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마태 6,7-15
오늘 우리는
마태오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듣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바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익숙함이 때로는 말씀의 깊이를 가려 버리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기도를 많이 한다고,
길게 한다고,
하느님이 더 잘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이미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버지를 신뢰, 그분의 자녀가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잘 봅시다.
처음 세 가지 청원은 모두하느님을 향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우리는
보통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문제를 꺼내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서를 바꾸십니다.
“먼저 하느님.”
저희들이 여러번 말씀 드렸듯이,
기도는
내 뜻을 하느님께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내 마음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입니다.
내일 것도, 평생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하루하루 신뢰 안에서 살도록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받아 먹었듯이,
우리도 오늘 필요한 만큼의 은총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내일이 불안해서” 더 쌓아 두려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고,
아버지를 믿어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여기서 우리는 멈칫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하는 만큼, 나도 용서받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실까요?
하느님의 자비는
막힌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닫고 있으면, 은총도 흐르지 못합니다.
용서는 감정이 정리된 뒤에 하는 행동이 아니라,
먼저 결단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되어가야 할텐데요..
우리는 정말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있을까요?
오늘의 양식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을까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하고 있는지요?
주님의 기도는 입으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프로그램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는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 차분히 주님의 기도를 지금 내 생활과 비교하면서 천천히 드려보면 어떨까요?
(정 루치아나 수녀님)
2월24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마태오 6,7-15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기도를 더 빨리 들어주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그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 ”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우리가 청하는 어떤 것을 들어주시기 위한 준비작업처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시며 주님의 기도만 바치면 그 원하는 바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며 특별히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미운 마음이 있는 상태로 기도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들어주시면 그것은 그 미워하는 마음을 긍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암 그들은 이렇게 치유되었다”(Radical Remission: Surviving Cancer Against All Odds)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저자 캘리 터너는 의학 저널에 실린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가 자연치유 된 1,500건 이상의 근본적 치유 사례를 분석하는 한편, 전 세계 수백 명의 암 및 난치병 완치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 포스터라는 여인은 유방암 4기, 살날이 12개월이었지만 365일 매일을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살았더니 암이 완전히 완치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한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자. 답을 알아낼 시간이 365일이나 남아 있어.’ 그리고 나는 매일 행복하기, 자연스러워지기, 감사하기 세 가지를 실천하자고 마음에 새겼고 매일 그것들을 연습했어요.
그 중에서 365일 동안 ‘행복하기’는 365일 동안 ‘그 순간에 존재하기’로 바뀌었네요.
이것은 화가 나거나 울고 싶거나 이불 속에 숨어 세상을 향해 나를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그냥 그렇게 했다는 걸 의미해요.
나는 정말로 그 순간에 존재했어요.”
사람들은 마음과 물질이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과 영혼은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영혼이 불안한데 몸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청하는 것은 병의 치유나 어떠한 일이 해결되는 등의 물질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은총은 영적인 세계를 통과해야 물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영적인 막힘을 뚫어주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한 환자도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요법 등을 시도하였지만, 암이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용서의 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지혜롭고 자비로운 대학 교수님과 함께 용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용서해야 할 상대방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분노와 증오를 받아들이고 이를 떨쳐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슬픔과 아픔을 느꼈지만, 이를 극복하고, 용서의 힘으로 인해 건강한 마음과 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자 캘리 터너가 기적의 암 치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10가지 치유 요소’는 이러합니다.
① 식단의 근본적인 변화, ② 자신의 건강을 주도적으로 다스리기, ③ 자신의 직관을 따르기,
④ 허브와 보조제 사용, ⑤ 억눌린 감정 풀어주기, ⑥ 긍정적 감정 키우기, ⑦ 사회적 지지를 받아들이기, ⑧ 영적 연결을 강화하기, ⑨ 살아야 할 강력한 이유 찾기, 그리고 ⑩ 운동입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10가지 요소들 중에 신체와 관련된 것은 식이 요법, 보조제, 운동 세 가지뿐이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정신적⋅감정적⋅영적인 요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가 몸‒마음‒영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전인적 존재이며, 따라서 병의 치료에 전인적인 접근 방식이 실제로 큰 효과를 발휘함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청을 더 빨리 들어주실까요? 당연합니다.
분명 영과 물질적 세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질적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먼저 더 깊은 영적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세포도 호전됩니다.
