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제프 크노르 'Casimir III War'
"966년의 공식적 기독교 개종 이후에도 이교도 신앙은 계속 살아남았고,
이후 200년 동안 이것이 되살아나서 때로는 교회가 불에 탔고, 신부들이 살해당했다.
(중략) 교회는 전반적으로 열정이 없어서 이러한 상황에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 아담 자모이스키
1198년, 눈부신 봄날의 끝.
"가지 말아요."
촘촘히 얽힌 그녀의 두 팔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오빠도 떠났어요. 당신까지 가버리면, 나는 어찌 살라고요!"
청년왕으로 불리던 헨리 3세는 교황과의 갈등을 마무리짓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그의 누이와 같은 병이었습니다.
"편지하겠소."
그녀를 탑에 가둔 채 전장으로 떠났을 때는,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길 바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리지 말라는 말도, 꼭 돌아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총명한 에메리크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하나 더 했을 뿐입니다.
내 작고 약한 장미가 시들어가고 있다. 아프지 않게, 더 오래 피어있도록 돌보아달라고.
여러 번 전사들을 보내 우리의 성읍을 약탈하고, 봉신의 목숨을 위협한 부도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등을 보이면, 잡아먹힐 것입니다. 그가 리투아니아를 통일하고 왕을 칭하기 전에, 막아내야만 합니다.
왜 그의 본성인 프러시아가 아닌 스클라보니아를 택했느냐 하면, 좀 더 북쪽에 위치한 이 곳을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바다를 끼고 폴란드와 마주보는 스웨덴은, 고틀란드를 통해 발트해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부족과 접한 땅인 스클라보니아를 손에 넣어 그 곳에 교회와 상단을 설립하는 것은 누가 북방의 주도권을 쥐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결단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금과 신앙심이 이번 원정에 날개를 달아줄 것입니다.
"위험한 여정, 끊임없는 위협, 무사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이번 전쟁은 폴란드의 힘만으로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튜튼 기사단, 스위스 용병대, 사미인 용병대가 함께합니다.
당연히 부도 또한 이웃 대족장들을 설득할 것입니다. "저기 십자가를 들고 몰려오는 악마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나보다도 사악하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더 널리 펴기 위한 싸움이자, 선량한 나의 형 헨리크가 늪지대에 뿌렸던 거룩한 피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천국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앉아있을 그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기를.
빠르게 남하한 부도의 대군에게 덜미를 잡힌 불쌍한 188명의 순국용사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너희 신이 정말로 참되다면, 그들을 내 손에서 구해낼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총병력은 1만 4천. 보급 페널티가 무시무시하므로, 부도의 영지인 헤움노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지금이 오히려 낫습니다.
"똑똑똑,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순순히 개종한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적이 더 불어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도의 보호하에 있는 다른 부족들까지 각자 병력을 끌고 몰려오고 있습니다...
다굴 앞에 장사 없다. 아군의 머릿수가 월등하니, 부도의 기만전술에 아무도 속지 않습니다.
폴란드 왕국 군부에도 세대교체가 있었습니다. 충성스러운 보구밀과 주앙은 벌써 세상을 떴고, 그 자리를 그단스크의 람베르트와 아메데가 이어갑니다. 제발 사이좋게 지내라...
야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흩어져 달아납니다. 그들을 맹렬히 뒤쫓는 와중에도, '그로즈니'의 주변에는 마치 모세의 기적마냥 길이 열립니다. 나도 저 놈이랑 1대 1 하기는 싫어요...
주인의 명으로 전장에 끌려나왔을지언정, 그가 건넨 인사는 시빌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Tebūnie Darna(조화와 균형이 있기를, 하나되게 하소서)."
"세례를 받고, 귀순하시오. 그대의 부족들을 다스릴 권리도 존중하겠소."
"그녀와 헤어지라고? 차라리 죽이시오. 당신들 눈에는 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오."
우리의 조상 미에슈코 1세는, 도브라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예전에 거느렸던 일곱 명의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결단이 있었기에 우리는 저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죠. 비록 포로지만, 불편한 환경에서 지내지 않도록 배려해 줍시다.
전투 손실보다 무서운 비전투 손실. 청야전술은 폴란드와 헝가리도 제국의 엉덩이를 걷어찰 때 즐겨 쓰던 방법입니다.
역지사지 당해보니까 무섭네요... 늪이 따로 없습니다. 병력을 쪼개놓으면 각개격파 당할 테고, 뭉쳐놓으면 녹아내릴 테니...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부도는 사탄같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5천 가량? 저게 놈이 지닌 병력의 전부가 아닐 겁니다.
프러시아가 다시 한 번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승점은 1%... 루스인들이 왜 이 곳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지 이해가 쏙쏙 되는군요.
전투 결과창과 맵에 표시되는 병력 숫자가 다른 걸 보니, 저들이 모두 부도의 밑에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성전 중이면 다른 부족들과도 무조건 적대관계가 되니까요.
프워츠크로 퇴각한 병력이 제때 돌아오지 못하면, 왕이 친히 이끄는 폴란드의 본대가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형제를 죽인 자는 부도의 곁에 누워 있으니, 그녀를 대신해 이 자에게 복수를 행하도록 허락한다."
핏길을 뚫고 폴란드 국왕을 사지에서 건져낸 스위스 용병대장은, 신비로운 힘을 지닌 여인이 휘두르는 창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돈과 신의로 움직이는 자들이라지만, 형제를 잃은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합니다.
그의 신들은 이 늙은 전사를 기꺼이 낙원으로 인도하겠지요...
"북쪽 습지의 이교도에 맞서 싸우는 자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수호하는 자들과 나란히 천국의 문 앞에 설 것이다."
1199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는 튜튼 기사단의 전쟁을 '선한 싸움'으로 규정하고 성지의 십자군들과 동등한 은전을 내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폴란드가 치르는 대 프러시아 성전 외에, 기사단은 이웃 리투아니아 대족장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마자르인 헨리크. 독일인들은 그를 '하인리히 폰 웅가른(헝가리의 하인리히)'이라고 부릅니다.
"이교도들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례받을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성스러운 물이냐, 붉은 피냐? 이 가혹한 선택지는 리투아니아 전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오래된 의문이 다시 고개를 쳐들지만, 형의 피를 삼킨 늪지대를 바라보다 애써 눈을 감고 답을 피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이들이 하나 둘 퇴장하는 가운데, 나는 아직 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3세기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