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두타산 무릉계곡 피마름골 및 무릉구곡 트레킹 #1
2026. 3.29(일) 맑음
<트레킹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12.8km, 약 5시간 20분 소요>
동해(자택)/06:50-무릉계곡 제1주차장/07:20/07:40-관리사무소/07:43-신선교-금란정-반석교-삼화사/07:55-관음암 갈림길/08:05-철계단(1)/08:20-
전망바위/08:26-철계단(2)/08:45-철계단(3)/08:52-관음암/09:07/09:17-피마름골 갈림길/09:21-전망대/09:48/09:53-소원탑/10:07-너덜지대/10:11-
피마름골 상단 철교/10:20-쉼터의자/10:40-문간재/11:10-신선봉/11:16/11:30-문간재/11:34-병풍바위,장군바위/11:53-선녀탕/11:55-
쌍폭포/11:58-용추폭포/12:06-얼레지쉼터/12:27-두타산성 갈림길/12:44-옥류동교/12:46-옛길 갈림길/12:48-학소대/13:03-삼화사/13:16-관리사무소/13:16
피마름골 숲길 조성사업은 동부지방산림청과의 공동산림사업 협약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사업비 6억5000만 원을 들여 총연장 2.86km의 숲길을 2025.11.30.개설했다.
숲길은 천연림이 우거진 피마름골 계류를 따라 이어져 무릉계곡의 빼어난 자연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전망대 쉼터, 철교, 경관 안내판 등을 설치해 안전성과 접근성을 확보했다.
2025.11.30. 개설한 두타산 무릉계곡 피마름골 산행을 위하여 2026.3.29(일) 오전 6시 50분경 동해(자택)을 출발한다.
오전 7시 20분 무릉계곡 제1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이라 주차공간은 여유가 있다.
무릉구곡(武陵九曲) 관광안내도
무릉구곡은 최윤상이 35세가 되던 1844년 무릉계 중대사 옛터 남쪽에 (현재 삼화사 일원) 복숭아 나무 일 만 그루를 심고
띠(티풀)집 3간을 지어 무릉정이라 하고, 성리학의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며 무릉도원을 설정하고 이 무이도가를 지어 읊었다.
'무릉정 위에서 선령을 쳐다보니 바위아래 차가운 물줄기 굽이굽이 맑은 데 그속에서 진원을 누가 거슬러 올라가 찾겠는가
나에게 뱃노래 두서 너곡 불러주게나'
무릉계곡 관광안내도
07:43 관리사무소(매표소)
신선교
신선교에서 바라 본 무릉계곡
베틀바위 산성길 갈림길
현대문학의 장르에서 최초로 두타산을 노래한 영동지방의 대표적인 최인희 선생이 지은
낙조(落照)를 기념하여 세운 "최인희 시비"
최인희 '落照'
소복이 산마루에는 햇빛만 솟아오른 듯이 솔들의 푸른빛이 잠자고 있다
골을 따라 산길로 더듬어 오르면 나와 더불어 벗할 친구도 없고
묵중히 서서 세월 지키는 느티나무랑 운무도 서렸다 녹아진 바위의 아래위로 은은히 흔들며 새어오는 범종소리
白石이 씻겨가는 시낼랑 뒤로 흘려보내고 고개 넘어 낡은 단청 山門은 트였는데
천년 묵은 기왓장도 푸르른 채 어둡나니
동해 무릉계곡 안내도
무릉반석 암각서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신선이 노닐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 솟는 바위
무릉선원은 도교(신선)사상을 중대천석은 불교 또는 유교 사상을
※ 옥호거사서신미(玉壺居士辛未春) 신미년 봄에 옥호 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1571-1576) 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1571)에 광천을 방문했을 때 무롱계곡을 들러 썼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한언이 삼척부사 재직(1750-1752)기간중인 신미년 (1751)에 무릉계곡을 방문 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
동해시에서는 오랜 세파에 글자가 희미해지고
마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보존하기 위해 1995년도에 모형 석각을 제작, 설치
단원 김홍도(1745~1806년)의 "금강사군첩" 무릉계(武陵溪)
"금강사군첩"은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고 관동지역의 산수 승경을 직접 유람하면서 그려 온
"봉명도사첩(奉命圖寫帖)"으로 "금강전도"라고도 한다.
