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인데 “사랑한다 말해도 될까요?” “안돼요. 우리가 그러기에는 너무 늙고 병들었어요.” “하기야, 병든 우리를 누가 축복 하겠어요.”
“그래도 사랑인데...” 그 두 사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둘 다 에이즈 보균자였다. 그리고 둘 다 동성연애자였다. 이성에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이성에게 참담하게 상처를 당한 뒤 패배주의, 허무주의, 낭만에 대한 배반, 염세주의, 지독한 이성 혐오 자였다. 그리하여 종로 거리를 배회하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구청 보건소였다. 필로폰 투약자보다 더 슬픈 눈동자 에어컨 앞에서도 핏기 없이 흐르는 땀방울 그것이 없었다면 서로를 모르는 체 살아갈지도 몰랐을 것이다. “많이 아파보여요” “아,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해도 괜찮아요.” “아, 예 그럼 아저씨도?” “그렇지요 뭐.” 커피 자판기로 남자가 여자를 이끈다. “냉커피 어때요?” “예, 괜찮아요.” 천원을 넣고 아이스커피 버튼을 누르자 일시적 우박소리가 나고 거의 동시에 자동판매기 굉음이 들린다. 빨간 전등이 깜빡이다 꺼졌다. 그러기를 한 번 더하고 남자가 그냥 가려하자 “저 동전 받아야죠.” “아차, 그렇지 고마워요.” 반환버튼을 누르니 슬롯머신 앵두가 맞았을 때보다 짧게 떨어지는 동전소리... 둘은 커피 잔을 가볍게 흔들며 구청 앞 등나무 그늘이 시원한 벤치로 가서 앉는다. “혹시 이름이 뭐에요? 저, 저는 석태인데...” “저는 희경이에요.”- 여자는 이름을 속였다. 남자도 석태...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서로가 사랑의 패배자라는 것을, 아무리 까마득히 있어도 그가 그이고 그녀가 그녀라는 것을, 실패한 사랑은, 추억 속에 있어야 된다는 운명을... 다시 한 번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슬픈 소나기가 되어 8월의 하늘을 마구 적시고 있었다. 그들이 그 벤치를 떠나고 난 뒤에도... 사랑이 커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가려고 하자 “저, 저도 가져가줘요.” “아차, 그렇지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우산 밑에서 담배를 빨고 있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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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홍석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하는 김시인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사람들 빨리 찾아내세요!^^
상상은자유~~~자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