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권정생 그림 고정순
발행일2020년 10월 10일
펴낸곳 도서출판 단비
ISBN 979-11-6350-030-8 77810
가격15,000원 크기 220x286쪽 48
분야그림책, 문학, 어린이
너와 내가 손을 잡는 세상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위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아동문학 작가인 권정생 작가의 초기 단편 동화가 고정순 작가의 그림과 만나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이번 작품은 단비 출판사의 <단비 그림책> 첫 책이기도 한 《눈이 내리는 여름》으로, 1970년 기독교 교육 6월호에 발표되었던 작품입니다. 권정생 작가가 경북 안동 조탑리에 있는 작은 예배당 문간방에 살 때 쓴 작품이기도 하지요. 당시 그는 새벽마다 종을 치는 종지기 아저씨였고, 교회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선생님이었으며, 어린이를 위해 동화를 열심히 썼던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다시 읽어도 그 감동은 여전합니다, 늘 약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동화를 썼고, 같은 모습으로 살아갔던 작가 권정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마치 권정생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세상을 따뜻하게 재현한 듯한 고정순 작가의 그림은 작품에 먹먹한 감동을 더합니다.
이 그림책은 한여름에 내리는 눈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한 아이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로지 곁의 친구들과 손을 잡고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갑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삼키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겹쳐 읽혀지는 작품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역경을 눈이 내리는 여름이라는 역설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곁의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도 조금씩 이겨 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돌아가신 권정생 작가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힘없고 약한 자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권정생 작가의 작품 속에는 늘 어린이, 이웃, 장애인, 노인, 거지 등 힘없고 약한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눈이 내리는 여름》은 독특하게도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원하게 멱을 감고 있던 5학년 아이 아홉 명은 그저 어리둥절하지요. 그 혼란 속에서 아이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농사를 망칠까 근심스러워 하는 농부, 엄마를 애타게 찾는 송아지,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강아지 흰둥이, 마흔 살도 넘었지만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거지 탑이를 만납니다.
아이들은 이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함께 근심스러워 합니다. 죽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힘껏 껴안아 줍니다. 춥다고 말하는 탑이 아주머니에게는 둥글게 선 자신들 한가운데로 들어오라고 하지요. 누더기 옷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그녀를 힘껏 싸안고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갑니다. 고정순 작가는 이 장면을 칠흑 같은 어둠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과 탑이 아주머니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이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이지만 아홉 명의 아이들이 냄새 나고 머리마저 헝클어진 탑이 아주머니를 둥글게 감싸고 있습니다. 권정생 작가의 이 작품이 태어나고도 한참 뒤에 태어난 고정순 작가가 작품을 통해 교감하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그것을 보듬을 사랑만 있으면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두 작가 모두가 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손을 붙잡고 걷는 아이들에게서 발견하는 희망
《작은 사람, 권정생》을 쓴 저자 이기영은 이 작품이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 강아지 흰둥이와 앉은뱅이 탑이 아주머니의 꿈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도 추울 수밖에 없는 탑이 아주머니와 다리를 다친 흰둥이는 마음이 몹시 추운 존재들이라고 말이지요. 작가 권정생은 꿈속에서나마 자신들의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에 주목합니다. 여전히 세차게 퍼붓는 눈 속에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도 아이들은 손을 붙잡고 걷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밝아질 것이고 그때까지 손을 놓치지 말자고 기다려 보자는 아이의 말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작가는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가 소개
글 권정생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일직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교회 문간방에서 《몽실언니》를 썼다.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사과나무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등 많은 어린이 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
그림 고정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그림책 《최고 멋진 날》 《슈퍼 고양이》 《점복이 깜정이》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 《오월 광주는, 다시 희망입니다》 《가드를 올리고》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철사 코끼리》 《엄마 왜 안 와》 《아빠는 내가 지켜줄게》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63일》 《나는 귀신》, 산문집 《안녕하다》 등을 쓰고 그렸다. 허락되는 시간 동안 쓰고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