1788년(정조 12) 44세의 김홍도는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과 함께 관동 9군(郡)을 답사하면서
100여 폭의 그림을 그려서 "금강산도횡권(金剛山圖橫卷)"으로 만들어 정조에게 바쳤다.
정조는 이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7언절구의 시를 지어서 내렸다.
무릉반석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 백두대간의 산세와 소나무 한 그루라도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삼척향교 유생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금란계를 결성하여 애국 활동을 벌였던 무대인 금란정(金蘭亭)
金蘭亭(금란정) 편액은 계남(桂南) 심지황(沈之潢, 1888∼1964)의 필적이다.
심지황은 동해시 북평동 단곡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나 강릉에서 주로 활동한 서예가다.
대한제국 광무7년(1903) 당대 삼척지방 유림재생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현학을 강마(講磨)하고 동양 예의를 하며 봄과 가을의 음상을 즐겨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향교가 폐강되었고 이를 분개한 유생들이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란계 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하기 위해 정각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중단된다.
그 후 당시 계원들은 선배 계원들의 뜻을 받들어 다시 정자를 건립하기로 하고 1947년 북평동 단봉 석경 등에 금란정을 건립하였다.
현재의 금란정은 1958년 무릉 계곡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금란계 100주년 기념비
頌金蘭亭(송금란정)
萬古千秋는 時時刻刻으로 이어지는데 百年歲月은 年年으로 쌓였도다
1903년 癸卯四月이라
나라밖 寇賊은 疆土를 侵犯하고 나라안 頹風은 學宮마저 犯하니 半萬年의 겨레正氣 危局을 맞도다
學問의길 修行하던 居接儒生들 三十八士 作心契盟하니 金蘭契로다.
1917년 丁巳四月이라
山紫水明 武陵仙源 淸溪磐石에 三十八賢 蘭友雅名 새겨남기니 그윽한 蘭香氣의 象徵이로다.
1958년 戊戌八月이라
五十五年歲月은 潮流처럼 흐르고 頭陀山下 中臺洞 勝地明堂에 六間亭閣 세우니
金蘭亭이라 檐下에 額板걸고 天井에 詩板다니 선비와 詩朋의 蘭堂이로다.
2003년 癸未四月이라
後生이 會同金蘭亭하니 蘭友는 三百이요 曲水에 盞띄우니 契宴同樂 몇 해이던가
시첩으로 전하니 난지교계 백년이로다. 淸雅하도다 蘭香氣 千秋不變하리라.
2003년 癸未 四月 日 金蘭契
무릉반석 안내도
두타산 삼화사 일주문
무릉구곡(武陵九曲)
동해 출신으로 조선시대 유학자인 최윤상(1810∼1853)이 35세 되던 1844년(헌종 10년) 부친의 뜻에 따라 청옥산 아래에 들어가
무릉계 시냇가에서 독서하며 무릉계곡 호암소부터 용추폭포 구간 중 9곳을 무릉구곡으로 정하고,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한 무릉구곡 가를 지었다.
무릉구곡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몸과 마음을 쉬고 달래는 휴양지이자 참신하는 장소였다.
무릉계곡에 설치된 안내판은 무릉계곡 호암소∼용추폭포 구간에 무릉구곡 종합안내를 비롯해
제1곡 맹호암(猛虎巖), 제2곡 와룡추(臥龍湫), 제3곡 학소대(鶴巢臺), 제4곡 운영교(雲影橋), 제5곡 방화계(訪花溪),
제6곡 수류천(隨柳川), 제7곡 함월지(函月池), 제8곡 낙하담(落霞潭), 제9곡 영귀탄(泳歸灘) 등 10개로 원문과 해설이 담겨 있다.
