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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古朝鮮)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문헌자료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보조 학문이라 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내용도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국가가 영위되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 사회, 종교 및 구성인들의 생활유적(무덤, 유물, 거주지 등)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국가가 존재했다면 그 부근에는 이에 합당한 유적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형태이던 불완전한 형태이든 간에. 그러한 의미로써 기원전 10세기 이후 지금의 요서(遼西)지방에 존재했던 비파형동검문화(琵琶形銅劍文化)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향유했던 문화라는 연구 결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조선의 개국은 기원전 2333년경이다. 비파형동검문화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파형동검문화가 전개되었던 동일한 지역 및 그 주변지역의 선주문화를 검토해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요서지방에서 앞서 발달했던 청동기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위영자문화(魏營子文化) 등이다. 이에 먼저 요서지방 최초의 청동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를 검토해 본다.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걸쳐서 대체로 장성(長城)지대를 경계로 하여 아주 다른 두 문화권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쪽에는 중원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동쪽에서는 신석기시대 최대의 문화인 홍산문화(紅山文化)와 청동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가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하가점하층문화가 시작된 시기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대략 기원전 25세기〜20세기로 추정된다. 신석시시대 후기의 홍산문화를 바탕으로 동일한 지역에 청동기문화를 발달시킨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은 농경을 주(主)로 하는 정주(定住)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화의 분포범위는 북쪽으로는 서요하(西遼河)상류역의 남안(南岸)까지, 남쪽으로는 요서의 발해만까지, 동쪽으로는 교래하(敎來河)하류역~의무려산(醫巫閭山) 서록(西麓)까지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난하(灤河)로부터 요하(遼河)까지의 요서지방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청동기문화 유적에서는 성벽은 물론 돌무덤, 제단 등이 발견되었다. 즉 이러한 고고학상의 발굴성과는 하가점하층문화가 서서히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 ‘나라’라는 새로운 정치형태가 확립되거나 강화될 수 있었던 사회기반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중국학자들은 홍산문화 시기인 고국(古國)에 이어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는 정확하게 이름은 모르지만 강력한 국가(방국, 方國)가 존재했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 지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를 영위해온 토착 민족이 존재하였고, 자연스럽게 청동기시대로 들어서면서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국가로서 이름을 이어온 것은 (고)조선이 유일하다.
내몽고(內蒙古) 적봉시(赤峰市) 오한기의 대전자(大甸子) 유적에서는 대규모의 무덤유적이 발굴되었다. 또한 적봉의 성자산(城子山) 유적에서는 견고한 석성(石城)과 돌로 쌓은 제단터, 200기에 달하는 적석총과 석관묘, 대형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고, 적봉 삼좌점(三座店) 유적에서도 견고한 석성이 발견되었다.
유적을 직접 답사한 이형구 교수는 하가점하층문화의 유적을 보면 중원의 하(夏)나라(B.C. 2070년 건국)와 동시대에 성자산과 삼좌점 같은, 수천기의 석성을 쌓은 국가권력을 갖춘 왕권이 요서지역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중국의 학자들은 유적에서 발견된 유골을 가지고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의 유형을 추정하였다. 이들은 ‘고동북유형’에 속한다고 하는데(朱泓 길림대 교수), 중화인인 ‘고화북유형’과는 다른 인종이다. 그런데 능하문화(凌河文化=비파형동검문화=십이대영자문화(十二臺營子文化))를 영위했던 문화인들도 ‘고동북유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고조선이나 부여 등 예맥계 종족은 ‘고동북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화는 중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고조선의 종족과 같고, 비파형동검문화의 이전 문화로 인식되며, 비파형동검문화와 같은 지역에서 발전된 선(先)문화인 것을 볼 때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과 관련된 문화로 볼 수 있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시작 시점이 기원전 25세기〜20세기라는 의미는 고조선의 개국 시점인 기원전 2333년과 무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개국 이래 하나의 국가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상식상 고대국가가 수천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요서지방의 청동기문화를 분석하면서 나타나겠지만, 고조선은 개국 이래 기원전 1000년기 후반에 큰 변화를 겪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고조선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 학자들은 ‘전(前)조선․후(後)조선’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단군조선․한씨조선’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여튼 고조선의 초기 위치는 요서지방이 틀림이 없으며, 이 요서지방에는 고조선의 개국과 비슷한 시점에 하가점하층문화라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청동기문화가 발달하였고,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성의 유적이나 여러 유물들에서 고구려, 부여와 같은 우리 고대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 초기의 성격을 보여주는 문화단계로 설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보인다.
