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이지수 'Danse des esprits'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스타리에게서 온 은밀한 전갈.
"의붓어미와 붙어먹는 후레자식이란 소릴 듣고도 아무 느낌이 없느냐?
네 아버지는 너를 버렸다. 네 친어머니는 오래 전에 죽었고."
"그렇다면, 저 아이들은 네 '동생들'이 맞느냐?"
"제발, 내 아이들을 돌려줘요! 그 동안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어!"
위선, 혹은 독선. 그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상처입히는 이 왕국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지만 나는... 죽어도 내 아버지와 숙부처럼 살지 않겠다.
"문을 열어라."
"폐하의 명령이 아니면 그 누구라도 안된다 하셨습니다."
"덴마크를 치러 가신 아버님을 당장 여기 모셔올 수 있다면, 네 말대로 순순히 물러가겠다."
"그러면 저희는 다 죽습니다."
"선택지를 주마. 지금 죽겠느냐? 아니면 비밀을 지킬 테냐?"
아쉽게도, 서슬퍼런 제1왕자의 명령을 무시할 만큼 저들은 담이 크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늦으시면, 진짜로 저희는 오늘 안으로 다 죽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죠? 또다른 함정인가요? 어서 나가요!"
"동생들을 데려왔습니다."
"뭐라고요...? 지금쯤 파리에 있어야 할 텐데."
"못 가게 막았습니다. 아버님이 친히 적을 치러 나가셨으니, 그 동안 궁정을 돌보는 것이 제 일입니다."
"미쳤군요."
"왕께서는, 헬레나 즈노옘스카의 아들인 저를 죽이실 수 없습니다."
엘레오노르는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입니다.
레셰크의 혈통이 의심받는 지금, 눈앞에 선 의붓아들 - 소 카지미에시 - 만이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입니다.
"...염치없지만, 하나만 더 부탁드리지요. 단 한 번이면 됩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잉글랜드로 가는 편지 한 통만 쓸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부디 몸을 돌보십시오. 리쿠는 믿음직한 자이고, 어명으로 어머님을 치료하라 보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고맙습니다..."
덴마크군은 수적으로 불리합니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발데마르 대왕은 목청 큰 자들을 앞세워 도발을 시전합니다.
"왕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멍청아! 가서 네 마누라의 치마폭에 오늘은 누가 숨어드는지나 알아봐라!"
손에손에 도끼를 든 덴마크인들이 호탕하게 웃어제낍니다. 저렇게까지 나오는 건 뭔가 함정이라는 뜻입니다.
대원수 보구밀은 분노로 부르르 떠는 왕의 귀에 들리지 않게, 곁에 있던 주앙 데 바이아오에게 명을 내립니다.
"경은 한시도 폐하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시오. 일이 잘못되면, 여기가 우리의 무덤이 될 거요."
그는 일세의 명장이자, 충직한 신하입니다. 친아들인 소 카지미에시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죠.
조카의 피를 뒤집어쓴 채 반쯤 죽은 사람처럼 달아나던 그 모습을 또 보지 않기를 바랄 뿐...
"제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채를 빼앗아 손에 넣는 자보다 나으니라..."
아직 한 곳도 점령하지 못한 채 다수의 병력만 잃었습니다. 승점은 순식간에 -54%로 추락합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알프스 산골짜기 친구들을 불러야겠습니다. 주머니가 차 있을 땐 그 누구보다 믿음직하죠.
덴마크군은 포즈난에 죽치고 앉아 공성을 시작했습니다. 한 세기 전, 보헤미아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던 곳. 이제 다시 불타오릅니다.
비싼 와인에 절어 살던 스타리와 그 아들들도 다 뛰쳐나왔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요.
어그로는 동생이 끌었는데, 불타는 건 자기 영지. 하지만 그는 그다지 놀라지 않습니다.
"네가 피를 토하고 쓰러질 때, 내게서 빼앗아 삼킨 것도 게워내겠지. 나는 언제라도 그걸 도로 주워먹을 준비가 돼 있다."
예, 스타리는 그런 자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괴롭혔거든요.
이 세계에서 16세면 성인인데, 친형제인 둘의 나이차가 저만큼입니다. 놀랍게도 스타리가 더 오래 살아남았고요...
1177년 부활절 반란 때 패하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왕좌는 그의 차지였을 겁니다.
"프랑스가 배반했습니다! 덴마크를 도와 우리를 치러 올 것입니다!"
'당신의 딸, 마리 드 폴로뉴가 내 침상을 더럽힌 이유를 직접 들으러 가리다.'
필리프의 메시지는 뚜렷합니다.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구실로 동맹을 저버리고, 발데마르와 한통속이 되어 숟가락을 얹겠다는 소리.
프랑스군의 총병력은 1만 6천입니다. 장수들은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데, 왕은 수상할 정도로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오게 두어라..."
그 시각, 헨리 2세는 딸에게서 온 편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경애하는 아버님께, 못 뵌지도 너무 오래되었군요. 저는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단 하나만 빼고요. 부디 제 작은 소원 하나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만..."
첫댓글 "그 국가"가 온다(..)
La grande 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