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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직 우리와 함께하기엔 이르단다...'
리크사는 눈을 뜹니다. 곁에 있던 오빠, 아버지, 남동생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쿠야비아와 마조비아의 비옥한 땅을, 두 아들 미하일과 야로폴크에게 무사히 물려주기 전엔 죽을 수 없습니다.
이미 그녀는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한 번은 볼레스와프 실롱스키의 음모로, 또 한 번은 미에슈코 스타리의 음모로.
실롱스키가 리크사를 죽이려 했을 때는 왕이 그녀를 살렸고, 스타리가 왕을 죽이려 했을 때는 자신이 독배를 마셔 결과적으로 왕을 살렸죠.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 밤을 견디고 부활한 그녀는, 이제 왕 다음가는 권력자이자 그를 지키는 마녀가 될 것입니다.
"리크사."
두 번 다시 듣지 못할 뻔했던 그 목소리. 독의 부작용인지 아직도 눈앞은 뿌옇기만 합니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너의... 늙은 친구다."
순간의 진실. 우리는 서로를 원했고, 그랬기에 미래를 지켜냈습니다.
"폐하의 여종이자, 충실한 벗... 리크사입니다."
손 하나를 통째로 잘라내는 대수술을 견디고도, 필리프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검은 베일을 쓰고 대성당의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마리 드 폴로뉴는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그녀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는 저 유언은,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달라는 마지막 절규임을.
폴란드의 공주로서 크라쿠프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간청을 뿌리친 그녀는 이제 위대한 나라의 어머니, 프랑스의 왕대비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주님의 영광을 입으신 마리아여..."
그녀는 어린 시절 들었던, 오래된 폴란드어로 된 송가를 노래합니다.
"당신의 아드님, 주님께 택함 받으신 마리아여..."
죽은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그 잉글랜드 여자를 떠올립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그녀의 이름을 빌어 들이닥칠 폴란드의 군마가 곧 이 땅을 짓밟을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불행한 여인을 바라보는 프랑스 귀족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크라쿠프에서 온 저 암말은 이제 쓸모가 없소. 어서 치워버려야지... 적당한 곳이 없소이까?"
섭정인 벡생 백작 시몽 드 드뢰가 모두의 머릿속에 있던 말을 끄집어냅니다. 물론 선뜻 나서는 이는 없습니다.
왕대비가 사라지면 한 살짜리 왕 제랄드를 지켜줄 보호막도 엷어질 것이고, 그리 되면 다음 국왕은 시몽 자신입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
"우리의 정당한 영토인 툴루즈를 완전히 되찾고자 하니, 이번엔 그대의 힘을 빌려야겠소."
남프랑스의 태반을 차지하는 비옥한 영토. 아키텐에 이어 이 곳까지 잃는다면, 프랑스는 재기불능의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덴마크의 도발에 넘어가 승리를 헌납할 뻔했던 폴란드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단순 불가침 조약과 동맹은 다릅니다.
한번 맹세하면 무조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헨리의 청구서에는 빈틈이라곤 없습니다.
장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외손자를 치거나, 반대로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기독교 군주들에게 배반자라는 오명을 쓰거나.
카지미에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카즈메르, 입비뚤이 자식새끼야. 내 말 들어라.
넌 뒤가 마려워서 자리를 뜰 때도 죄책감을 느끼나? 그 자리에 싸지르는 것보단 나을 텐데."
고민에 빠져 있는 그에게 유대인보다 못한 놈의 우정펀치가 사정없이 날아와 꽂힙니다.
필리프 오귀스트는 폴란드가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를 노려 동맹을 깨 버렸습니다.
그리고 헨리가 보낸 사냥개들이 발데마르의 목을 노리자, 덴마크마저 배반하고 한 명의 원군도 보내지 않았죠.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거라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게 네놈이 말하려던 거겠지? 믿음직한 개자식아.
"대원수 보구밀은 듣거라. 주앙 데 바이아오와 함께 툴루즈로 갈 것이며, 스위스인들을 불러 싸움을 돕게 하라.
그리고 명심하라. 아무리 싸움이 불리해지더라도, 절대 파리로는 가지 말라..."
이건 장인과 사위 간의 의리를 지키려는 것이지, 딸과 외손자를 끊어내려는 게 아닙니다.
그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먼저 떠난 아내 헬레나 즈노옘스카가 용서하지 않겠지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체급은 비슷합니다. 약 1만 5천 내외.
그런 상황에서 폴란드가 잉글랜드의 편으로 참전하는 건 프랑스 입장에선 악재이긴 하죠.
물론 시몽 드 드뢰는 자신이 물려받을 수도 있는 나라가 찢겨나가는 꼴을 그냥 두고 볼 바보는 아닙니다.
"남의 밭을 탐내다가 제 집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마, 헨리!"
"웨스트민스터가 프랑스군에게 공격받고 있습니다."
"배를 돌려라!"
"잉글랜드 본대도 멀리 있는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주앙 데 바이아오의 시선은 대원수 보구밀을 거쳐 얼마 전에 합류한 프랑스 출신의 한 기사에게 쏠립니다.
'저 자를 믿어도 좋을 것인가...'
웨스트민스터를 구하기 위한 도강 작전을 놓고 장수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집니다.
프랑스인 아메데는 신속하게 움직이기를 주장했고, 그단스크의 람베르트는 이에 반대합니다.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 쳐야 승산이 있습니다."
"우리 쪽도 오랜 항해로 지쳐 있잖소?"
