요. 이후 나폴레옹은 유럽의 각국
들을 분할하고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한편 자신의 측근들과 친척들을 유럽 다른 나라들을
통치케 하여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시켜나갑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무장시민들의 끈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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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와 1812년의 러시아 원정 실패는 나폴레옹의 삶을 완전히 돌려놓았어요. 그의
육군은 스페인과 러시아에서의 실패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손실을 보았으며 이후
재건된 프랑스 군대는 규모는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육군이었으나 내실에서는
결코 전성기 때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1813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제6차 대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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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에 의해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그 동맹군이 파리에 입성
하면서 나폴레옹을 정권에서 내려오게 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 보냅니다. 1년이 채 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엘바 섬에서 도망쳐 나오고 권력을 다시 잡았지만, 1815년 6월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완전히 상실합니다. 이후 나폴레옹은 삶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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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을 영국 왕실에 의해 구속된 채로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보내집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위암으로 결론이 났으나, 그의 사인은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으며, 일부 학계 측에서는
비소 중독설도 제기된 것으로 압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너도 나도.
그리고 쿠데타를 한 사람이 객사하지 않은 것만도 행운 아닌가? 굳-바이!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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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명언)
1.나는 2년 후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때가 없다.
2.나는 언제나 노동하고 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내가 항상 어떠한 일에 당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즉시로 처리하는 것은 미리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두었기 때문이다.
3.다른 사람이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돌발 사태에 처했을 때에 즉시로 내가 해결해 버리는
것은 내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에 있어서의 명상과 반성의 결과인 것이다.
식사할 때나 혹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구경할 때도 나는 늘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4.나의 실패와 몰락에 대하여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는 아무도 없다.
5.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나 자신의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6.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7.당신들의 국가를 영속시키려면,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결속하라.
8.부귀와 명예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느냐가 중요하다. 도덕에 근거를 두고 얻은 부귀와
9.명예라면 산골에 피는 꽃과 같다. 즉, 충분한 햇볕과 바람을 받고 성장한다.
10.부도덕 중의 으뜸은 자기가 모르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11.부하 걱정을 많이 하는 지휘관은 패하기 마련이다.
12.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13.사람은 덕보다도 악으로 더 쉽게 지배된다.
14.사람의 처세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에 쏠리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이치에도 쏠리지 않고, 두 가지를 다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5.사랑에 대한 유일한 승리는 탈출이다.
16.사치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이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17.사회는 재산의 불평등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18.재산의 불평등은 종교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19.사회에는 칼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의 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은 칼이 정신에게 패배당하고 만다.
20.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21.살아 있는 졸병이 죽은 황제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22.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23.세계를 움직이는 비결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강력해지는 것이다. 힘 속에는 오류도
착각도 없기 때문이다.
24.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25.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26.승리는 노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27.어떤 고난의 한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28.아무리 위대한 천재의 능력일지라도 기회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29.아첨을 잘하는 사람은 헐뜯거나 비방하는 요령도 잘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30.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31.약한 인간일수록 훌륭한 군인이다.
32.여론의 흐름에 따르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여론은 세상의 지배자이다.
33.여자를 손에 넣을 때는 이유도 영탄도 필요치 않다.
그저 내 것으로 만들면 그뿐인 것이다.
34.우리가 어느 날엔가 마주칠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
35.음악은 정욕을 강하는 일을 한다. 때문에 정부는 크게 이를 장려해야 한다.
좋은 가곡은 마음을 감동시켜 부드럽게 함으로써, 이성을 설복 하려는 도덕보다도 그 영향이
더욱 크다.
36.의지할 만한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힘이다.
37.이 무릎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것 앞에서 꿇지 않는다.
38.이 세상에는 칼과 정신, 이 두 가지 힘밖에 없다. 그러나 결국 칼은 항상 정신에게 패한다.
39.인간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존경과 사랑이다.
40.인류는 상상력에서 태어났다.
41.인생이란 진정 하나의 소설이다.
