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이지수 'Frei aber Einsam'
“다 똑같아. 너를 위해 일했는데…”
불행한 사고였을 뿐이다.
“내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준 딸을 박대한다면,
죽은 뒤에라도 지옥에서 크라쿠프까지 쫓아갈 줄 아시오.”
고귀한 엘레오노르여, 당신의 딸이 나를 버렸다.
“그는 커다란 불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 안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리라…”
그대의 하나님이 옳다. 이미 이 곳, 크라쿠프가 지옥.
“그들이 한 짓은, 그들의 방법대로… 짐승은 짐승답게 대우해야지요!”
나 또한 이미 그 추한 짐승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이젠 천륜마저 버리십니까? 저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차라리 천사의 가면을 쓰고 계실 때가 나았습니다!”
너의 순수함으로부터, 네 생명을 구하는 법을 가르쳤을 뿐이다!
레셰크, 엘레오노르, 살라흐 앗 딘, 시빌라, 카지미에시.
수많은 이름들이 스쳐가지만, 무엇도 붙잡을 수 없다.
아무도 필요없다. 아니, 아무도 없다.
누구라도 나를 좀… 이 악몽에서 깨워다오!
“마리 드 폴로뉴. 대단한 데 시집가서, 대단한 일을 했더군. 가엾은 필리프…”
프랑스 왕비를 둘러싼 수상한 소문이 이곳 에스테르곰까지 전해진 모양입니다.
“아, 그대의 주인 또한... 아내도, 조카도, 적도 뜻대로 못하는 어리석은 자 아닌가?”
헝가리-크로아티아의 왕, 벨러 3세가 거침없이 내뱉는 독설에 재상 보구발의 등엔 식은땀이 흐릅니다.
만약 폴란드가 크게 꺾인 틈을 타 그들마저 크라쿠프로 밀어닥친다면…
“하지만, 황제의 인질이라는 것이 뭔지 짐도 알고 있다. 좋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패하게 마련이지.”
보구발은 차분히 왕의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
‘네 이름은 오늘부터 알렉시오스다.’
도시들의 여왕, 아름다운 콘스탄티노폴리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비록 국혼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벨러와 카지미에시 모두 제국의 무게에 눌려 숨죽이고 살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마누일도, 바르바로사도 없습니다. 헝가리와 폴란드는 다시 한 번 위대해질 것입니다.
“짐의 딸 머르기트를 외면한 것은 괘씸하지만, 가서 그대 주인에게 전하라.
성 이슈트반의 가호는 유효하며, 우리 마자르인은 폴란인의 벗이라고.”
보구발은 왕의 푸른 눈동자 속에 담긴 무언가를 읽었습니다.
헝가리가 언제나 폴란드의 선한 이웃이었던 건 결코 아닙니다. 그는 뭔가 바라는 게 분명합니다.
“Magyar, Lengyel, két jó barát.”
마자르인과 폴란인, 좋은 두 친구.
동맹의 명분은 없어도 재차 우방임을 강조하는 벨러의 메시지에, 카지미에시는 어떤 답을 해야 할까요?
“가르치아를 불러라. 마자르인의 우정을 얻기 위해 얼마가 필요할지 알아야겠다.”
그 신성로마제국의 대군을 청야전술로 농락했던, 아버지 크시보우스티도
뇌물에 눈이 돌아간 헝가리의 배신으로 포로 신세가 된 일이 있습니다.
“Polak, Węgier, dwa bratanki.”
폴란인과 마자르인, 우애깊은 두 형제들.
벨러, 듣고 있나? 나는 아비를 거스르고 형을 해친, 사악한 크시보우스티의 아들이다.
내 ‘우정’의 선물을 받고도 또다시 배반한다면,
네 주머니에는 마지막 동전 한 푼도 남지 않으리라.
“프랑스의 원군은 어째서 오지 않느냐?”
폴란드와 계약한 스위스 용병단이 합류하자, 발데마르 대왕조차도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곁에 선 아들이자 뛰어난 전사, 윌란 공작 크누트 3세가 손을 들어 수평선 너머를 가리킵니다.
“…아버님, 저 깃발을 보십시오.”
바다를 가득히 메우며 몰려오는 거대한 선단.
“…붉은 깃발이 아니냐?!”
