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쇼팽 폴로네즈 5번 '군대'
"그것은 참으로 볼만한 풍경이었다. 값비싼 옷과 보석으로 한껏 치장한 귀족들 사이를 가르며, 유랑극단을 연상케 하는 한 무리의 기묘한 일행이 등장했다. 체통 같은 건 집어던지고 마자르인의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으로 장단을 맞추는 어릿광대같은 국왕. 코앞에서 마주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 못난 얼굴을 베일로 적당히 가린 채 그의 뒤를 따르는 왕비. 불룩 나온 배를 간신히 허리띠로 졸라매고, 왼쪽에 황금 의수를 낀 채 여전히 술이 덜 깬 얼굴로 비틀대며 걷는 재상. 수도승처럼 위쪽 머리를 박박 깎아 날려버린 늙은 대원수와, 그의 부축을 받아 들어오는 그보다 더 늙은 재무상. 둘 모두 프랑스와 이베리아에서 온 이방인들이다. 경악하는 귀족들을 훑어보는 첩보관의 눈이 번득인다. '내가 평민인 게 불만있나? 눈 깔아.'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이 모든 걸 글로 옮길 수 있었느냐고?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리스도 예수는 그분의 아드님이요 선지자라. 내 이름은 무자파라딘 이븐 바샤르. 회심한 이스마일인이자, 왕실 고해사제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뒤가 마려운 표정으로 서 있을 때, 국왕의 거룩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해? 박수 안 쳐?"
"아아, 마이크 테스트.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봐, 야로폴크. 개회사가 그게 뭔가? 대본이 바뀐 거 같은데... 그러게 적당히 마시랬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그건 주기도문이고! 안되겠다, 마이크 이리 내놔."
이딴 걸 의장이라고 진짜... 확 임명 취소할까. 어쨌거나 모두가 내 앞에 억지로라도 모인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너네들 조회 긴 거 싫어하지? 집중해서 잘 들어라. 짧고 굵게, 빨리 끝내줄테니까."
어이, 아무리 내가 맘에 안 들어도 너무 티내지 말라고... 호의(Favor) 자판기가 말을 하네? 라고 니들 얼굴에 다 써있으니까.
어떻게 여기 모인 우리들의 생각이 다 똑같겠나? 원래 사람은, 좋아서 하던 것도 남이 시키면 집어던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약속한다. 법이 정하지 않은 것은 강요하지 않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쫄리냐? 그러면 걸릴 짓을 안 하면 된다. 착하게 살자 우리. 나도 클레임 조작 임무는 안 누를테니까.
현명한 선택이다. 일 끝났으면 놀아야지? 봄이 되면 국왕배 토너먼트가 열릴 것이다. 상금은 우승자가 모조리 가져간다. 그럼 해산!
"야로폴크, 어디서 이런 괴물을 구했나? 나 좀 주면 안돼?"
"꿈도 꾸지 마십시오. 어디서 성능좋은 가신을 날로 드시려고."
"너도 얘가 밭갈다 왔다고 무시하면서 왜 붙잡고 있냐? (-4)"
"본인이 여기 있겠다잖아요. (52) 개인 외교력이나 좀 키우고 그런 소릴 하세요. (8)"
"언젠가 네놈이 술먹고 역대급 개망신당하는 자리에 내가 꼭 있었으면 좋겠군..."
야로폴크의 충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의 조카딸은 큰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왕의 이름으로 전국을 살피는 첩보관을 살해한 죄는, 정당한 법 집행을 방해하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는 중대한 도전입니다.
"실수였다고? 어려서 부모를 잃었으니 봐달라고? 네가 죽인 자도 딸을 둔 아비였다. 체포하라!"
프락시다는 순순히 끌려왔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원망이 가득합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동방의 전례를 따르는 루스인이라 핍박받는다'는 확신. 솔직히 좀 역겹습니다. 난 할아버지만큼 착하지 않거든요.
아주 오래 전, 쿠야비의 영주였던 레셰크 볼레스와보비치도 그랬죠. 땅을 노리고 봉신을 죽였지만, 모반할 뜻은 없었다고. 변명일 뿐입니다.