42.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것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신이 되는 것이다.
43.자살은 비겁한 행위이다.
44.자연은 우리에게 두 가지 귀중한 선물을 주었다. 언제 어느 때나 바라는 대로 잠들
수 있는 능력과 과식할 수 없는 육체의 조건이다.
45.자연이 아닌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46.작전계획을 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47.종교는 영혼의 지배력이다. 그것은 삶의 희망이고 안전의 닻이며 영혼의 구제이다.
48.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49.지식과 역사는 종교의 적이다.
50.최후의 승리는 인내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인내하는 데서 운명이 좌우되고,
성공이 따르게 된다.
(나폴레옹이 승리로 이끈 전투)
제1차 이탈리아원정
1796. 5.10 로디전투
1796. 8.5 카스틸료네전투
1796. 11.15 알코레전투
1797. 1. 14 리보리전투
이집트원정
1798. 7. 21 피라미드전투
제2차이탈리아원정
1800. 6. 14 마랭고전투
1800. 12. 3 호엔린덴전투
울림-아우스터리츠전역
1805. 10. 17 울름전투
1805. 12. 2 아우스터리츠전투
대프로이센전역
1806. 10. 14 예나전투
1806. 10. 14 아우엘슈타트전투
대러시아전역
1806. 12. 26 폴투스크전투
1807. 2. 7 아이라우전투
1807. 6. 10 하일스베르크전투
1807. 6. 14 프리트란드전투
대오스트리아 전역
1809. 4. 22 아이벤스베르크-엣크뮬전투
1809. 7. 5 바그람전투
모스크바전역
1812. 8. 17 스몰렌스크전투
1812. 9. 7 보로디노전투
1812. 11. 26 베레지나전투
독일전역
1813. 5. 2 류젠전투
1813. 5. 20 바우젠전투
1813. 8. 26 드레스덴 전투
1813. 10. 28 하나우 전투
벨기에전역(백일천하 시)
1815. 6. 16 리니전투
(나폴레옹의 일대기)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 일어남
1794년 3월 나폴레옹,이탈리아원정군에 근무.
1796년 3월 나폴레옹, 이탈리아원정군 사령관이 됨.
1796년 4월 이탈리아 전투 개시
1796년 11월 아르콜레전투
1797년 2월 만토아 점령
1798년 5월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출발
1798년 7월 피라미드 전투
1798년 12월 제2 대프랑스 대동맹
1799년 11월 브뤼메르 쿠데타, 임시 집정 정부 성립
1800년 5월 이탈리아 전투
1802년 1월 나폴레옹,이탈리아 공화국 대통령이 되다.
1802년 8월 나폴레옹, 종신 집정이 되다.
1804년 3월 민법전 발포
1804년 12월 나폴레옹, 대관식
1805년 3월 나폴레옹, 이탈리아왕이 되다.
1805년 8월 제3대 프랑스대동맹
1805년 10월 울름 전투, 트라팔가르 해전
1806년 8월 신성로마제국 붕괴
1806년 10월 예나 전투, 나폴레옹 베를린 입성
1806년 11월 베를린 칙령, 대륙봉쇄개시
1808년 2월 나폴레옹, 로마합병
1808년 5월 에스파냐독립전쟁개시
1808년 12월 나폴레옹, 마드리드에 들어가다.
1809년 5월 빈 입성
1810년 7월 네덜란드 합병
1810년 12월 러시아, 대륙봉쇄 파기
1812년 6월 러시아원정
1812년 9월 보로디노전투, 모스크바 입성
1812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퇴각
1813년 3월 독일해방 개시
1813년 8월 드레스덴 전투
1813년 10월 라이프치히 전투
1814년 1월 프랑스전투 개시
1814년 2월 몽트르전투
1814년 3월 파리 입성
1814년 4월 나폴레옹 퇴위
1814년 5월 나폴레옹, 엘비섬으로 유배당함,
프랑스 제 1 왕정복고
1814년 10월 나폴레옹,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2020.3.29.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