이러한 감정을 갖게 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만약 내가 사면장을 주면 그 사람이 아직도 증오심이 남아서 나가서 또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면 어떻게 그 사면장을 줄 수 있을까요? 먼저 감정의 평화가 우선입니다.
그 평화를 얻는 방법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큼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그러니 먼저 주님의 기도로 마음을 평화롭게 합시다.
아니 주님의 기도만 그 뜻을 마음으로 새기며 기도합시다.
그러면 청하지 않은 것도, 청했어야만 하는 것도 모두 알아서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2월24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6,7-15
기도 클리닉
언젠가 기도 클리닉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에도 정화 작업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도 아닌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의 주체요 전부이신 주님을 압박하며 밀어붙입니다.
삼라만상을 주관하시고 보살피시는 크신 주님을 너무나 왜소하고 인색한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치는 기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도는 뭔가 간절히 필요할 때 주님께 매달리고 애원하며 결국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좋으신 아버지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가 오로지 나와 우리 가족의 승승장구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심각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에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연륜이 더해갈수록 자신이 바치는 기도의 질, 수준에 대해서 자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청하는 바에 대한 응답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과 주고받는 일상적인 청원은 물론 감사, 찬미, 탄원, 호소, 사랑 고백...등 그 모든 대화가 더욱 중요하며, 그 자체가 기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자상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요란스런 기도, 장황한 기도가 아니라 단순하고 겸손한 기도, 마음이 담긴 기도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기도하는 이의 청을 들어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 하느님께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
뿐만 아닙니다. 기도를 바칠때는 우리의 인간적 생각으로 이렇게 재보고 저렇게 따져보며 바치지 말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녀다운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라 하십니다.
우리는 왜 기도를 바칩니까?
주님께 뭔가를 알려드리거나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주님께 청함으로써 우리가 좀 더 그분과 친밀해지고, 좀 더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우리 내면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천사의 무리와 하나 되어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는 듯이 세상의 소란을 모두 잊으십시오.
참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천사들의 손에 들려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강론>
(2026. 2. 24. 화)(마태 6,7-15)
<‘주님의 기도’마저 ‘빈말’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7-15).”
1) ‘주님의 기도 전반부’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기도입니다.
‘후반부’는 이웃 사랑 실천과 용서와 화해의 실천으로 하느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다짐만 하고 실제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 다짐은 ‘빈말’이 되어버리고, 신앙생활은 ‘빈 삶’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빈 삶’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살아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항상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바치는 기도는 ‘살아 있는 기도’가 되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이
바치는 기도는 ‘죽은 기도’, 즉 ‘빈말’이 될 뿐입니다.
‘죽은 기도’는 아무리 많이 바쳐도, 또 아무리 끈질기게 기다려도, 응답을 얻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응답을 얻고 싶으면, 영적으로 살아 있으면서,
실천을 통해서 살아 있는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2) 구약성경 잠언에 유명한 기도가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7-9).”
이 기도는, 기도와 실천의 관계를, 또는 기도가 ‘빈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할 테니까 도와달라는 기도입니다.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려는 인간의 노력과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의 도우심이 합해져서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만일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청하기만 한다면, 이 기도는 ‘빈말’이 되고, 실천 없이 말로만 기도하는 그 사람은 위선자가 되어버립니다.
또 ‘정해진 양식’을 주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불신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과 ‘우리의 노력’ 가운데에서 무엇이 먼저냐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도둑질을 한 다음에 “주님께서 나를 가난하게 만드셔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라고, 주님 핑계를 대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데, 죄를 짓고 나서 하느님 탓을 하는 것은, 죄를 더욱 키우는 일이 될 뿐입니다.
불신자가 되어서 교만하게 살면서, “주님께서 나를 부유하게 만드셔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3)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면서
특별히 강조하신 것은 ‘용서’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하느님의 용서’가 이미 인간들에게 주어졌음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웃을 용서한 사람이 주님께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는 일’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용서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조건”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위한 조건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예 용서를 안 하려고 작정하는 경우라면, 자신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빈말’이 아닌 ‘참 기도’를 가르쳐
주려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실제 현실을 보면, ‘주님의 기도’마저도 ‘빈말’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혼자서 독점하는 경우, 이웃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경우, 유혹을 물리치지 않고 그것에 빠져 있는 경우, 죄와 악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경우 등... 그런 상태에서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빈말’일 수밖에 없는데, ‘주님의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가 다 ‘빈말’이 되어버립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