그는 얼마 살지도 못할 몸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 잘못으로 벌어진 일을 끝까지 뉘우치지 않은 채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헝가리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불쌍한 이슈트반... 넌 독립해도 무죄다.
이미 자그레브를 신나게 털어먹은 베네치아는 물론이고, 이젠 보헤미아인들까지 참전했습니다.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까지.
두너 강에서 부는 찬바람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더 매섭게 몰아치기 마련이죠.
30여년 간 성 이슈트반 왕관과 즈보니미르 왕관을 쓰고 있던 군주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복수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자들은 모두 헝가리를 떠나 있습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칼을 든 수도자가 된 언드라시와 엔드레는 사실상 계승권을 포기했습니다. 남은 것은 여전히 아샤펜부르크에 있는 바줄 뿐.
프랑켄 왕 에버하르트는 어지간히 그를 놓치기가 아까운지, 여전히 꼬박꼬박 밥을 줘가며 붙잡고 있습니다.
키예프에서도 이 불행한 왕자를 동정하는 건지, 과부가 되어 돌아온 딸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눈물나는 상황이지만, 지금 폴란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용병대 작위는 플레이어와 일반적인 외교 소통이 불가합니다.
독립 세력으로 간주되기에 궁정 초청도 불가, 용병 봉신화 꼼수를 막기 위함인지 혼인 교섭도 불가. 아오 진짜... 뭘 어떡하라는 거야.
인간흉기인 그를 누구도 못 해칠 거라는, 허약한 믿음이라도 가져볼 수밖에요.
제발 죽지 마라. 살아남아라.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려서라도.
네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하느님이든, 옛 신이든 상관없다.
"전 폴란드의 여왕? 그게 무슨 소리니 루스인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가봐요... 프락시다는 또다시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됐습니다. 꼬우면 국왕 선거에서 이기라고.
폴란인들이 그녀를 침입자라고 부른 건 과장이 아닙니다. 시범 케이스인 만큼, 철저히 때려잡아야 다른 놈들도 엉뚱한 생각을 못합니다.
레셰크 볼레스와보비치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보군? 가진 것에 만족 못한 대가가 뭔지 뼈에 새기게 해주마.
"생각보다 여공작의 저항이 거세서, 우리 쪽의 사상자만 2천이 넘었습니다..."
"의미없는 발악이다. 오른쪽에 2백명 정도 보이나? 저게 쿠야비 잔당들에게 남은 병력의 전부다."
봉신들 중 누구도 '침입자'인 그녀를 돕지 않습니다. 죄가 너무 크니 야로폴크조차 잠잠합니다. 좀 더 오래 버틸 뿐이지, 결말은 똑같아요.
무자파라딘에게 해외직구시킨 헝가리의 옛 이야기책들이 도착한 그 시점에, 왕궁에 매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여인을 유혹할 땐 부드러운 속삭임과 꽃다발이 필요하지만, '그녀'가 내게 토끼를 갖다주도록 하려면 좀 다른 방법을 써야 해요.
주인을 향한 충성심과 애정이 넘치는 개와 달리, 매들은 그런 건 모릅니다. 아름답고, 위험하죠.
'네가 내게 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보답으로 이 토끼를 네게 주마.' 철저한 신뢰 위에서 움직이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마자르인들이 왜 그녀에게 영혼을 빼앗기는지 알 거 같아요. 그 날개짓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자유로워지니까.
그리고 어김없이 내게 돌아올 겁니다. 넓은 세상 전부를 발 아래 두고도, 그녀 자신의 의지로. 믿음이란 그런 거예요.
아, 어서 이리 날아오렴. 내 사랑아.
"여공작이 성문을 열었습니다."
꼭 제일 재밌을 때 누군가 끼어든단 말이지. 너 때문에 흥이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라, 프락시다.
내 관용을 우습게 알고, 감히 왕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사로잡힌 네가 이번엔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지 끝까지 들어주마.
물론 판결은 이미 정해져 있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