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8,34-9.1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9,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자신을 버리는 일’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마르코복음>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본다면, 어제 복음까지는 주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오늘 복음에서부터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 곧 제자 되는 길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 8,34)
이 말씀은 “나를 따르려면”에서, 먼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지’를 확인하게 합니다.
그러니 이는 깨달음, 곧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이 참된 것인지, 원해야 할 것을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깨닫는 일을 바탕으로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제시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 따르기를 원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시 두 가지를 말해줍니다.
곧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려고 하는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두 가지의 표시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는 일’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입니다.
우선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는 집과 가족 곧 소유와 사람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지금 ‘자신으로부터 이미 떠났는지’, 적어도 지금 ‘자신을 버리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버린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을 비웠는지보다 무엇을 채웠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릇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곧 보석을 채우고 있으면 보석그릇이 되는 것이요, 쓰레기를 채우고 있으면 쓰레기통이 되듯이, 자신을 버리고 빛이신 그리스도를 채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그릇’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나는 진정 예수님을 받아들여 따르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비울 수가 없으며, 이미 자신을 비우신 그분에 의해서 비워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의탁하여 그 길을 갑니다.
만약 자신이 스스로를 비운다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자신을 실현하는 꼴이 되겠지만, 그분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는 신앙의 행위로 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신앙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짊어질 때 비로소 구원의 십자가가 됩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마르 8,34)
주님!
제 자신을 따르지 않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제시한 길을 가게 하소서!
무엇을 하든, 그것을 통해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붙잡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붙잡고 가게 하소서!
아니, 당신께 붙들려 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
첫댓글 찬미 예수님!
주님,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오늘도 주님만을 충실히 믿고 따르는 자녀 되게하소서.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