“프랑스가 배반했습니다. 원군은 말뿐이었습니다.”
“신성한 맹약을 내팽개쳐? 필리프… 이 비열한 놈!
언제까지 그 더러운 왕좌에 앉아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하느님께 맹세코, 이 아이는 거짓없는 폐하의 혈육입니다.”
마리 드 폴로뉴. 이 가련한 여인은 맨발에 촛불을 든 채 사제들과 빈민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필리프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아들들이 아무리 다툰다 해도, 지금은 내 힘으로 헨리를 이길 수 없다.’
“그대를 보내지 않으리다.”
마리 드 폴로뉴의 소생, 강보에 싸인 어린 제랄드는 프랑스 왕국의 합법적인 후계자요, 플랜태저넷과 싸우는 망치가 될 것입니다.
“가서 북해의 도적떼들을 토벌하라. 허나, 쓸모없는 싸움은 피하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의 수괴다!”
헨리 2세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햄프셔 공작이자 명장인, ‘정의로운 자’ 볼드윈을 보내어 사위를 돕게 했습니다.
아들들과의 불화가 극심함에도, 딸의 편지 한 장이 그의 결심을 굳혔습니다.
둘로 갈라진 잉글랜드군의 절반은 덴마크의 왕성으로, 나머지 절반은 발데마르와 크누트를 잡기 위해 그단스크에 상륙합니다.
“답을 찾았구나. 내 아우, 쓸모없던 다섯 번째 수레바퀴…”
포즈난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는 덴마크군을 보며, 스타리는 또 한 잔의 와인을 들이킵니다.
전통적인 꿀술도, 맥주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마시고 마셔봐도 성에 차지 않아.
달콤한 이국의 향, 기분 좋은 나른함. 아직 살아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아들은 대폴란드 공작, 딸은 보헤미아 왕비. 하지만 생의 종막이 가까워진 그는 고작 자식들의 궁정에 얹혀사는 식객 신세입니다.
언제나 등 뒤에 겨눠진 칼을 느끼면서요.
“그래야 한단다. 바퀴장인 피아스트의 후예인 우리는.”
“뭇 여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는 분. 대왕께서는 재미있는 노래를 많이 알고 계시더군요.
포즈난에서 들었던 그 곡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가서 네 마누라의 치마폭에 오늘은 누가 숨어드는지나 알아봐라!’
발데마르는 말이 없습니다.
‘너는 어서 피하거라.’
크누트 3세는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그는 자신을 겹겹이 둘러싼 잉글랜드군 앞에 몸을 던졌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덴마크는 왕의 몸값으로 지불된 포메랄리아 서부, 스톨프를 영구히 상실합니다.
내 아내의 치마폭에 싸였다 한들, 승자는 나다.
상처뿐인 승리를 거둔 스프라비에들리비 또한 웃을 수 없습니다. 곁에는 순진무구한 아들, 소 카지미에시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서 있군요.
“가서 네 어머니, 잉글랜드 여자에게 전해라.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어째서 만나지 않으십니까? 직접 가서 안아주십시오.”
“하느님께 맹세코, 이젠 내가 여인과 한 침대에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담
대립교황을 세운 잉글랜드와 노는 폴란드지만,
호노리우스 3세는 면죄부 구매에 이어 정결서약을 바치는 카지미에시 2세를 흐뭇한 얼굴로 축복합니다.
“다들 보았느냐? 이 자의 반만이라도 좀 닮아봐라. 특히 헨리! 너말이야 너!”
“어차피 잉글랜드 교회는 내 껀데? 종교개혁 당하고 싶니?”
“아… 악마의 장난이로다!”
첫댓글 벨러가 약속을 안지켜도 이미 동전 한푼도 없다는건 안비밀(..)
프랑스가 배신하고 영국이 신의를 지키는 세계라니 귀하군요.. 보다보니 크킹 오랜만에 끌리는데 3 한번 해야겠습니다 ㅋㅋ
실제 벨러 3세는 헝가리에서 명군 소리를 듣는 양반이라는데, 게임 속에선 뭔 전쟁을 그리 해대는지 항상 돈이랑 신앙심이 딸려요. ㅋㅋ
헨리 2세 'the Lawgiver'... 가슴이 웅장해지는 세계. 장인형님 충성충성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