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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의 예물 규례
민 15:22-31
22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23 곧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한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24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25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부지중에 범죄함이며 또 부지중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헌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받을 것은 온 백성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음이니라
27 만일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8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29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든지 누구든 부지중에 범죄한 자에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30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31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민 15:23-31 / 또한 너희 후손들이 내가 모세에게 일러준 이 규정을 지키지 못하였을 경우, 24) 너희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 규정을 잘 몰라서 지키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나 여호와에게 번제물로 바쳐 향기로운 냄새를 내어라. 그렇게 하여 향기로운 냄새로 나를 흐뭇하게 하여라. 또한 규정대로 수송아지뿐만 아니라 곡식제물과 전제물도 함께 바쳐야 한다. 또한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쳐라. 25) 그리고 제사장은 이스라엘 온 공동체를 위하여 정결예식을 거행하여라. 그러면 온 공동체가 깨끗해질 것이다. 이는 공동체가 잘 모르고 죄를 범하였지만 그 허물 때문에 나 여호와에게 속죄제물을 바친 까닭이다. 26) 이와 같이 온 공동체가 잘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온 공동체뿐 아니라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이방인도 모두 용서받게 될 것이다. 27) 만일 어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게 되면 그 사람은 일년된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바치고 28) 제사장은 이 사람을 위하여 제단에서 정결예식을 거행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의 죄는 용서를 받으리라. 29) 이 규정은 이스라엘 본토민이든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30) 하지만 일부러 잘못하여 죄를 지은 사람은 이스라엘 본토민이든 또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이방인이든 여호와를 욕되게 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31) 그 사람은 나 여호와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일부러 그 명령을 어겼으므로 결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출애굽 1세대 백성들이 그 약속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속죄제에 대하여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니(22-26) 회중범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범죄는 개인범죄보다 그 잘못이 더 과중한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 단위의 하나님과의 단절,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끊어짐입니다. 이는 또한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에게 받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에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은 부지 중에 지은 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죄지은 우리 대신에 수송아지 한 마리를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사함을 받아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관계가 유지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자비와 긍휼의 대상을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들까지 삼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한 민족의 신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2:2).
만일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27-29) 회중범죄보다는 죄의 과중이 가볍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단절, 곧 약속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개인범죄에 대한 처리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제물을 드리는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부지 중에 범죄한 모든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됨과 약속에 대한 상속을 받는 은혜가 유지됩니다.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30-31) 고의로 하나님께 범죄한다는 것은 교만한 태도이며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명령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속죄 제물로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왜 용서가 없는 죄일까 생각해 볼 때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용서 자체가 없는 자들이며 이미 끊어진 자들인 것입니다.
적용: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제물로 인해 속죄함을 얻은 자들은 더욱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육신과 싸워야 합니다. 죄와의 싸움을 어떻게 해왔는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와는 교제를 단절해야 합니다. 어떻게 듣고 순종하고 있는지요(히 5:8)?
진정한 교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상호 작용이 아닙니다. 진실하며 때로는 아주 깊은 나눔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만 가능해집니다. 그들은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실패를 고백하고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깨달으며 기도를 부탁합니다. 얕은 대화가 아닌 마음 속에 담긴 것을 솔직히 주고받는 깊은 대화의 모습인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참된 위로와 용기를 얻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 설 교 >
죄를 위한 제사
민수기 15:22-29 / 매튜 헨리 주석
여기에 나오는 율법은 부지중에 지은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 죄는 자기들의 선생들의 실수로 인하여 범하게 된 우상 숭배나 거짓 예배라고 이해한다. 여기에서 가정되고 있는 경우는 그들이 "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않은" 것이다(22,23절). 그들이 감사의 예물을 드리지 않고 율법에 따라 예물을 가져오지 않은 그런 때에는, 그렇게 빼먹은 것이 잊어버리고 된 일이든 실수로 된 일이든 간에 속죄의 예물을 가져와야 한다. 그들이 어느 한 부분의 의식을 지키지 못했다면, 다른 부분의 의식-이것은 치유적 율법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을 지킴으로써 그것을 벌충해야 한다.
1. 민족적 죄의 경우가 있다.
그것은 몰라서 범한 것이요, 대중들의 잘못으로 관습화되어 버릴 경우이다(24절).-회중 곧 그 민족공동체가 지은 죄라고 설명될 수 있다(25절). "이스라엘 자녀의 온 회중" 이라고 했다. 의식적 규례가 너무나 많아서, 그 중에 더러는 점차로 잊어버리게 되거나 무시당하게 되고, 특히 그들이 가루의 거제를 드리기 직전에 그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율법에 대한 논의가 있게 되자, 이런 저런 명령을 온 회중이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그 온 회중을 위해서 제물을 바쳐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러한 잘못은 용서된다(25,26 절). 그래서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어떤 민족적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법식 또는 규례에 따른" 희생 제물은 분명히 이미 언급이 된 것인데, 여기서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 앞에서는(레 4:13, 21) "속죄 제물" 이라고 불리웠던 바로 그 수소가 여기서는(24절) "번제물" 이 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것은 이 제물은 제단 위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진 밖에서 송두리째 불살라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속죄제를 위하여 염소" 를 추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율법에 따라,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 치세 중의 과오를 위한 속죄제를 드렸다. 즉 그는 "7 마리의 수소, 7 마리의 수양, 7 마리의 어린양, 그러고 7 마리의 수염소" 를 드렸다. 이것은 "그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해" (대하 29:21)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24절) 드린 "속죄제물" 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와 비슷한 제사를 드린 것을 알 수 있다(스 8:35).
