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카페에서 빡쳤던 일이 있었습니다.
1. 상황
-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했는데
- 직원 3명이 우왕좌왕하면서 제 주문서를 보지도 않음
- 2분 정도 째려보다가 급발진(=빡침)
2. 조건 분석(왜 빡쳤는가)
2-1. 외적조건
1) 나는 카페직원들 일하는 방식을 잘 안다(처제가 카페 사장)
: 선주문 한 사람 1명이 있었고, 나는 아메리카노(HOT)를 주문함
: 2명이 선주문 건 만들고, 1명이 잠깐 달깍해서 아메리카노 만드는 게 기본 작동방식
: 현장에서는 1명이 일하고, 2명이 주위에서 방황하고 있었음
2) 시간이 촉박한 상태였음
: 약속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1분이 아까운 상황
2-2. 내적 조건
1) 무방비한 산란한 상태
: 내적 중심이 잡힌 상태도 아니었고, 알아차림이 있는 상태도 아니었음
2) 쫓기는 듯한 심리
: (사실 조금 늦어도 되는데) 1분 늦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망상적 후달림 상태
반전 : 사실... 30초 정도 째려보면서, 이미 견적이 나왔거든요..
사장님이 알바 둘 데리고 가르치는 것 같더라구요.
좌뇌는 "스톱! 이건 화를 낼 정당성이 없다!"고 외쳤지만...
이 조언을 고분고분하게 들었으면 중생이 아니죠 ㅎㅎ
제 몸과 마음의 최종결론은 "아몰랑, 아무튼 빡친다고! 빡칠래!" 였습니다.
정리 : 가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도닦는다고 난리쳤어도 기본적 성품? 성질이 더러운 거는 여전하구나
('관리스킬'은 늘었지만..)
그냥 본투비 성품이 온전한 사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
첫댓글 일상에서도 사띠하고 계시네요.
수행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급발진 일어날 수 있는 순간을 보고, 스스로 급발진은 아니다 라고 하셨으면 이미 충분한 도력이라고 보여요^^
귀한(거의 못 듯는)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_()_
황벽님 글은 항상 수행으로 향해 있어서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요.
바로 법우의 힘인 것이죠.
감사합니다.
글이 재밌습니다.
생각나는대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중생이 왜 이렇게 헤매냐?
선불교식으로 말하면
부모미생전본래면목
이런 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본 글로 보자면
글쓴이가 겪은 불편함 또는 괴로움이 있고
‘부모’는 그 직접적인 원인을 말합니다.
빡치는 마음이 엄마고 ‘옳지 않아’ 하면서 말리는 게 아빠라고 보면 되고
엄마아빠가 불화하니 그 과정에서 괴로운 것이고요.
어쨌든 불교에서 중요한 관건은
엄마를 따라가냐? 아빠를 따라가냐? 가 아니고
집구석을 파악하고
그 전체 구도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죠.
본 글의 결론은 후회이고 ‘아빠가 옳았어’죠.
그건 이번 생의 구도가 그 쪽에 가깝고 본인이 그렇게 정리한 거구요.
중생의 삶(生)이란 시시각각으로 생에 던져지고
그 생은 어떤 구도 속에 있기 마련이죠.
그 구도란 또 보기 나름이고요.
이걸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위빠사나죠.
부모타령은 위빠사나의 유교식 각색이고요.
이런 식의 위빠사나는 정통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부모미생전본래면목이라는 말에는 공부 방법과 도달한 지점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죠.
그래서 저는 이런 방식도 사람에 따라서 불교를 관통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하나의 수행 방법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이런 공부를 계속 한다면
좋은 공부 재료를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재료란
탈출이 용이한 구도를 말합니다.
이런 수행은 정리를 좀 기피합니다.
정리란 구도를 결국 깨지 못하고 받아들인 거니까요.
물론 매번 깰 수는 없지만 가급적 의심을 갖고 가는 것이 좋고
정리가 어려운 재료를 찾는 게 유리합니다.
그리고 얼마간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바로 지금의 감정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길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 길은 그 生(삶) 안에서 찾기가 용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