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不出 시인들의 눈물겨운 思婦曲]
아내
나태주
새각시
새각시 때
당신에게서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가
번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도 모르게
눈을 감곤 했지요
그건 아직도
그렇습니다.
~~~~~
아내
박제영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섭섭했지만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대.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에서 마침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 거야.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 저 여자 참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가 그러는 거야.
아줌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야.
기운 내 여보,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
아내
공광규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무량사 한 채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 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
~~~~~
아내
정낙추
풀은
아내의 땀으로 자라는지
뽑은 자리 돌아보면 어느새 무성한 숲
풀뿌리에 지친 호미질 끝
이 여름 다 가도록
바다보다 깊은 콩밭 가운데서
백로처럼 움직이며 수건 쓴 머리
땀에 전 까만 얼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민들레 꽃씨처럼 가벼운 몸
三伏 불볕에 녹아
아득한 우주로 증발했는가
땅 속 깊이 스며들었는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 나선
어스름 밭고랑
일년 내내 거친 손
분신으로 남은
닳고 닳은 호미자루 옆
아내는
쇠비름 노란 꽃으로 가녀리게 피어 있다 *
~~~~~
아내의 종종걸음
고증식
진종일 치맛자락 날리는
그녀의 종종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집 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몸 슬슬 물들기 시작하는
화단의 단풍나무 잎새 위로
이제 마흔 줄 그녀의
언뜻언뜻 흔들리며 가는 눈빛,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조차도
저 종종걸음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방 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발걸음이 햇살이고 하늘인 걸
종종거리는 그녀만 모르고 있다 *
~~~~~
아내에게
김지하
내가 뒤늦게
나무를 사랑하는 건
깨달아서가 아니다
외로워서다
외로움은 병
병은
병균을 보는 현미경
오해였다
내가 뒤늦게
당신을 사랑하는 건
외로워서가 아니다
깨달아서다.
~~~~~
쑥국 -아내에게
최영철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에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그래도 그래도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
아내에게
유용주
90mm 못 하나가
무게 1톤을 감당한다고 하는데
75kg 내 한 몸이 지탱하는
생의 하중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무겁게 이끌고 왔는지
하찮은 내 무게에 삐그덕 뻐그덕댔지
타이어가 뭉개지도록 가득 실은 모래와 자갈,
그 위에 시멘트를 얹고
길은 어둡고 날은 사납다
..........
오오 아내여
뒤를 미는 아내여!
~~~~~
아내에게
양성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너와 나, 살 맞대고 사는 것은
오백 번쯤 태어난 끝에 서로 만난
까닭이리라.
아무리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나 아직은 헐값으로 내 넋을
팔지 않았는데,
그 무엇이 네 가슴을 흔드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을 각오로 살면
죽지 않는다.
비바람 속에서도 벼랑 위의 새처럼
부지런히 새끼들을 기르고,
꿈이 있다면 그것들의 날개짓을
보는 일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네 앞에 오는 모든 날에는
더 깊은 나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
내 아내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 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
목상(木像)
김광균
집에는 노처(老妻)가 있다
노처(老妻)와 나는
마주 앉아 할말이 없다.
좁은 뜨락엔
오월이면 목련이 피고
길을 잃은 비둘기가
두어 마리 잔디밭을
거닐다 간다.
처마끝에 등불이 켜지면
밥상을 마주 앉아
또 할말이 없다.
년년세세(年年歲歲)
세월(歲月)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 둘은 목상(木像)이 돼가나 보다.
~~~~~
여몽령(如夢令)-꿈 속에서 본 아내에게
정약용(丁若鏞)
一夜飛花千片(일야비화천편)
하룻밤 휘날리는 꽃은 천 조각이요
繞屋鳴鳩乳燕(요옥명구유연)
우는 비둘기나 어미제비 지붕 맴돌고 있네.
孤客未言歸(고객미언귀)
외로운 나그네 아직 돌아가지 못하니
幾時翠閨房宴(기시취규방연)
어느 때 비취빛 규방에서 꽃 잔치를 여나
休戀休戀(휴연휴연)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惆愴夢中顔面(추창몽중안면)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
등돌리기
임보
쉬흔 줄에 서더니 아내가 변해
이불 밑에 들어 발만 닿아도
쩌만치 가시요 쩌만치 가
새벽밥 도시락 싸기 몸에 겹다고
등 돌리며 중얼중얼 코를 고네
초록 단장 고운 머리 어제 같더니
어쩌다가 벌써 예까지 왔나?