2. 그와 비슷하게 특정 개인의 경우도 나와 있다.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죄를 지으면" (27절), 즉 자기의 어떤 의무를 빼먹으면, 그는 지정된 대로(레 4:27 이하) 예물을 바쳐야 된다. 그러하면 "부지중에 범한 그의 죄가" 속죄된다(28절).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부지중에 범해진 죄도 속죄를 필요로 한다. 부지중에 지은 죄가 다소 변명의 여지는 있지만, 여호와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기의 "은밀한 죄" 까지도 씻어달라고 기도했다. 즉 그가 깨닫고 있지 못하는 죄, 알지 못하고 있는 과오까지 씻어달라는 것이다(시 19:12).
(2) 부지중에 범한 죄는 위대한 제물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을 때에 드리는 기도는 이러한 제사의 뜻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즉 "아버지여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하옵니다." 그리고 바울도 부지중의 죄를 말할 때 이 율법을 뜻하고 있었던 것 같다(딤전 1:13). "나는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그것(박해)을 행하였으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았느니라." 또 이스라엘 공영체에 속해 있던 타국인들에게까지 부지중에 범한 죄를 위한 속죄 율법이 명백히 해당되게 된 것은 이방인들에 대한 은혜로 보인다(29절). 그러나 그들은 "의의 개종자들" 이라는 것이 가정되어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방인들에게도 내려졌다.
다시 일어서는 법
민 15:1~21 / 길가에교회
약속의 땅 가나안의 건너편인 가데스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외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들의 판단에 따랐고 그 결과로 덮친 절망으로 아우성쳤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큰 징계를 받았고 광야에서 40여 년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슬픔과 절망의 그늘이 그들을 짙게 덮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다시 다가오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신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서 당신에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할지를 말씀하시면서 그들로 희망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소제와 전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소제는 곡식을 곱게 빻아 드리는 예배이며 전제는 술을 부어 드리는 예배로, 둘 다 곡식과 포도 등을 재배해야 드릴 수 있는 예배였습니다. 바로 약속의 땅에 반드시 정착할 수 있게 하신다는 희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절망으로 짓눌려 있을 때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의 회복이 모든 것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나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좋을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결단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려면, 정성껏 준비되고 정결하여 향기롭고 과도할 필요 없이 믿음의 분량껏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들과 함께 한 타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예배의 본질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나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르시는 하나님은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주님께서 보이시는 희망을 꼭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배의 본질에 착념하며 그 회복에 마음과 삶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일어서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익성의 유무
민 15:22-31 / 행복한 순례자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으로 여호와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제사에 대한 규례입니다. 그것은 소제나 전제에 대한 규례에 이어 부주의나 실수 혹은 고의적으로 규례를 지키지 못했을 때 행해야 하는 것으로, 공동체나 개인이 행해야 할 규례입니다.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을 때 제사방법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화제로,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그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실제 제사는 속죄제를 먼저 드렸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죄의 용서함이 가장 시급하게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제는 단독으로 드려지는 것보다는 대개 화목제와 번제와 함께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위한, 고운 가루 3/10 에바, 기름 1/2힌의 소제물과, 전제를 위한 포도주 1/2힌의 전제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개인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을 때 제사방법은 암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개인의 죄는 회중의 죄에 비해 적은 예물이 요구되었고 융통도 되었습니다. 즉, 원칙은 암염소였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그리고 더 어려운 극빈자에게는 식물(고운가루)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각각의 형편에 따른 것입니다. ‘거류하는 타국인’은 귀화한 이방인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야웨 신앙을 가지면 귀화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율법을 적용 받아야 합니다.
