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람보다 더 높고 가파른 山은 없다!
설악산 토왕폭에서 울고 웃던 사나이들이 어느 날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그들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빈약한 장비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가느다란 자일에다 자기 목숨을 매달고 정상에 반드시 오르고야 말겠다는 자기 열정만 믿고 끊임없는 도전을 계속해왔다.
그들의 산은 자기 이름을 세상에 떨치기 위한 방편도, 젊음의 특권을 내세우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그 누구의 손길도 빌릴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올려다보고 자연을, 무한대의 순수를, 순수한 열정을 꿈꾸어왔다. 그렇기에 그들은 쉬지 않고 영혼의 안식처인 '하얀 산'을 오른다.
'사람의 산'은 '산'이라는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산사람 박인식의 산악 에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얼음기둥 위를 오르는 알피니스트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운 열정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구하는 이 책은 결국 사람과 산은 하나라는 믿음으로 쓰여졌다.
이 책은 지난 1985년에 출간된 '사람의 산'의 개정증보판으로, 소장본(양장, 1000부 한정)과 보급본(반양장)의 두 가지 형태로 출간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산사진의 일인자로 손꼽히는 김근원 선생과 강운구, 김상훈 씨가 찍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산사진들과 저자 박인식이 갖고 있는 독특한 필체는 읽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사람의 산'을 읽다 보면 이 땅의 산들과 세계의 고봉들을 오르내린 산악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대 알피니즘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산과 인간이 갖는 존재적 의미에 대한 깊은 사고의 길을 열어준다. '자기해방에 몸부림치며 끝 모를 절벽에 몸을 던지는 알피니스트들의 역설적인 삶', 그 울림은 우리에게 더 크고 높은 산의 위용을 보여준다.
산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은 채 홀로 삶의 선을 넘어가버린 이들, 젊음의 시간을 죄다 산에 바친 이들, 그리고 지금도 산이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가는 이들..... 그들이 꿈꾸는 '하얀 산'과 '붉은 바위산'은 보통사람들이 오르는 산과는 다른 차원의 산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다가선다.
산에서 살다 산의 너른 가슴에 안긴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머나먼 이국 땅, 샤모니 알프스의 하얀 산에 자신을 묻은 유재원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저자는 풍문으로만 떠도는 그의 행적을 좇았으며, 그가 눈보라 속에서 외친 마지막 목소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한국 최대의 빙벽이라 불리던 설악산 토왕폭에서 이름없이 스러진 수많은 영혼들을 세상 속으로 불러냈다.
오늘의 산쟁이들 중 가장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인 유기수와 한국 사람으로는 맨 처음 아이거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박영배의 토왕폭 초등 경쟁, 안개 속에 피어나는 무암의 신비감에 끌려 세계적 알피니스트로 거듭난 허영호와 죽음의 환상과 싸우며 '피의 냄새'를 맡았던 허정식 등에 얽힌 비망록들은 70~80년대 한국 산악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알피니스트들의 뜨거운 열정 못지않게 산이 좋아 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산사진을 찍기 위해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닌 김근원 선생, 산에서 수행의 길을 구한 법정 스님, 수염과 베레모 때문에 설악산의 명물이 된 유창서 씨, 산장 수칙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노고단 의병대장 함태식 씨 등에 얽힌 이야기들은 읽는 이들에게 잔잔한 즐거움과 여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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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통하여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게 하는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산을 사랑하고 산을 지키고 산에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산에는 사람이나 세상만큼의 넓음과 깊이가 있는 것 같다. 이들의 탐험정신, 개척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큼은 그래서이다. 또한 이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산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도 알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어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신경림(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광기 어린 글로 산과 인간, 젊음과 죽음에 대한 가열찬 질문으로 일관한 그의 뜨거운 조사(弔辭)는 피처럼 선연한 그 순정성으로 인해 산에 생을 파묻은 이름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많은 산사나이들이 가슴을 흥분시키고 적셨다.
-최성각(소설가, <우리 시대의 기인, 박인식 편>에서)
그의 글을 읽으면 산 어느 한 곳에, 산이라는 절대 순수의 터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은 읽는 이의 발바닥부터 자극해서 이 땅의 수많은 산과 들을 밟게 하고 꿈틀대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안치운(연극평론가, '옛길' '산과 자연에 관한 책읽기'에서)
♧ 저자 소개 박인식
1951년 경북 청도 출생으로 조선일보 월간 <산> 기자와 월간 <사람과 산> 발행인 겸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한국소설가협회의 회원이다.
1985년 장편소설 '만년설'을 발표하면서 '산'이라는 화두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간 '서문동답', '백두대간'(1·2권), '종이비행기'(1·2권), '대륙으로 사라지다', '독도',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 '북한산', '햇살 속에 발가벗은', '반딧불이 되도록 그리운' 등의 저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