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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공포소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 1
http://cafe.daum.net/suttlebus
(불펌 절대 금지)
그것은 내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꼭 5년째 되던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철들고부터 스티븐 킹을 야구보다 좋아하기 시작한 나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목사가 되기로 했던 꿈을 접고 유명한 공포소설 작가가 되는 쪽으로 항로를 전향했다. 성경 구절을 줄줄이 읊고 다니던 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무수한 공포소설 작가들의 문장을 줄줄이 꿰고 다닐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글쓰기에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고 이제 곧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리란 야무진 믿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것은 야무진 착각이었다. 곧 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국내에서 공포소설로 성공하기란 전직 대통령이 유리창 닦이를 하는 것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들의 공포소설마저도 국내에서는 빙하기 같은 냉대를 면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나라만큼 공포소설의 대중적 가치에 혐오를 느끼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문학적 경계는 과연 어떤 선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었으나 나이 드신 대가들은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는 감별사 마냥 그것을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별로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도 힘든 글을 쓴 작가일지라도 그 글의 경계가 순수문학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무슨, 무슨 상과 트로피를 잔뜩 안겨다주며 역사와 시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해석이 뛰어난 작가라는 미사여구로 칭찬하며 아무도 읽지 않을 책에 엄청난 포장을 하고 국내에서 최고로 좋은 출판사에서 출판하게끔 했다.
무협소설 속의 무림정파가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 비서를 자기네들끼리 전파하며 그 무공만이 영세를 지배할 천하제일의 무공인양 속세의 군중들을 선동해서 강호를 주름잡으려는 것처럼 그네들은 그렇게 끈끈하게 뭉쳐 서로를 돌보며 사파들의 등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파들은 서로 힘을 합쳐 세력을 키울 생각일랑 않고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견제하기에 바빴으니 이 땅에서 다양성과 새로움에 대해 무엇을 더 기대하랴.
그러던 중 나는 나의 먼 친척 중 한 명이 일본에서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잘하면 지인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책을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출국을 결심했다. 일본의 친척집에서 머물며 수년 간 공들여 쓴 두 편의 장편을 친척에게 보여주었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열려 있었다. 그것이 우선 나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영영 열리지 않는 닫힌 문 앞을 서성이는 소수가 되기보다는 두드리면 열리는 문 앞에 몰려드는 다수에 속하고 싶었다. 적어도 가능성이라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니.
일 년 반만에 행운이 찾아왔다. 나의 소설이 편집장의 최종승인을 받아냈고 여름 시즌에 출간되어 별다른 홍보도 없이 5만 부라는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뒤이어 나의 두 번째 장편이 출간되었고 그 책은 어느 정도의 홍보와 함께 20만 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유미리 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내에서 성공한 한국 작가라는 수식어가 작가로서의 내 위치를 영광스럽게 했다.
그 즈음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예전에 내가 원고를 투고한 적이 있던 출판사에서 일본에서의 내 성공을 듣고 내 책의 한국 출판을 의뢰해 왔던 것이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우선은 괘씸해서였고 두 번째 더 타당한 이유로는 어차피 한국에서는 안 팔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기득세력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고 군중들은 그것에 세뇌되어 있을 터이니. 때문에 나는 내 책의 한국 진출은 꿈도 꾸지 않았으며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진출을 모색 중이었다.
3년만에 출간한 나의 세 번째 장편은 전작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무려 3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제 출판사는 나를 특급 작가로 대우해주었다. 행여나 내가 신작을 다른 출판사와 계약할까봐 조바심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만큼은 정말 두 무라카미가 부럽지 않았다.
세 번째 작품의 성공 이후 나는 일본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언제부턴가 나의 출판 매니저가 되어 있던 친척에게 한 달 정도 머리를 식히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오겠노라고 말하자 친척은 자신의 친구의 친척이 소유하고 있는 작은 별장을 소개해주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그 별장은 친척의 친구의 친척이 소유주로 되어 있지만 그는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라도 흔쾌히 별장 열쇠를 빌려준다고 했다. 친척은 그 열쇠를 그에게서 건네 받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7월이었고 아스팔트마저 녹여버릴 무더위가 유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다.