하가점하층문화가 소멸된 시기는 시작 시기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하한(下限)은 대략 기원전 1500년〜1200년경으로 추정된다. 내몽고 동남부~요서지역에서 토착문화로 발전하던 하가점하층문화가 소멸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이 문화가 소멸된 이후 하가점상층문화와 위영자문화가 이어서 발달하였지만 연속성이 떨어진다. 비록 문화 양상에서 계승성은 인정되는 추세이지만 문화 시기에서는 약간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소멸에 대한 가장 타당한 이유는 자연환경 문제로 보인다. 문화 후기에 요서지방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노노아호산(努魯兒虎山)을 중심으로 서쪽은 고원지대로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고, 이 지역은 기온 하강으로 인해 서서히 초원지대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경은 어려워지고 초원화 됨에 따라, 이어서 북방 유목민들이 초원을 따라 남하하여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중심지는 적봉 부근으로 노노아호산의 서쪽 지방이다. 기후 변화로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고 유목민의 침입에 따라 하가점하층문화를 발달시켰던 중심세력의 상당수가 노노아호산 동쪽의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여 후대에 대능하지역에 정착하면서 ‘능하문화’(요서비파형동검문화)를 일으켰고, 적봉지역에 남은 세력은 유목민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목성이 강한 문화(하가점상층문화)로 들어갔다고 보인다. 이러한 이주 시기 때문에 하가점하층문화와 후속 문화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요서지방 지리도>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할 점은 하가점하층문화가 지금의 요동(遼東)지방인 요하 동쪽으로는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당시 요서지방과 요동지방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 요동지방과 한반도 지역은 무문토기(無文土器)문화인들의 생활무대였으며 그들은 마제석검(磨制石劍)을 애용하고 죽은 후에는 지석묘(支石墓, 고인돌)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 마제석검과 지석묘는 요서지방과는 전혀 무관한 유적과 유물로, 특히 지석묘의 분포지역은 요하 동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요서지방에서는 한 기의 지석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요동반도와 인접하고 있는 산동반도에서만 지석묘가 발견된다.
따라서 초기 고조선의 강역은 요서지방에 한정되어 있었고, 요동지방에는 별개의 문화가 발전되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이 상황은 비파형동검문화 시기에도 변함이 없다. 앞으로 고조선의 국가 영역을 판단하는데 주의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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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한 지나친 해석은 다소 경계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여러선생들의 견해를 엮어 추론으로 이어져 있어 하나의 연결고리(추론)가 깨지면 논리구조 전체가 와해되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역사학입장에서 고고학을 보조학문으로 보는 글쓴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 고고학하는 사람은 문헌사학을 보조로 활용하여 해석해야 겠군요.. 그런데 보조학문으로 보는 고고학자의 논고가 인용논문중 이종호선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고학자이니 참 재미있습니다.
글쓴이가 추론한 부분중 주요부분 하가점하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를 연결하는 부분에 글쓴이가 인용한 논문저자들도 직접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무슨 새로운 자료나 분석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새로운 자료나 분석이 없다면 그저 추론일뿐입니다. 하나의 가능성만 열어 놓고 더 깊이 관련자료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단정적인 글은 무리한 해석 그이상도 이하도 아닐뿐입니다.
요서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과 관련이 있다면 단군조선? 요동은 부왕-준왕계통의 고조선, 그후 평양지역은 만왕의 후조선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요서와 요동을 너무 극단적으로 나누는군요. 이형구 교수도 중공식 홍산문명이나 요하 문명보다 <발해연안문명>이라고 부르자는 이유에는 몽고부터 만주 그리고 한반도로 이어지는 루트 문명의 분명한 흐름과 교류들이 보이기 때문에 저 역시도 그런 취지의 용어에 공감합니다. 요서에서 발견된 정교한 옥기류들이 요동의 수암옥이라는 것은 제법 알려진 이야기죠. 그리고 강원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옥귀걸이도 거의 동일한 형태로 이게 기원전 6천여년경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 연안 문명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길림성 통화현 여명문화(黎明文化)(BC3500 - 3000년)은 우하량 유적에서 발견된 제단, 신전, 적석총과 매우 흡사하여 우하량 홍산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들 세력이 요동으로의 교류도 보이고 있습니다. < 얼마전 역사 스페설에 나온 요서의 기원전 20세기경의 13개나 존재하고 있는 치의 성곽의 위성 사진형태가 고구려의 2번째 수도성으로 보는 집안의 국내성과 거의 동일형태임이 확인되었죠>
오타가 난 듯... 지석묘의 분포지역은 요하 서쪽을 넘지 못하였다고 해야 할 듯. 님의 논지에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발해연안 문명의 호칭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조선의 건국지역으로 추정하는 곳이 발해 해안가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요하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요? 속담에 소가 뒷걸음질하며 쥐를 잡는다고 하듯이 원래의 요수.요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지만 어찌됐든 지금의 서요하 상류인 노합하와 대릉하 사이의 지역을 지목한다면 이를 바닷가 문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지요? 그 문명이 동쪽으로 한반도와 왜에까지 동일하다고 하여도 발원지와 전파지를 구분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요하일대의 경우는 워낙 고도의 선진 문명들이 밀집해서 나오니 발원지와 주변 전파지의 구분이 필요함에는 동의합니다만 발해 연안문명의 연안에서 나름의 의미착각을 가질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지중해 문명처럼 그만큼 발해만 일대의 주변공간으로 넓고 다양한 교류들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발해문명 혹은 발해연안문명이라는게 좀더 넓은 시각으로 맞지 않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