범죄를 다루는 학문에서 고의성의 유무는 매우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것에 따라 형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실수나 순간적인 판단미스로 인해 사람이나 자동차나 물건에 해를 입인 경우 합의나 기타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사고를 내는 경우 정상참작이 절대로 안됩니다. 알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살인한 것과 같습니다. 그 경우 가중처벌이 마땅한 것은 죄질이 나쁘기 때문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중에 범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제나 손해를 배상하는 속건제 등을 통해서 입니다.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경우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범죄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경우 백성 중에서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끊어졌다는 의미는 단순히 공동체에서 파문 당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죄악이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의로 짓는 죄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관련된 것으로 주로 신성모독과 율법에 관한 것들입니다. 본문에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여호와를 비방하는 죄입니다. 비방은 비웃고 헐뜯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손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둘째로,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것이지요. 셋째로 하나님의 명령을 파괴하는 죄입니다. 여기서 파괴는 ‘깨트리다’의 의미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인들이 일부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살인을 하거나 강도나 절도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이고 신앙적인 죄는 지을 수 있습니다. 즉, 세상적인 죄는 짓지는 않더라도 불신앙이나 불 경건한 죄는 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죄는 가볍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해 주신 말씀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차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복음을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고 와 매 한 가지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이 없듯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도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제사를 드려도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고의성의 유무가 있는지 점검해보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욕구가 올라올 때 그것이 단순한 실수나 부주의로 취급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를 원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 쫓는 것은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인간을 위해 열어 두신 속죄의 길
민 15:22-31 / 생명의 삶
[오늘의 말씀 요약]
부지중에 죄지었을 때에 드리는 속죄제의 규례입니다. 회중의 경우 숫염소를, 백성 한 사람의 경우 1년 된 암염소를 드립니다. 이는 본토 소생에게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동일합니다. 고의로 죄지은 사람은 여호와의 명령을 멸시하고 파괴한 것이니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본문 해설
☞ 공동체가 죄를 지었을 때 15:22~26
공동체의 범죄는 공동체의 운명과 연관된 중대한 문제입니다. 죄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면, 속죄제를 통해 회중 전체가 용서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 하나님은 소제, 전제와 함께 수송아지 한 마리를 화제로,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리라 하십니다. 우연히 생긴 실수라 해도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몰랐다고 해서 잘못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죄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시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속죄의 길도 열어 주십니다.
☞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 15:27~31
천국 백성의 삶은 거룩하고 정결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따라서 부지중에라도 죄를 범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 ‘암염소 한 마리’를 택해 속죄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나 고운 가루로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동시에, 범죄자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속죄제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경우에는 엄한 처벌이 뒤따랐으며,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그 범죄자는 즉각 추방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려면 ‘속죄’의 과정이 필수며,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 회중이 무의식적으로 지은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했나요? 내가 속한 공동체 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쳐 우리 각 사람의 죄를 해결할 길을 열어 주신 예수 님께 감사하며,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멀리할 수 있도록 간구하세요.
오늘의 기도
‘나 한 사람, 내 가정, 내 교회’의 행복과 평안만을 바라며, 죄에 대한 애통함과 돌이킴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죄를 기억나게 하실 때, 제가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행실을 바르게 함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의 거룩함을 지켜 가게 하소서.
속죄제의 예물 규례
민 15:22-31 / 구성교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가르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요 14:2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고린도교회로 보냈고, 그가 자신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할 것(고전 4:17)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문득 떠오르는 생각, 죄를 지을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이 하나님은 때론 성령을 통해 때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는 기쁨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5가지 제사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법 중에는 일반적인 죄를 위한 속죄제(레 4;14)와 성물에 대해 부지중에 범죄한 일을 위한 속건제(레 5:15)가 있었습니다. 속죄제의 특징 중 하나는 “죄의 깨달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불평과 원망은 단순한 하소연, 한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반역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불평과 원망을 부지중에 지은 죄라고 한다면, 민수기에 나오는 불평과 원망은 고의로 범한 죄에 해당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처음 범한 죄는 잘 모르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죄를 반복하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습관으로 고의적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해 심판하신 후, 다시 백성들과 언약 갱신을 이루시면서 속죄제와 속건제를 언급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죄를 다시 깨닫게 하시어 죄의 반복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22절)”라는 말을 직역하면 “너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므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릇 범죄하다(WGv.ti ykiw>, 베키 티쉬구)”라는 동사는 ‘미완료’입니다. 즉, 아직 범죄 중이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고 있어서만 범죄 중이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지(돌아서지) 않으면 죄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여 혹시라도 부지 중에 죄를 지으면 수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화제)로 드리고 소제(곡식)와 전제(포도주)와 함께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번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속죄제는 죄 사함과 함께 하나님의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속죄제의 집례는 제사장이 해야 했습니다(25절).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집례하고 그들을 중보할 때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타국인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문제는 고의로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죄를 짓는 일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었으므로 백성 중에서 끊어질(tr;K', 카라트) 것입니다. “끊어지다”라는 말은 “잘라내다”라는 뜻인데, 창세기 15장 8절에서는 30~31절의 내용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tyrIB. tr;K', 카라트 베리트)”할 때도 “카라트(tr;K', 잘라내다)”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할 때, 동물을 쪼개 앞에 두었습니다. 언약을 어기면 이 동물처럼 된다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어긴 사람은 죄의 대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당연히 끊어지게 됩니다. 물론 매년 대속죄일에는 어떤 죄도 정결하게 됩니다(레 16:16, 30). 구약에서도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은혜입니다. 그러나 고의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공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깨뜨리려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 훼방 죄(마 12:31)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에 무감각해지는 시대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하며, 예배의 자리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죄의 무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무감각함을 잘라내고 하나님과 날마다 새로운 언약을 세우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도록(시 119:9)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과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말씀을 떠올려 주실 때, 아멘으로 화답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 항상 거하는 하나님 사람이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