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해리 그렉슨-윌리엄스 'Burning the Past'
Ave, Regina cælorum
하늘의 여왕이시여, 찬미받으소서
Ave, Domina Angelorum
천사들의 여주인이시여, 찬미받으소서
Salve, radix, salve, porta
찬미받으소서, 구원의 뿌리여
찬미받으소서, 천국의 문이여
Ex qua mundo lux est orta
당신으로부터 세상에 빛이 솟아났나이다
1189년, 크라쿠프.
새해가 되었지만, 바벨 성은 아직 고요한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그 곳의 심장, 국왕의 옥좌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습니다.
스프라비에들리비(의로운 자)의 맏아들, 카지미에시입니다.
"차라리 천사의 가면을 쓰고 계실 때가 나았습니다!"
텅 빈 공간에 그 날의 오래된 비명이 울려퍼집니다.
세상 모두가 모후를 손가락질할 때도, 부왕의 진노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그녀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이름붙인 피와 장미의 왕관을 건 싸움이 시작되려는 참입니다.
카지미에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 자리엔 나보다 네가 더 어울리는구나."
서늘한 어둠을 가르며 스며드는 빛 한 줄기. 바벨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당신을 위해 왕좌를 데우는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네 어머니를 위해 세차게 대들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갔느냐?"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들은 위태로운 걸음으로 자리에서 내려와,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립니다.
아버지가 손수 잡아끌어 일으켜 세울 때까지도, 그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냐?"
"이 세상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뜻모를 대답. 그의 얼굴엔 세상을 알게 된 괴로움이 가득합니다.
이런데도 모든 걸 떠넘긴 채 도망치려 했다니... 이렇게 끝낼 거라면,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죠.
"무언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커다란 날개 밑으로 숨어드는 어린 새처럼, 아버지의 품에 기댄 그가 중얼거립니다.
"이토록 너를 괴롭게 만드는 자가 누구냐?"
플랑타주네. 그 단어만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습니다.
친아들을 품에 안은 순간, 적으로 돌변하여 또다시 잉글랜드의 군마를 이 땅에 끌어들일지 모르는, 그 여자의 뿌리.
'늦기 전에 결정하십시오. 아우를 지킬 것인지, 아들을 지킬 것인지.'
잔인할 정도로 분명한 질문을 남긴 채, 신의로 피아스트가를 섬겼던 유대인은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 못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차라리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내 커다란 울음으로 변해버리는 말들. 그 속에 든 것을 다 토해낼 때까지, 기다려 줄 수밖에요.
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기필코, 잘못된 방향으로 구르던 바퀴를 돌려세울 것이다.
지금은 그저 쉬자꾸나. 갈 길은 멀고, 밤은 깊다.
'이 나라에서 너만큼 아름다운 여인은 없을 것이다...'
아, 제발 가지 말아요. 당신도 나를 원했잖아요!
'여공작이 또 아들을 낳았다고? 나는 모르는 일이오.'
생부가 버린 아들. 하지만 이 아이는 틀림없는 피아스트의 혈손.
'이거 원 고개를 들 수가 없소이다. 왕가의 명예를 더럽히는 저 마녀를 그냥 놔두실 참이오?'
실롱스키... 아쉽게 됐군. 나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권세를 탐해 서로 죽여대는 너희들은 모를 테지. 새 생명을 품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상념에 잠겨 있는데, 밖이 소란해집니다.
"문을 열어라."
"왕비 폐하, 제발..."
"너희야말로, 언제까지 나의 관대함을 시험할 참이냐?"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음성이 닫힌 문 사이로 파고듭니다.
"나는 너희 여주인의 여주인이니라!"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는 것이, 우리 피아스트가의 명예.
"이제야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일어나서 예를 올릴 수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천한 것... 네 꼴을 좀 보거라. 우습기 짝이 없구나."
상냥한 안부인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증오해 마지않는 그녀를 눈앞에 마주하니 입안에 피맛이 감돕니다.
"제 이름은 리크사입니다."
"리크사 쿠야프스카(쿠야비아의 영주). 너를 섬기는 자들은 '여대공'이라 부른다지?
하지만 네 행실이 창부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이냐?"
"플랑타주네의 왕녀시여. 저 또한 선친께서 살아계실 때는 피아스트의 왕녀였습니다."
"네가 감히...!"
"고귀한 엘레오노르의 딸인 당신이, 이유없이 이곳까지 오셨을 리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왕께서 더는 찾지 않으시니, 얼마나 적적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밤시중을 들 하인 몇 명쯤은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에게 배신의 고통을 안겨주고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아내의 자리에 들어앉은 당신을 저주한다.
키예프와 화평을 맺는다는 미명으로, 유일한 딸인 나를 저 소처럼 우둔한 자에게 팔아버린 아버지를 저주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열정을 품고도, 영원히 나를 그와 맺어질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몸 속에 흐르는 같은 피를...
온 마음으로 저주한다.
작은 물잔을 들이키던 그 때와 같은 고통이 다시 한번 휘몰아칩니다.
그녀의 가시돋힌 두 손이 목을 거세게 조여옵니다. 피부를 파고드는 거센 살의.
"네가 내 선량한 아들의 호의를 빌미삼아, 내 남편을 손아귀에 넣으려던 것을 모를 줄 아느냐?
대답해라, 저 아이는 누구의 씨냐? 진실을 고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머리맡의 요람에서 귀를 찢는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흠칫 놀란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죽음은 또 한 번 뒤로 물러섭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법.
"...네 남편에게 돌아가거라..."
그의 잔인한 판결을 되뇌입니다. 그녀가 만족할 만한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그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 누이인 너를 취하는 죄까지 범할 수 없다..."
머리칼을 파고들던 그의 따스한 손길을, 두 번 다시 느낄 수는 없겠지요.
"...이 방을 나가서, 네 자식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겠느냐...?"
이 나라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외로운 여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돌아가십시오. 당신의 순결한 남편에게..."
"너를 죽일 수도, 용서할 수도 없구나."
나 또한, 그녀의 사자와도 같은 분노 속에서 또 다른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자신의 하얀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것 따위가 아님을...
흰수리는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그 짝을 바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