~~~~~
재봉
김종철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한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의 전 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레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 일을 엿듣고 있다
~~~~~
아내는 안해다
오탁번
토박이말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면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 란다
과연 그럴까?
화장실에서 큰거하고 나서
화장지 다 떨어졌을 때
화장지 달라면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사람,
틀니 빼놓은 물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생일 선물 사줘도
눈꼽만큼도 좋아하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 좋을 그런 사람인데
집안에 있는 해라고?
천만의 말씀!
어쩌다 젊은 시절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면
─ 안 해!
하품 섞어 내뱉는 내 아내!
~~~~~
아내의 봄비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 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
아내
윤수천
아내는 거울 앞에 앉을때마다
억울하다며 나를 돌아다본다
아무개 집안에 시집 와서
늘은 거라고는 밭고랑 같은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뿐이라고 한다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모두가 올바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슬그머니 돌아앉아 신문을 뒤적인다
내 등에는
아내의 눈딱지가 껌처럼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잠시 후면
아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딱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환하도록 문지르고 닦아
윤을 반짝반짝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
잠자는 아내를 보며
박재삼
깨어 있을 때는
그리 일이 많던 아내가
잠에 골아 떨어지고 보면
세상천지는 내 몰라라
숨쉬는 소리만이
새록새록 들리는데,
이렇게 늘 가까이서
살을 대고 산 것이
벌써 30년이 되었구나.
이 인연을 어찌하고
각각 이승을 뜨고
억울하게 땅 밑에 묻히는
숱한 세월을 생각하면
그 虛無를 어쩔거나.
~~~~~
아내와 다툰 날 밤
복효근
새로 얻은 전셋집 마당엔
편지 대신 들꽃씨가 자주 날아와 앉았지
봄 내내 우린
싸움닭처럼 다투었고 그런 날이면
마당귀 가득 달맞이꽃이 피었지
전세값이 삼백이나 더 오른 날 밤도
달은 뜨고 달맞이꽃은 피었지
하많은 날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져도
세상은 아직 그렇게 아름다워지지 않았으므로
밤이 되어
어둠이 세상을 온통 지워버려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그 아픔으로
깨어있는 들꽃 같은 우리네 소망
그리고 아직은
가슴 가득 정정한 그리움도 있어
별이 어두울수록 빛나듯
달 없는 밤에도 꽃은 피는지
우리 긴긴 싸움의 나날
아내여, 귀 기울여봐
온갖 것 다 놓아버리고 싶은 밤이면
어둠 가득한 마당귀에
귀 기울여 들어봐
아아,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 들어봐
~~~~~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아내의 꽃
김경진
꽃들은 얼굴을 마주볼 때 아름답다
술패랭이꽃이 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내의 얼굴에 핀 기미꽃을 본다
햇볕의 직사포를 피하기 위해
푹 눌러쓴 모자에도 아랑곳없이
자꾸 얼굴에 번져가는 아내의 꽃,
사시사철 햇볕이 없을 수 없듯 피할 수 없이
아내의 얼굴엔 피어난 꽃이 늘어간다
아내는 몸 꼭대기에 꽃밭을 이고 다니는 것이다
기미꽃, 죽은깨꽃, 주름꽃
다양한 아내의 꽃밭에서 그래도 볼 위에
살짝 얹어진 웃음꽃이 가끔씩 위안으로 피어난다
술패랭이꽃들이 몸을 부비는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아내의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항상 내 곁에 있다고
~~~~~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
아내의 젖을 보다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
천상의 향기
조성권
밤늦도록
친구와 술 마시고 놀다가
마당에 들어서면
방안에는 항상 불이 켜져
어서 오라고
반갑게 달려오는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 당신
세상 가득 늘어선
스치는 바람처럼
언제 보아도
당신은 꽃처럼 향기로운 여자
흐릿한 나를 보아도
어느 것 하나 꼬집어
마음 아프게 하지 않는 당신
당신은
늘 숨겨진 계곡물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이 넘쳐흐르지요.
