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차 윤 옥
요양원에는 비상구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들이 의사라고 자랑하던 할머니가
시신으로 운구運柩되는 저녁나절에
비로소 하늘 문이 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도 비상구를 알려주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비상구 불빛이 깜빡거린다
- 시집 식은 찻잔, 계간문예시인선 210
詩評
요양원이라는 닫힌 공간과 죽음을 통한 슬픈 해방
시 「비상구」는 현대 사회의 쓸쓸한 단면인 요양원을 배경으로, 삶의 황혼기에 마주하는 단절과 소외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의사 아들을 자랑하던 할머니의 자부심도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시인은 살아생전 열리지 않던 ‘집으로 돌아가는 문’이 역설적이게도 사후에야 ‘하늘 문’으로 열리는 비극적 해방을 제시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탈출구 속에서 홀로 깜빡이는 비상구 불빛은, 현대인들이 피할 수 없는 고독한 실존과 쓸쓸한 생의 종착지를 비추는 이정표로 다가온다.
차윤옥 시인 프로필
문단의 중심에서 묵묵히 기획과 편집을 이끌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쳐온 중견 문학인이다.
등단: 《문학 21》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주요 경력: 현 《계간문예》 편집주간
한국문인협회 사무처장 역임
《월간문학》, 《계절문학》 편집국장 역임
한국문학발전포럼 사무총장,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감사 역임
문학과학통섭포럼 상임대표
주요 저서
시집: 『식은 찻잔』(2024, 본문 수록 시집), 『두꺼비집』, 『노래하는 삶』, 『순간포착』, 『맞닿는 평행선』 등
영역 시집: 『FOR YOU 너를 위해』
시선집: 『아침햇살』
수상 내역: 사임당문학상, 서초문학상, 시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