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나이를 불문하고 알고 있는 어린왕자는 나도 어려서부터 알던, 집에도 두 권이나 있는 책이었다. 그런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번도 어린왕자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보아 뱀 얘기나 바오밥 나무 얘기를 제외하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예전 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어린왕자를 이번 여름방학에 다시 접하게 되었다.
전설 동화 속의 주인공이 흔히 왕자이듯, 이 동화의 주인공도 왕자이다. 흔히 의를 행하고 악을 쫓고 공주를 구하고 선을 상징하는 것이 왕자이듯 그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동심을 지닌 ‘어린’ 왕자였다.
어린왕자는 아주 조그만 별에서 혼자 산다. 그는 외로울 때 해 지는 것 을 43번이나 보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풀 몇 포기 돋아 있는 조그맣고 동그란 별 위, 의자에 홀로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쓸쓸한 뒷모습, 그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외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장미꽃 한 송이를 어린왕자는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4개의 날카로운 가시와 말투 속에 감춰져 있는 새침때기 장미의 연약함을 이해하기엔 서툴렀던 왕자는 괴로움 끝에 장미를 두고 다른 별들로 긴 여행을 떠난다. 다들 이 부분에선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을 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어린왕자는 이기적인 사랑을 했다고 본다. 예전의 자신처럼 혼자 외로이 남아있을 장미를 생각하지도 않았던 걸까...
그가 만나는 여러 소혹성의 사람들, 그들도 모두 각자 자신의 별에서 혼자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의 고독에서 벗어날 진정한 방식을 외면한 채 헛된 욕구에 집착한다. 왕은 신하를, 허영심 많은 사람은 찬양자를, 지리학자는 탐험가는, 사업가는 소유의 대상을 끈임 없이 필요로 한다. 하지만 다섯 번째 별의 가로등을 켜고 끄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매 분마다 별이 회전 함에도 불구하고 일초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남이 알아주진 않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맘에 들었다. 모두들 자신에게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외면해 버리는 게 이 현실이고 나또한 그러는데..
여행의 종착지 지구에서 ‘길들임’을 말하는 여우를 만나게 되고 ‘길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이 구절은 나만을 위한 구절 같았다. 나에겐 샤프 한 자루가 있었다. 친구들과 숙제를 하러 교보문고에 갔다가 싸게 팔아서 사게 되었던 회색샤프. 필통에 들어있던 여느 다른 샤프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샤프였다. 처음엔 새 것이라는 느낌이 좋아서 그 샤프만 사용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는 필통 속의 다른 샤프들이 아닌 그 샤프만 찾게 되었다. 낙서를 할 때도, 필기를 할 때도,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도, 심지어는 펜 돌리기 연습을 할 때도 그 샤프만을 고집하였고 손에 쥐었다. 그 샤프로 글씨를 쓰면서 암기를 하면 더 잘 외워지고 머리에도 오래 남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도 잠시, 나는 시험 첫째 날, 시험을 끝내고 이동 하는 도중 그만 샤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샤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샤프를 잃어버렸단 충격 때문이었는지 나는 다음날 최악의 점수들을 받고 말았다. 시험이 끝난 뒤 다시 교보 문고에 가서 그 회사의, 예전 샤프와 비슷한 모양의 샤프를 사긴 했지만 예전 그 샤프에 길들여져 버린 나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무언가에 길들여진 나였다.
후에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장미와 자신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었나를 확인하고 장미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난 아직도 몇 번을 읽어도 마지막 그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잖아.. 내 별은 너무 멀어. 이 육체는.. 너무 무거워서 가지고 갈 수가 없어.’
이 부분을 본다면 그는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영혼, 진정한 ‘존재’는 자신의 별로 날아간 것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거야.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이 구절을 보면 그는 죽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정말 죽은 것일까? 그렇다면 왜 죽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순수성은 이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부터 나는 모든 별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의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찾을 수는 없을 테지만 나에게 보이는 여러 별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어느 별이든지 바라보는 것이 즐겁게 되었다. 여행하는 사람에겐 길잡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조그마한 빛, 학자에겐 연구해야할 대상이며 사업가에겐 금일지도 모르는 별은 이제 나에겐 아련한 애수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사라진 나의 순수함을 찾기 위해 오늘 다시 어린왕자를 넘겨본다.
첫댓글 한번 파기 시작하면 절때로 한편으로 끝을 안내는 무궁화 심기님의 집념..ㅎㅎㅎ 근데 이거 무궁화 심기님의 글이예요??
무궁화심기님은 여전히 순수한 소년같은데...(죄송...)
ㅎㅎㅎㅎ ㅇㅓ린왕자에 빠지셨군요..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