그 마을은 이웃 마을과 한참 떨어져 있었고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모양새가 고립됨을 은밀히 즐기고 있는 듯했다. 마을에는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좀체 볼 수 없었으며 그 흔한 개나 도둑고양이들의 움직임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내리쬐는 태양 볕에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는 그 마을은 언뜻 시공간의 흐름이 정지된 한 장의 빛 바랜 사진처럼 보였다.
어찌됐건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속 편히 지낼 수 있었으니. 내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미덕이란 다른 이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었고 나는 언제나 그것에 충실했다. 때문에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와 '어머나 이 집은 인테리어가 참 좋네요' 하며 어서 차 한잔 대접해 주기를 당연시 기대하는 이웃의 끈적거림을 싫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을 불순한 사상쯤으로 치부하며 '공동생활의 미덕이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싫어한다. 무엇보다 나는 나와 견해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이해관계의 절충에서 빚어지는 모든 정신적 소모를 싫어한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관여하지 않으면 간단하게 해결 될 것을 무엇 하러 그렇게 부대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서로에게 고역이다.
내가 머문 별장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2층 양옥이었다. 썩 훌륭한 별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만의 홀가분하면서도 아늑한 휴식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나는 언제나 오전까지 달콤한 늦잠을 잤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나의 다음 작품을 구상했다. 저녁에는 2층 테라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초저녁의 어스름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풍에 흔들리는 머리 위의 주마등은 은은한 나비 문양의 빛을 발하며 나를 꿈결같은 황홀감으로 안내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날 오후, 그런 나의 생활이 균열을 조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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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해안을 따라 난 빈집들을 지나 바위언덕을 한 바퀴 돌고 별장으로 돌아오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작은 키의 남자가 화단에 물을 주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화단에는 국화꽃을 닮은 분홍색 꽃이 만발해 있었다.
남자는 꽤 잘생긴 편이었으나 콧등에 걸친 뿔테 안경이 보기 거북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키에 비해 비교적 비대한 몸집이 잘생긴 외모를 망치고 있었다. 내가 서먹하게 인사를 건네자 남자는 사실 나를 잘 알고 있다며 반갑게 다가왔다. 남자가 구사하는 일본어에는 방언이 적당히 섞여 있었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얘기인즉슨 그 남자는 내 소설의 팬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다. 그는 친필 사인을 부탁한다며 잠시 집으로 들어와 차라도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에게서 쏟아질 엄청난 양의 수다에 벌써부터 질린 나는 중요한 전화가 올 데가 있어 그만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무척 아쉬워하며 그럼 저녁쯤에 방문해 주시면 안되겠냐고 다시 물어왔다. 처음 보는 남자의 집에 들러 뻔한 가식을 주고받으며 어색한 표정관리를 해야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기에 적당한 핑계를 대며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비교적 작은 남자의 키 너머로 성 같이 으리으리한 4층 양옥의 2층 가운데 창에 눈길이 갔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초상화가 아닌가 생각했다. 너무 신비스러웠기 때문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그 상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그것은 창문에 비친 여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히 천상의 얼굴이었다. 가늘고 긴 눈썹 아래로 커다란 눈동자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의 눈부심과 그윽한 애수가 녹아든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적당히 통통한 볼은 홍색의 연꽃처럼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하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입술은 아득한 세계의 어떤 열정과 그리움을 애타게 목말라하고 있는 듯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은 양쪽으로 늘어져 가늘고 긴 목과 아담한 어깨선을 하늘하늘 감싸며 비단 같은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나는 발끝이 땅에 닿아있지 않고 허공을 멋대로 부양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남자는 어항 속의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듯이 눈을 끔벅거리며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특별한 일이(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이를테면 일본열도가 바다에 급격하게 가라앉고 있다는 속보 따위가) 없다면 저녁에 들리겠노라고 남자에게 약속했다. 남자는 근사한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겠노라고 말하며 허리 굽혀 인사했다.