사는 것이 고단해도
나의 빈자리에
그리움이 되어주는 당신
당신의 미소는
새벽 호숫가의 연꽃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향기가 나지요
만약에 당신 없이
나, 술 취해 비틀거리면
누가 나와서
마루에 불 밝혀 놓고 부축해 주지
텅 빈 방에 홀로 누워
한없이 고독이 밀려들면
나, 어떻게 그 외로움 달래며 살지
늘 내 곁을 지키며
지루한 삶도
감사할 줄 아는 당신
미소가 아름다운 당신
내가 당신을 한시도 잊을 수 없고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잔을 끓여다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 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처의 바가지
고형렬
서울서 한 20년 잘 살아내더니 여편네가
어느날 갑자기 아주 멀리 가고 싶다고 한다
길이 돌로 된 독일은 안돼도 방콕이나 인도쯤
석양이나 초원을 보고 싶다고 투정이다
길바닥에 앉아 변을 누어도 괜찮다는 곳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내버려둔다는 곳
그러나 여편네는 왜 자신이 이러는지를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할 수 없다 불평이다
남편이 싫어서도 아이들이 싫어서도 아닌데
왠지 낯선 세상을 보고 싶다니 왠일일까
여편네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사는 재미가 싹 사라져버린 것 아닐까
~~~~~
아내의 브래지어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옹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
아내의 등
하재영
어느 날부턴가 잠에서 깨면 아내는 등을 보이고 있다
내 바람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함께 이부자리 들어 신혼을 보낸 지 십년이 넘었어도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숨결에
으레 내 쪽을 향해 잠을 자던 아내
거웃도 자란 자식들 키우며
눈가 주름 잡히도록 눈물 흘리며 인생살이 터득해 가는데
며칠 전 내 어느 애인이랑 바람이 지난 길 따라
오래 묵은 은행나무 푸른 그늘 아래서
나뭇잎 흔들리게 책장을 넘겼는데
그 때 그 바람 아내가 눈치 챈 것 아닐까
아니면 오래 전 산 넘고 강 건너
꽃길 펴 놓았으니 오라는 전갈 받고
자동차 몰고 찾아가 외박하며 끌어안은
꽃향기와 바람소리와 별
그 불륜이 아내의 귀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어느 날부턴가 잠에서 깨면
아내는 등을 보이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쪽으로 가고
나는 아내를 자꾸 쫓아가며
아내의 등에 붙어 있는 검은 점도 새롭게 발견하고
등 돌린 아내
슬며시 나를 향해 돌아눕게 하는데
돌아눕는 사이 늘어난 새치도 눈에 띠고
화장하지 않은 이마 주름도 살아온 길처럼 보여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아내를
아내의 등 뒤에서 넓은 아내를 본다
~~~~~
아내의 생일
김두일
생일이라고 들뜬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
아내가 며칠 전에 벗어
장롱 속에 감춰둔 속옷을 꺼내 빨았다.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후크가
너덜대는 브레이지어와
잔 구멍이 숭숭 뚫려
거미줄처럼 얇아진 팬티.
그토록
오래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아내가 저런 속옷을 입고 사는지 모르고 산
무딘 손이 비누를 벅벅 문질러댔다.
수돗물을 틀지 않았는데도 속옷이 젖고.
시장에서 악착같이 값을 깎던
아내의 힘이 저기 숭숭 뚫린 구멍을 지나
나온 것 같아 늑골이 묵직했다
자꾸 고관절이 아프다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보던 의사는 골다공증이라며
구멍이 숭숭뚫린 아내의 뼈사진을 보여 주었다.
뼈에 뚫린 구멍들을 자세히 보니
사나운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아들녀석이 한 입씩 베어문 흔적 옆에
승냥이보다 더 예리하게 뜯어낸
내 이빨자국이 무수하게 널려있었다.
깊은 밤에 마시고 버린 술병이
아내의 뼈속에서 파편처럼 박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는 수렵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
뼈에 좋다는 사골을 넉넉히 사고,
티비에서 광고해대던 속옷을 세트로 사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는 바늘을 쥐고 앉아 너덜너덜한
속옷 구멍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속옷의 구멍이야 바늘로 깁지만
뼈에 난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려는지.
한무더기 시간이
내 뼈속에서 휘파람을 불며 빠져나가는 오후.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 속에서
아내의 허벅지 뼈 한덩이를 건져올렸다.
