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세포 연안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더니 입춘 땜으로 온 막바지 추위에 움츠리고 있다. 방학을 끝내고 개학한 사흘째다. 고3은 졸업을 하루 앞두고 책상 서랍과 사물함을 비우느라 분주했다. 재학생들은 새봄 한 학년씩 올라가 배울 교과서를 받았다. 오후 일과로 단체 봉사활동으로 교실 안팎을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전 교직원들은 시청각실에서 학년도를 마무리 짓는 모임을 가졌다.
직원회의를 끝내고 교정을 빠져나와 와실로 들지 않고 연사정류소로 나갔다. 날이 저물기 전 바닷가로 산책을 다녀오려고 마음먹었다. 고현을 출발해 구조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옥포와 아주를 거쳐 장승포로 넘어갔다. 버스가 옥림에서 산허리를 돌아가니 지세포 포구가 드러났다. 포구 바깥 지심도가 방파제처럼 떠 있었다. 지심도에는 동백꽃이 제철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릴 테다.
버스가 와현고개를 넘어 이진암 아래를 거쳐 대명리조트 앞에서 소동마을을 지날 때였다. 차창 밖 텃밭 밭둑 몇 그루 매실나무는 매화가 활활 피어 눈길을 끌었다. 버스는 구조라까지 간다만 나는 일운 주공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지세포는 일운 면소재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함께 기초 관서가 있었다. 거대한 조선소가 두 곳 있는 지역답게 조선해양문화관이 덩그렇게 보였다.
지세포는 거제에서 가장 큰 포구로 어항과 함께 외도와 해금강으로 떠나는 유람선 선착장도 있다. 옥녀봉이 흘러내린 산자락이 감싼 포구는 활처럼 크게 휘어져 둥글게 원호를 그렸다. 조선소 일터를 찾아 밖으로부터 인구가 대거 유입될 당시 택지가 부족해 산기슭에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 신흥 개발지를 연상하게 했다. 건너편 옥화마을 위쪽 산등선에는 거제대학이 보였다.
지세포 방파제는 포구에서 한참 떨어진 남쪽에 있다. 선창마을을 지나 지심도가 보이는 곳에 파도를 막아주는 시설물이었다. 대명리조트에서 선창마을까지도 가봤고 와현고개에서 숲길을 걸어 지세포성에 들려 선창마을로 내려서기도 했다. 지세포는 규모가 큰 어항이라 연근해로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묶여 있었다. 포구의 풍광은 이방인인 나에게 언제나 낯설기만 했다.
어선이 정박한 포구를 따라 걸었다. 작년 봄 거제로 건너와 내가 머무는 연초 연사는 내륙이라 바다를 접하지 않았다. 일과를 끝내고 와실로 들면 산간 내륙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칠천도나 장목을 나가면 진동만 내해와 만났다. 외포나 옥포에서 지세포나 구조라로 나가 대한해협 검푸른 바다를 접했다. 답답한 마음이 다소 누구려졌다.
지세포는 동향으로 트여 서쪽은 산으로 에워싸 해가 저무는 즈음이라도 저녁놀은 볼 수 없는 포구였다. 입춘 땜으로 기온이 급강하해 바람은 일지 않아도 귓불이 시려올 정도로 쌀쌀했다. 포구에 정박된 배들이 각기 다른 세 가지 용도였다. 요트학교 앞에는 계류 중인 요트가 몇 척 보였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외도로 떠나는 유람선이 묶여 있고 나머진 어선들이 대부분이었다.
포구의 요트학교와 유람선 선착장을 지났다. 조업을 나서지 않은 어선들은 규모가 무척 커 보였다. 창원 인근 진해나 구산 연안으로 산책을 나가 봐왔던 낚싯배와는 급이 달랐다. 어로 작업 상황을 잘 모르는 나에게 무슨 고기를 잡는 어선들인지 알 수 없었다. 일부 어선에는 굿을 하는 신당처럼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이 나부꼈다. 뱃전에는 헝클어진 그물이 걸려 있기도 했다.
길게 이어진 포구 연안을 따라 관공서와 가까운 곳에 이르니 어촌계가 운영하는 횟집들이 있었다. 식당 바깥 멍게와 가리비를 비롯한 어패류는 어시장 골목 같았다. 한 시간 남짓 포구를 거닐었더니 해는 저물고 금세 어둑해졌다. 버스가 다니는 찻길로 나가 구조라에서 출발해 고현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종점에서 온 버스에 오르니 장승포에서 옥포를 거쳐 연사로 왔다.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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