"저편은 시몽이 급하게 끌어모아 보낸 오합지졸들이라, 제대로 된 장수도 없습니다."
"프랑스인들을 칠 방법은 역시 프랑스인들이 더 잘 알겠지. 배반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게 네놈들이니까."
람베르트의 눈에는 특별 하사금을 받고 급하게 합류한 이 프랑스인이 기회주의자로 보일 만도 하겠죠. 하지만...
"말을 삼가시오. 지금처럼 중대한 때에 이 무슨 추태요?"
대원수 보구밀의 일갈에 장내가 조용해집니다. 그 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마그누스가 입을 엽니다.
"제가 좌익을 맡겠으니, 두 분께서 각각 중군과 우익을 맡아주시지요."
폴란드인과 프랑스인의 싸움을 과묵한 독일인이 말리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지네요.
정작 이 모든 사태를 불러온 늙은 사자는 웨스트민스터의 옥좌에 앉아서 여유롭게 웃고 있겠군요.
"오게 두어라. 폴란드의 카시미르는 절대 내 딸 엘레오노르를 버리지 못한다."
"일이 잘못되면, 원수님의 명령이 있건 없건 네놈 목부터 치겠다."
텃세라고 할지, 충성심이라고 할지. 그단스크의 람베르트는 끝내 저 프랑스 친구랑 화해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그니에즈노, 크라쿠프, 루블린에서 차출된 폴란드군은 강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프랑스군도 공성을 멈추고 교전 태세를 갖춥니다.
잉글랜드군은 부르봉의 포위를 풀기 위해 모조리 그쪽으로 이동했기에, 정작 자신들의 왕을 구하는 이 싸움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편지더미에 깔려 허우적대는 모습이 그리 보고 싶으십니까?"
가혹한 처벌에 대한 불만, 댓지같이 먹어대는 모습에 느끼는 역겨움은 여전하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보람이 있습니다.
Swaying. 좋은 기능이에요. 아내의 매독으로 인해 신뢰는 진작 깨졌고, 나도 조카딸과 정신적 바람을 피웠으니 무승부인 걸로 하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법이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어리석은 자요..."
"당신이 사서 고생하는 멍청이라는 걸, 저를 가두기 전에 깨달으셨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엘레오노르를 내심 어리다고 무시한 게 잘못이었습니다. 철부지인 줄 알았던 그녀가 왕비로서 대관식을 치른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녀가 원하는 것은 결코 남편으로서의 애정이 아닙니다. 평생 버리지 못할 적법한 아내의 자리. 그것뿐입니다.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았으니,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녀도 깨달은 모양입니다.
"엘레오노라와 레셰크는 저의 아이들이니, 그들의 결혼을 정할 권리는 제게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절대 외국으로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오래 안아주어야 하니까요..."
그녀를 헌신적으로 치료한 핀란드인 리쿠는 사십도 안 된 나이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먼저 죽었습니다. 그와 같은 현자는 다시 얻을 수 없겠죠.
절대 외국으로 보내지 않겠다... 아마도 자신의 의붓딸, 마리 드 폴로뉴와 같은 불행한 운명에 처하지 않도록 지켜주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leonora Angielska & Marie de Pologne
Dieu qui voit tout, regarde-nous, regardez-vous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신이시여, 우리를 보소서, 스스로를 돌아보소서
Dans nos maisons coule un poison qui a un nom
우리의 두 가문에 독이 흐르고 있으니, 그 이름은…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Comme un serpent dans vos âmes
당신들의 영혼 속에 똬리를 튼 뱀처럼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Qui vous fait juge mais vous condamne
당신을 심판자로 만들면서도 당신을 단죄하는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Je la vois brûler dans vos yeux
나는 당신들의 눈 속에서 타오르는 그것을 보네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Qui fait de vous des malheureux
당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Je hais la haine
나는 증오를 증오하네
Je vous l'avoue, je n'ai pour vous que du dégoût
당신께 고백하건대, 내겐 당신을 향한 역겨움뿐이네
Pourquoi faut-il que dans cette ville on aime autant
어째서 이 도시에서는 그토록 깊이 갈구해야 하는가
La haine, la haine...
증오를, 증오를...
Au nom du père, au nom du fils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Qui fait de nous vos complices
우리를 당신들의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C'est le courage qui manque aux lâches
그것은 비겁한 자들에게 결여된 용기이며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La sœur de l'amour mais qu'on cache
우리가 은밀히 감추고 있는 사랑의 자매
Je vous maudis pour toutes ces nuits
이 모든 밤을 바쳐 당신을 저주하네
À vous entendre sans vous comprendre
당신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말을 들어야만 했던
Vous en oubliez même le plaisir
당신은 즐거움조차 잊어버렸네
Le seul qui compte, c'est de haïr
당신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서로를 증오하는 것뿐
Regardez-vous elle vous enchaîne
스스로를 돌아보라, 그것이 당신을 옭아매고 있네
Cette putain de haine qui vous prend tout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이 빌어먹을 증오가
Regardez-vous vous n'êtes rien
스스로를 돌아보라,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네
Que des pantins entre ses mains
증오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
Comment peut-on faire en son nom
어떻게 그 이름 아래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Autant de crimes et de victimes
이토록 수많은 범죄와 희생자들을
La haine, elle vient pondre dans vos âmes
증오, 그것은 당신들의 영혼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네
Alors écoutez la voix des femmes
그러니 우리 여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라
La haine, la haine, la haine...
증오, 증오, 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