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조금 더 큰 평수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그긴 얼만데요?"
"가격은 같습니다"
홧김에 따라
나섰다
바로 뒤에뒷집 부동산에서 계약서 쓰다 빠그러졌다
즉석에서 500만원 올리는데 감정이 상해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2001년,도시속의 시골 신갈에 살다
아들녀석 중학교 들어갈 무렵 학군에 고민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신도시
분당에 입성하는 순간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 평형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경비실,
집안 들어가서는 현관바닥까지 조금
달랐다
중간크기의 강아지 한마리 뛰쳐나온다
약간 산만한듯한 집안분위기를 쓰윽 보고선 전망을 보았다
21 층이라 환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듯하여 덜컥 계약을 하고 말았다
도배를 해 달라 할 것이지 바보같이 전세금 200만원 깍고서
내가 이사하기
전에 전 세입자가 집을 비웠기에
도배를 위하여 견적보러 가니 번호키로 잠겨있다
부동산에서 가르쳐준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그
부인은
연신 미안해한다
"제가 너무 바빠서.. 바빠서..얘 때문에..전국을 다니느라.."
애 때문에 얼마나 바쁘길레
저럴까 싶었다
도배하고 집안을 체크하다보니 각 장소의 조명등부터 주방의 수납장등
요소요소에 하자가 너무 많았다
열받아서
하나하나 적으며 체크하니 16 가지다
잔금치르는 자리에 전 세입자 와 있는데 남자다
어떻게 집을 그 상태로 살았는지 싶어 슬쩍
한마디 해 버렸다
그 집 입주하여 하나하나 내 손으로 다 처리하기까진 두달이상 걸렸다
하나하나 직점 사서 등달고
수리하고..
도데체 주부가 어떻게 살림을 살았길레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걍 인테리어 업자한테 맡겨버리면 될 것을
집안
곳곳엔 그 집 딸래미와 오빠의 스티커 사진들이 붙여있다
아,울 아들과 비슷한 또래구나 싶었다
주변에선 그 집을 인비네라 하고 인비엄마
인비엄마 그러는 걸 들었다
이 년 넘게 중국가기전까지 그 집에 사는동안 내내
전 세입자의 우편물이 왔다
그래서
인비엄마 아빠의 이름을 저절로 외워버렸고
대충 어디어디 쇼핑하고
거래하는지도 자연스레 알게되었다
중국살면서 잠깐 한국에
일 보러 나왔다
병원에서 잡지를 보다가 휙 펼친 페이지에서
그 아이 이름을 다시 보았다 신기했다
그 아이가 미국을 가서
어떻게 골프공부를 하는지에 대해 나와있었다
아~!그랬었구나 미국 갔었구나
자식을 잡지에 실릴 정도로 뒷바라지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2010 년 귀국후 간혹 신문의 스포츠란에 박인비의 이름을 간혹 보게
되면
반가워 더 유심히 읽게 되었다
같은 집에 살았던 인연이 정겹게 느껴지며 그 아이를 맘으로 응원했다
최근 박인비의
'LPGA 투어 US 여자오픈 우승'에 온 나라가 떠들석
9 시 뉴스,일간지의 스포츠란을 달구었었다
박세리와는 게임이 안 되는 엄청난
실적을 몇 주간 내는 걸 보았다
여자골프 세계 랭킹 1 위
남녀프로 골프 역사상 세계 최초'캘린더 그랜드
슬램'에
도전하는 세계 1위 선수,힐링캠프 출영 등등
지지난 달이었나.. 조선일보 토요섹션란을 보다 한 지면을 가득히 채운
박인비의 모든 것이 가족사가 함께 있었다
내가 익숙히 봐 온 박인비 엄마아빠의 이름 나이,등등도 소상히
하다 못해 내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뛰어나온 강아지에 대한 얘기도있었고
스티커 사진에 보았던 인비의 오빠도
참 자랑스런 대한의
딸과 같은 집에 잠시 살았다는 게 신기했고
그 무엇보다 자식을 그 자리까지 가게 뒷바침한
부모의 인내와 희생, 노력이 얼마나 많았고
고생이 심했을까 싶었다
모든 것을 올인했을까..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이 우승을 거듭할 때
자식의 슬럼프를 지켜보는 부모마음은
또 어땠을까
마침내 자식을 세계속에 우뚝 서게 한 그 부모가 존경스럽다
요즘 한동안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던 인비에 대한 기사가
좀 뜸해졌다
아들과 같은 나이의 그 아이가 계속 승승장구하여
온 국민을 즐겁게 하는 휼륭한 선수가 되길
희망한다
2013.09.09
첫댓글 우연치고는 특별하군요 ㅎㅎ ㅎ
분당에도 유명인들이 많이 살더라구여~~~
인비는 유명해지기 전부터 아셨군요.
한 사람의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안보이는 많은 사람의 뒷바라지가 필요하지요.
그래도 성공하면 보상을 받은 셈이지요.
오재밌는 이야기..박인비선수도 화이팅
아~ 박인비가 살던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는... 재미있네요~
갑자기 대전 살때 생각이 나네요~ 중대형아파트 단지 옆에 소형아파트가 들어오면서 문제가 발생했죠. 기존 대형아파트 주민들이 새로 전입하는 소형아파트 애들하고 같은반에 편성하지 말고 별도로 반을 편성하라고 데모를 하면서 문제가 생긴적이 있었습니다. 크는 애들 누가 나중에 잘 될지 어떻게 알고 단순히 아파트 평수로 구분하려고 드는 몰상식이 통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레옹님
맞아요
그런 문제가 있어요
저도 생각나는데 수원 우만동 주공 4차 아파트
첫 집장만 했는데
그기 젤 큰 평은 21평이었죠
근데 그 위쪽에 영세민,장애자를 위한
정부지원 아파트가 있었어요
같은 주민이기 싫다고
우리 4차 주공 엄마들 얘기하는 거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쁜인가요 아파트단지별로 이웃단지 소형평수와
대형평수가 서로왕래하던 차도을 큰평단지부녀회
에서 도로을 차단해서 돌아가는불편을 감수하고
있어요 10년정도됬어요 상권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있어 부녀회을 여러기관에 고발해도 해결이
되지않고있어요 결국 본인이 부녀회로부터 왕따에다
물건의뢰하지말라고 회람도 돌리고해서
막대한 손해을 봤습니다 참으로 큰평수로 삶의잣대가
되던때도있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