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 외 1편
최일화
우수마발이 다 시가 될 수 있지만
그냥 시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한 그루 모란의 뿌리가 봄을 만난 듯해야 비로소 시가 된다
우주에 우주 쓰레기가 가득하듯이
시인 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
시가 될 수도 있었는데 끝내 되지 못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들
시인은 언제 태어나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것인가
저렇게 집 한 채씩 지어놓고
풀벌레처럼 들어앉아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천사인지 마귀인지 모를 날개를 달고
밤을 낮 삼아 떠돌기도 하고
문둥이끼리 반갑듯이 시인들끼리는 서로 반갑다
알고 싶지도 않고 모르는 게 낫기도 한
마음이 많이 상한 사람들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우는 사람들
시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멋모르고 시인이 되고 싶어 시 하나 등불 삼아 살아왔으니
참 바보처럼 살았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
시인 안에 시 아닌 것들 가득하고
추운 날 쓰레기 더미에서 시를 뒤적거리며
발원지
시를 쓰는 것은
고상한 정서의 발현이라고
그윽한 사상의 구현이라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나이 들어 안다
사랑은 생사의 문제처럼 절실한 것이라고
특별한 지점에 있는
고귀한 영역이라고 여겼지만
맹신의 오류였다는 걸 늘그막에 겨우 안다
생의 하류에 와서 돌아보니
시도 사랑도
일상의 잡다한 것과 닮아 있고
저잣거리 소음과 먼지 속에 섞여
허덕이는 노심초사 속에
고심하는 불면의 밤에
일터에서 돌아오는 고단한 퇴근길에
은둔처럼 싹이 트고 샘물처럼 발원하는 것을
―최일화 시집, 『시인 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 (푸른사상 / 2024)
최일화
경기도 안성 출생. 1985년 첫 시집 『우리 사랑이 성숙하는 날까지』 상재. 1991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시집 『소래갯벌공원』 『시간의 빛깔』 『그의 노래』 등. 시선집 『마지막 리허설』, 수필집 『봄은 비바람과 함께 흙먼지 날리며 온다』 등. 톨스토이 작품의 영역판 『Wise Thoughts for Every Day』, 루이스 L. 모로의 『My Bible History』를 번역 출간. 인천문학상, 계간문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