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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장, 하청업체 이사 등 집유, 법인은 1000만 원 벌금
“가진 자들의 판결, 노동자 죽음 또 외면”
안전감독 서류 서명 위조, 경찰 조사 결과 등 배제
경동건설 하청업체 노동자 정순규 씨(57, 미카엘) 산재 사망 1심 선고에서 경동건설 현장소장 등 3명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16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서근찬 부장판사(형사4단독)는 원청인 경동건설 현장소장, 하청인 JM건설 이사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각 법인에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서근찬 부장판사는 “하도급을 주더라도 원청의 현장 관리감독과 주의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라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경동건설과 하청업체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서 부장판사는 공소사실 중 사다리 이동으로 사고가 발생한 점만을 유죄로 인정한다면서, 사고 발생 경위에 대한 목격자는 없지만 일부 피해자 책임이 있을 수 있고, 유족과 합의하지 않은 점을 참작해 양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족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 등은 즉각 재판부를 규탄했다.
이번 선고가 지난 5월 12일 결심공판 구형량에도 못 미치는 데다, 업체 측 책임의 경중을 가릴 관리감독자 지정서 위조, 비계 안쪽 추락 가능성 등이 공소사실에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일 정순규 씨 유족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가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심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제공 = 정석채)
검찰은 경동건설 현장소장, 하청업체인 JM건설 이사에 각각 장역 1년 6개월,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에게는 금고 1년, 원청과 하청 법인에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 과정에서 업체 측은 정순규 씨가 관리감독자로 지정돼 있다는 이유로 정 씨에게 산재사망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관리감독지정서의 자필 서명은 정 씨가 아닌 하청업체 소장이 대신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고 직후 경찰은 정 씨가 사다리 이용이 아닌 작업 도중 비계 안쪽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 씨가 작업할 당시 비계에는 내부 난간대, 추락 보호망, 안전대, 발끝막이판 등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사다리가 안전한 통로가 되도록 비계 안쪽에 설치하거나 사다리 이용 시 추락 위험을 방지하고,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관리, 감독했다면 피해자의 추락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피고인들을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목격자 없었다면서도 피해자 책임 인정한 재판부
“위험한 사다리 이용한 것은 피해자 선택” 변호인단 입장 그대로
그러나 재판부는 사고 원인 규명에 핵심이 될 이 같은 사실을 배제한 채 목격자가 없었다고 하면서도 피해자 책임을 인정했는데, 이는 경동건설과 JM건설 변호인단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안전한 계단식 통로가 설치돼 있었다. 안전한 통로로 갈지 위험하지만 보다 빠르게 사다리를 이용할지는 망인의 선택이다. 근로자도 위험한 길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없지만 망인이 사다리를 잡은 그 부분을 놓치는 바람에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 사망에 있어 피고인들의 책임 요소가 그렇게 많다고 보긴 어렵다”
결심공판 당시 최후변론에서 업체 쪽 변호인단은 계단식 통로가 있지만 망인이 빠르다는 이유로 사다리 이동을 선택한 것으로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안전 관리감독의 최종 책임이 있는 두 법인의 대표진은 작업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계단을 뒀고, 안전장치가 없는 비계와 사다리를 방치했다. 그런데도 산재 사망이 일어나자 피해자가 안전 계단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사고 직후 비계에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정순규 씨가 작업하던 비계. 내부 난간대, 추락 보호망, 안전대, 발끝막이판 등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사진 제공 = 정석채)
사고 직후 안전장치가 설치된 비계 모습. (사진 제공 = 정석채)
이날 선고 뒤 유족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 진보당부산시당 등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정순규 씨 아들 정석채 씨(비오)는 “솜방망이 판결로 참담한 결과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께 정말 죄송하다”면서 “앞으로 경동건설 주장대로 되게 두지 않겠다. 1년 8개월 동안 정말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지금은 부산본부를 비롯해 시민, 활동가, 언론이 지켜보며 유족들을 응원하고 함께해 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검찰이 항소하게끔 유족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면서 “저희 유족은 3심까지 긴 과정을 각오하고 실형 선고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부산운동본부 공동대표 이영훈 신부(가톨릭노동상담소장)는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지만 “법이 있더라도, 법 집행에서 가진 자 중심의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게 또 한 번의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이어 “부산운동본부는 유족과 함께 진상규명과 진정한 사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면서 “검찰은 항소를 통해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재판 결과를 지켜본 연대자들과 산재 유족들은 “단 1분 만에 끝난 선고, 그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날림 판결”, “시대에 뒤떨어진 권위적이고 여전히 자본의 시각으로 수사, 기소, 판결하는 사법부에 함께 분노한다”, “사업주들의 나태함과 안일한 안전의식이 불러온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는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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