별장으로 돌아온 나는 카운터 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저녁이라면 언제쯤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손목시계부터 탁상시계 벽시계 등 시계란 시계는 모조리 확인하며 별장 안을 부산히 돌아다녔다. 초침의 움직임마저도 그토록 더디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전화를 걸어 친척에게 별장의 이웃에 사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친척은 아는 바가 없었다. 6개월 전 자신이 머물렀을 때만 해도 이웃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고 그 집에는 집을 판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노라고 친척은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거실을 빙빙 돌았다. 머리 속에서 계속 아른거리는 여인의 초상은 마약 같은 힘으로 나의 정신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희미하게 사라져갈 때쯤 나는 금단현상과도 같은 두통, 불안, 흥분, 허탈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마침내 조급증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해가 서쪽으로 채 기울기도 전인 4시쯤 나는 댓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이웃집까지 가는 데는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남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내가 일찍 와서인지 조금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직 저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서재에 가서 바둑이라도 두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서재의 소파에 앉았다. 그는 끊임없이 나와 나의 작품에 대해 물어왔고 나는 그런 것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힐끗힐끗 주변을 살폈다.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이 남자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그저 잠시 들렀던 이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나만의 아늑한 휴식을 제쳐두고 이 지겨운 남자의 압박을 선택한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러한 나의 걱정은 다행스럽게도 기우였다.
바둑판에 포석의 지도가 아름다운 선을 이어갈 즈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실은 선생님을 이렇게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바로 제 아내를 소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라 솔직히 누군가에게 무척 자랑하고 싶었답니다."
남자는 그렇게 아내에 대한 운을 띄웠다.
"너무나 아름다운 진주를 금고 속에 꽁꽁 숨겨두고 혼자 보는 기분이라 할까요. 저는 그것을 꺼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이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공유되어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촌구석에 오가는 사람들조차 드무니 제가 얼마나 속이 답답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남자는 허허 웃으며 보석을 지닌 자만의 특유의 여유를 과시했다.
내가 살짝 미소지으며, 기대감이 드러나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며 '그럼 지금 부인께선?' 하고 묻자 남자는 '아내는 지금 식사 준비중입니다' 라고 말하며 주방이 있을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켰다.
나는 남자가 가리킨 곳을 응시했다. 그곳은 어딘가로 이어지는 복도였고, 복도는 동굴처럼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실내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마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공포영화 '드라큐라'에 등장하는 고성의 내부를 연상시켰다. 남자에게 왜 이렇게 실내가 어두운지 물었다. 남자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실은 아내에게 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실내를 어둡게 장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병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부부만의 문제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니. 그런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실은 아내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기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남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요리 솜씨도 일품이죠. 그 가녀린 손끝 어디서 그런 맛이 나오는지 아마 드셔보시면 다른 음식에는 혀도 닿기 싫어질 겁니다. 환상 그 자체죠."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지켜 올리며 찬사를 했다. 오죽하면 안경너머로 남자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내가 자신의 말을 신뢰해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쯤 되자 그 신비의 여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바둑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빨리 그 여인을 만나 보고 싶었고 그 여인이 만든 환상적인 요리도 맛보고 싶었다.
괘종시계가 4시 반을 알렸다.
남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자 남자는 복도 중간쯤 왼쪽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일어서자 남자는 자신이 바래다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손을 저어 말렸다. 내가 극구 사양하자 남자는 무언가 마땅치 못한 것이 남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남자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는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다. 흡사 학교 복도 같았다. 야간 자율 학습 도중 불꺼진 복도를 지나 화장실을 찾던 학창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멀리 보이는 복도 끝에는 노란 불빛이 망울져 있었다. 그곳은 주방인 듯 싶었다. 조그맣게 싱크대 같은 것이 보였고 토닥토닥 하는 소음도 흘러나왔다. 잠깐 잠깐씩 일렁이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여인이겠지.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기묘한 어떤 것을 보고 말았다.