~~~~~
'보기에 좋았더라'
최병무
처음 만나던 날 발갛게 익은 당신의 볼과 단정한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한데, 아무래도 우리가 한바탕 꿈을 꾸었지 싶어.
그날 돌아오는 길에 코스모스는 유난히 상냥했었지
지금 다시는 오르지 못할 山을 추억하는 일.
당신은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시절이 왔다고 한다
함께 산 날이 많아졌다!
아직도 나는 당신이 그리워.
늙어가는 우리가 아름다워.
살아있는 것들은 열매를 위하여 소멸을 준비하는 것,
뽐내기 위하여 꽃은 피지 않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우리끼리 '보기에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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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아내에게
최병무
이른 아침 나는 윤회의 꿈을 꾸었다
영혼여행이 시작되는 설계가 이루어지면
과제를 실어나른다
지금 우리 그룹은
역할을 새로 맡았다
미리 배역을 정하고 집을 만든다
진화를 꿈꾸는 동안
선사시대에 살기도 했을 우리가
지금 밀접한 부부의 실험을 한다
동행하는 안내자이자 한때는 오누이였다가
아들과 딸이였다가 어머니였다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우리가
이렇게 자리를 바꾼다
윤회는 과학이다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우리가
지금 이 별에 머물고 있다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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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 內 (아내에게 보냄)
李白
三百六十日
일년 삼백육십일
日日醉如泥
매일같이 고주망태 되어있네.
雖爲李白婦
명색은 李白의 부인이라 하지만
何異太常妻
太常의 마누라와 무엇이 다를까.
* 태상(太常)이란 궁중에서
천자(天子)의 종묘(宗廟) 사직을 받드는 관직.
<태상(太常)의 妻> 라는 이야기는
後漢 시절 太常 자리에 있던
주택(周澤)이란 사람의 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太常 시절, 업무에 충실 하느라 1년 360일
거의 집에도 오지 않고 근무했었는데,
어느 때 病이 생겨서 종묘(宗廟)의 재궁(齋宮:여자 등
일반인의 출입제한구역) 안에 누워 있었다.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된 부인이
약을 갖고 그곳을 찾아 갔었는데,
그는 아내가 재계(齋戒)의 금기사항을 어겼다고
화를 내며 監獄으로 보내버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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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流夜郞寄內 (남쪽 야랑 땅에 유배되어 아내에게 부침)
李白
夜郞天外怨離居
하늘 끝 야랑 땅에 멀리 떨어져 원망스러운데
明月樓中音信疎
밝은 달 비추는 누각에 그대 소식 거의 들을 수 없네
北雁春歸看欲盡
봄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 볼 수 없게 되려 하는데
南來不得豫章書
남행길에서도 그대 예장의 편지 받아볼 수 없구려.
夜郞 : 중국 서남부 貴州省 奧地에 있는 지명.
豫章 : 현재의 江西省 南昌市.
당시 李白은 자의반타의반 천하를 流浪 중이었고
그의 부인 宗氏는 친정 豫章에 머물고 있었다고 함.
위 시는 언 듯 보면 야랑(夜郞)에서 지은 시 같고
그렇게 해설한 곳도 있지만,
李白이 귀양지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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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정환웅
아내는 친정에 갔다.
아내가 없는 날은
시간이 남아돈다.
집안일을 떠맡아
분주한데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아내가 없는 날은
잠도 남아돈다.
혼자 만의 자유를
소비해도 소비해도
날은 새지 않는다.
아내가 없는 날은
꿈도 꿀 수 없다.
내 반쪽이 없다는 것은
내 꿈도 반쪽 났기 때문일까?
아내가 없는 하루
시간이 남아돌고,
잠이 남아돌고,
꿈도 꿀 수 없다.
시간도, 잠도, 꿈도
거꾸로만 간다.
갈수록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나
아내는 돌아온다.
'당신 없으니 편하기만 하더라'
'좀 더 있다 오지 그랬어?'
잘 다녀오라고 배웅까지 했건만,
말은 거꾸로 나온다.
마음에도 없는 투정을 부려본다.
그런데 오늘 오기는 오는 걸까?
어이없다는 듯 웃는 모습
아내가 그립다.
아내의 잔소리에 귀를 간질이고 싶다.
2006.10.4
眺覽盈月軒 (보름달을 멀리 바라보는 집) 에서
마로니에
from Cafe 마로니에 그늘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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