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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시바 총재가 29세였던 1986년 돗토리현에서 출마해 당시 최연소 중의원 의원으로 선출돼 현재 12선 의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의 길을 걷던 그가 자민당 총재 도전에 나선 것은 지난 2008년으로, 당시엔 아소 다로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면서 총재 당선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2년과 2018년에는 아베 신조와 맞섰고, 2020년에는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와 경쟁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시바 신임 총재는 일반 국민 여론 조사에서는 늘 차기 총재 후보감 1, 2위로 꼽혀왔고 지방 당원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그가 2012년에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신임도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주요 파벌 수의 ‘오더’가 좌우하는 결선 투표에서 아베에게 밀리며, 아베 정권 초기에는 내각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각료나 당직을 받지 않고 아베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꾸준히 표명하면서 ‘쓴 소리꾼’으로 인식돼 아베 정권의 눈초리를 받았다.
출처 : 뉴스 1
이시바 신임 총재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과거 한일 역사 문제에 있어서 우익 세력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 이목이 쏠렸다. 지난 2019년 이시바 총재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독일의 전후 반성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시된 글에 따르면 그는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다”며 “이런 상황이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표면화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이시바 총재는 “일본에도 한국에도 ‘이대로 좋을 리가 없다. 뭔가 해결해서 과거의 오부치 총리-김대중 대통령 시대 같은 좋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이보다 앞선 지난 2018년에는 와세다대 강연 도중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역사를 인식해야 한다”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대응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출처 : 뉴스 1
이어 그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해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개선해 온 양국 관계를 최소한 양국 간 역사문제 때문에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한편, 이시바 신임 총재의 당선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야 이 사람 드디어 한번 하네. 전향적인 한일 관계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선 축하는 드립니다만! 부디 일본 극우적 발언으로 대한민국 국민 마음에 상처 주는 일 없음 좋겠습니다!!”, “극우 중의 극우 여자 아베가 떨어지다니…. 거기다. 이시바는 그래도 한국과 잘해보려는 사람이고 역사 인식도 자민당에서 혼자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정도로 올바른 사람임….”과 같은 긍정적 평가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