분주히 움직이던 복도 끝의 그림자가 무언가를 확인하듯 뒷걸음질 쳐서 고개를 내밀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얼굴이 내가 상상했던 그 2층 창문의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얼굴은 너무나 기이했다. 머리카락은 완전히 라면을 연상시켰다. 아니 그보다 더 뽀글뽀글한 모양새였다.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꼬불꼬불한 용수철들이 두피에 빽빽이 박혀있는 듯했다. 이제껏 그렇게 보기 흉한 파마머리는 처음이었다. 묘하게 치켜 뜬 두 눈은 벌겋게 뒤집힌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언뜻 눈동자 위에 붉은 눈동자가 하나씩 더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볼펜 끝으로 콕콕 찍어서 뚫어놓은 듯한 검은 점 두 개만이 코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었다. 입은 윗입술이 보이지 않았다. 허옇게 드러난 아랫니와 두툼한 아랫입술만이 기괴한 벌레처럼 턱 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기괴한 인물은 전체적으로 고동색을 띠고 있었으며 그것은 마치 스타킹을 몸 전체에 뒤집어 쓴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허둥대며 화장실을 찾았고 볼일을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복도를 벗어나 남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남자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했던 것처럼 관찰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 표정을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라고 남자가 물었으나 나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답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의 사물 지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리라. 세상에 그렇게 생긴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분명 가정부의 모습을 잘못 본 것일 테다. 그런 생각들을 계속 하느라 바둑은 나의 완패로 끝이 났다.
5시 정각에 짙은 향수 냄새와 함께 남자의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하게도 별장에서 그녀의 모습을 그리며 흥분을 금치 못했던 그 때의 기분만큼 설레지는 않았다. 산악 구보를 막 마쳐 후끈해진 몸을 시원한 물로 씻어내기를 갈망하는데 마침 욕실에 누군가가 있어 몇 박자 쉬었다가 샤워를 해야할 때의 밍밍해진 기분과 흡사했다.
부인의 외모가 얼음으로 조각한 예술작품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고 허탈한 것은 왜였을까. 어렵게 완성시킨 퍼즐 조각에 한껏 고조되어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심술궂게 흐트러뜨려 놓고선 다시 퍼즐을 완성시켜 조각난 기분을 고조시켜보라고 종용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이상야릇한 느낌들은 부인이 내게 매끈한 손을 내밀 때쯤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부인의 손을 잡은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무릎을 꿇고 그 손에 입맞춤을 해버렸다. 고대 기사들이 귀족부인들에게나 했을 법한 그러한 경외로운 입맞춤을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나 한 것 마냥 해 버린 것이다.
창피함에 몸둘 바를 몰라 쩔쩔 매고 있는데 정작 부인과 그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포소설을 주로 쓰신 다죠?"
부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마저도 천상의 소리 그 자체였다.
"상상력이 뛰어나신가봐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서 헤어나지 못해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늪에 빠진 사람처럼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녀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조건적인 긍정만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끔찍한 불행의 시초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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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 절대 금지)
첫댓글 오.. 드디어 새로운 글이...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_+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정말 궁금 해요^^
그 아내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며, 그 남자가 본 괴물은 무엇일까. (기대 기대) 빨리 올려주세요. 궁금해요 ^^;
너무 궁금해요오ㅠㅠㅠㅠ 얼른 다음편이 뜨기를♥ (하트는 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제목 부터 마음에 들고 재밌네요^^
와!!!궁금하네요!!재밌어요!!화이팅!!
답글주신 Young님, 미옹이님, 난세의 영웅님, 꼬마소년군님, ㈜알빠여♨님, ★‥anythin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이번 장르는 '미스터리+괴기'입니다. 혹시라도 '스릴러+추리'를 기대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의 제목은 성경 10계명에 명시된 구절이며 동명의 영화도 존재합니다~!
안녕하세요. 제이슨님을 얼마나 기달렸는지 몰라요^ㅡ^ 님 글 읽는게 생활의 활력소 에요. 요번에도 재미있고 무서운 글.. 감사합니다.ㅋ ㅣ득ㅋ ㅣ득
비명님 답글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만큼 창작을 함에 있어 힘이 되는 것은 없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계속해서 공포소설 많이 사랑해주세요~!~
재밌어요 ^^ 몇편 예상하고 계시나요?
아폴로켄님 답글 감사합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은 5편 정도에서 끝이 납니다.
역시 글 잘 쓰세요^^ 어느분이 글 올리셨나 했는데 기다리던 제이슨 친구^^ 분이였네요^^ 건필하세요^^
이번엔 총 몇 장이나 프린트 될런지...종이가 부족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으아~ 초반부터 흥미진진하네요 ^ ^- ㅋㅋ 또읽으러~ ㅎㅎ
역시...대단하십니다...-_-b
;ㅁ; 묘사가 거의 환상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