동해시는 명승 제37호 무릉계곡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적 의미를 더해 지역 대표 관광자원으로서 더욱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관광객들에게 숨은 볼거리 제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삼화동 초입에서 시작하여 용추폭포까지 약 6km 이어지는 용오름 길에는 천하절경을 보여주는 무릉구곡이 펼쳐진다.
용오름길의 정점인 용추폭포는 가뭄이 들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곡 영귀탄(九曲 詠歸灘, 위치 : 무릉반석 일원)
九曲詠歸眼割然(구곡영귀안할연) 구곡에서 시읊으며 돌아오메 눈앞이 훤히 트이고
灘頭煙歇見平川(탄두연헐견평천) 여울가 물안개 사라져 평천이 보이는데
柳知攀木綠崖處(요지반목록애처) 나무가지 휘어잡고 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하는 곳임을 알아
抛得奇觀咫尺天(포득기관지척천) 기이한 경치 지척에 두고 포기하였네
<용오름 길>
삼화동 초입에서 시작하여 용추폭포에 이르는 길이 6km 무릉계곡을 말한다.
고적에 의하면 삼화사 창건 당시 약사삼불. 백, 중, 계, 삼 형제가 처음 서역에서 동해로 용을 타고 왔다는 전설이 있다.
약사삼불을 싣고 용이 두타산을 오르던 길이 바로 그 "용오름 길"이다.
반석교
전통 발효차 연다원
삼화사 수륙재(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실록에 태조가 고려 왕실을 위로하려고 관음굴, 견암사, 삼화사에서 매년 봄가을에 성대하게 수륙재를 거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삼화사 수륙재는 1년에 2차례 열렸는데 고려 공양왕의 영혼을 달래고 사회 안정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곡 와룡추(二曲 臥龍湫, 위치 : 반석교 밑 용오름길)
二曲溪環萬疊峯(이곡계환만첩봉) 이곡의 시냇물 만겹의 산봉우리 둘러흐르고
臥龍湫下步從容(와룡추하보종용) 와룡추 아래서 한가로히 거니는데
江湖遠處看牛斗(강호원처간우두) 강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두성(견우성과 북두칠성) 바라보니
銀漢遙應接九重(은한요응접구중) 은하수는 멀리 구중에 닿아있네
보호수(수령 400년 느티나무)
07:55 두타산 삼화사(三和寺) 두타 청옥산 무릉계곡 내에 있는 사찰,
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84(삼화동 860-1)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430m 정도 떨어져 있는 무릉계곡 초입에 위치한 사찰로
청옥 두타산 무릉계곡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이다.
642년 지장율사가 ‘흑련대’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여 864년 범일 국사가 ‘상공암’이라고 개명하였고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사찰에서 후삼국의 통일을 간절히 발원하여 20년 만에 대업을 달성하여
삼국에 얽힌 갈등과 증오의 감정을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만들고자 상공암을 ‘삼화사’라고 개명하였다.
삼화사의 문화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인 삼화사 수륙재, 보물 제1277호인 삼층석탑 및 보물 제1202호인 철조나불좌상 등이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
삼화사의 중심 건물인 적광전과 보물 1277호 삼화사 삼층석탑(통일신라시대)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화엄종 계열의 사찰 본당을 일컫는 반면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사찰로 삼존불(문수·보현)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삼화사 템플스테이
무릉계곡 등산안내도
오늘의 산행코스는 삼화사-관음암-피마름골-문간재-신선봉-용추폭포-관리사무소로 하산하는 코스로 계획한다.
08:05 관음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초입부터 경사가 급한 돌계단이 시작된다.
08:20 첫번째 철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