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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0일 오늘의 역사
2023년 BTS(방탄소년단), 일본 골든디스크 4관왕…5년 연속 '아시아 아티스트’
2019년 케냐행 에티오피아 여객기 이륙 6분만에 추락 157명 전원사망
2019년 3월10일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157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비행기는 에티오피아항공 보잉 737 맥스 여객기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케냐 수도 나이로비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비행기가 아디스아바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62㎞ 떨어진 비쇼프투시 근처에서 추락했다며 "추락기에는 33개 국적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망자 국적은 케냐 32명, 캐나다 18명, 에티오피아 9명, 이탈리아 8명, 중국 8명, 미국 8명 등 또 영국과 프랑스 국적자가 각각 7명이고 이집트 6명, 네덜란드 5명, 인도 4명 등이다
정확한 추락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비행기는 이날 오전 8시 38분쯤 이륙한 뒤 6분 만에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AFP 등 외신은 사고 비행기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와 같은 기종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자카르타 인근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을 출발해 방카 블리퉁 제도로 향하던 라이온에어의 737 맥스 여객기는 이륙 13분 만에 자카르타 인근 해상에 추락, 탑승자 189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박근혜대통령 탄핵은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 의혹(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선실세 의혹, 대기업 뇌물 의혹 등)을 사유로 국회에서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이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 탄핵 소추를 발의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한 일을 말한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 10분에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7시 3분에 대통령(당시 박근혜)은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 의결서를 받는 동시에 헌법상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되었다. 이로 인해 앞과 같은 시각부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은 이 판결이 처음이었다
2010년 이애란,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
탈북자 출신인 이애란(46)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가 2010년 3월 10일 미 국무부에서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Award for 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을 받았다.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1997년 탈북했으며 탈북 여성과 어린이를 돕기 위한 기금을 조성해 그들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이 교수는 2009년 '1990년 전후 북한 주민의 식생활 양상 변화'라는 논문으로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탈북여성 1호 박사가 됐으며 18대 총선에서는 국민실향안보당의 비례대표로 공천되기도 했다.
수상식에서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와 힐러리 클린턴(Clinton) 국무장관이 번갈아가며 탈북자에 대한 이 교수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으며 한덕수 주미대사와 전신애 전 미 노동부 차관보도 참석해 수상을 축하했다.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은 미 국무부에서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명 정도의 용기 있는 여성들을 선정해서 주는 상으로 이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선정됐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케냐, 도미니카공화국, 짐바브웨의 다른 여성 수상자들도 상을 받았다.
2009년 티베트 봉기 50주년
2009년 3월 10일(이하 현지시간)은 티베트(시짱·西藏)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봉기를 벌인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당시 희생된 1만5천여명의 티베트인들을 추모하고 티베트의 자유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날 망명지인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州) 다람살라의 사원 앞마당에서 “티베트인들은 법률로 보장된, 의미있는 자치권을 원한다” 라는 내용의 기념 연설을 했다.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사원 주변은 티베트 국기와 달라이 라마의 사진, “티베트에 자유를” 이라는 구호를 담은 포스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대한민국의 서울, 일본의 히로시마(廣島), 호주 수도 캔버라, 미국의 워싱턴 등 전세계 곳곳에서 시위와 추모집회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미 하원은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에 대한 억압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03년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하늘꿈학교’ 천안서 개교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학습을 보충하기 위한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교장 임향자)가 10일 충남 천안시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교식을 가졌다. 이 학교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최초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로, 6개월 코스로 진행된다. 피랍탈북인권연대와 한국선교전략연구소 등 탈북자 단체와 종교계 주도로 지난해 11월 추진협의회가 구성돼 이날 개교하게 됐다.
‘하늘꿈학교’는 전임교사 3명, 전담 상담교사 1명, 자원봉사 교사 7~8명의 지도로 탈북자 적응시설인 ‘하나원’ 출신 청소년 30여명을 수용할 예정. 추진협의회 황윤철(黃允哲) 사무국장은 “지난해 말 현재 19세 이하 청소년 탈북자가 300여명에 이른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경쟁적인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어·영어·수학 등 정규교과와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교육과정을 꾸몄다.
2003년 북한, 지대함 크루즈 미사일 함남 해안서 동해로 발사
2003년 보건복지부, 의·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유전자 검사 금지
키를 크게 하는 유전자, 머리가 좋아지는 유전자 등 의·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유전자를 검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0일 “최근 서울 강남 일대에서 ‘키를 크게 하거나 성격·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광고하며 이를 검사해주는 업체가 20~30개 생겨나고 있어, 새로 만들어질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로 이를 금지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같은 검사가 소비자에 대한 사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생명윤리법 중 ‘신체 외관이나 성격 등 의·과학적 입증이 불확실해 피검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는 유전자 검사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적용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그러나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검사능력이 인정되는 기관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2003년 CNN 동해 해역을 ‘일본해’와 ‘동해’로 동시 표기
미국의 뉴스전문 케이블 방송인 CNN이 동해 해역을 ‘일본해(Sea of Japan)’와 ‘동해(East Sea)’로 병기(倂記)하기 시작했다.
CNN은 지난 3일과 4일 북한 전투기의 미국 정찰기 위협비행 사건과 지난 10일 북한의 두 번째 미사일 시험발사를 보도하면서 ‘일본해, 그리고 동해로 알려진 해역’ ‘일본해 또는 한국에서 알려진 대로 동해’라고 전했다.
CNN은 지금까지 동해를 보도하면서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아예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왔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작년 9월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장이 CNN의 이슨 조던(Jordan) 국제담당 사장을 면담하고 지난 2월에는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CNN 본사 담당자를 만나 ‘동해’ 표기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고 12일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앞으로도 미국 언론에서 동해를 일본해로만 표기하는 사례를 발견할 때마다 해당 언론사에 동해 명칭을 사용해 달라는 요청 서한을 발송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USA 투데이와 LA타임스, 영국의 BBC 방송 등이 최근 계속해서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고 있다.
1998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재선(7선)
1994년 종로5가 통신 광케이블 화재로 통신-정보-금융망 마비
1994년 3월 10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 265의1 동화은행 종로5가 지점 옆 지하 5m아래 한국통신 통신구 케이블선로에서 불이나 전국적인 통신두절 사태가 빚어졌다.
통신케이블 화재로 인한 파장은 순식간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및 이와 연결된 전국의 통신-정보-금융망을 마비시켰다.
서울전역과 수도권 일부에서 시내전화 시외전화 국제전화 이동전화 무선호출 컴퓨터통신 등 모든 종류의 통신이 장애를 일으켰고, 예금 입출금과 송금 등 업무가 마비됐다. 또 지하철 1호선 운행이 한동안 중단되는 등 교통혼란도 야기됐다.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결과 자동분전반 내 단자연결전선의 접촉불량으로 불꽃이 튀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3년 조선일보사 회장에 방우영, 사장에 방상훈 취임
1991년 91삿포로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폐막 - 한국3위
1991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 50만명, 고르바초프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
1990년 이열우 WBA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85년 체르넨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망
소련 공산당 서기장 겸 연방최고회의 간부회 의장 콘스탄틴 체르넨코(74)가 1985년 3월 10일 오후 7시20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체르넨코는 1984년 2월 13일 故안드로포프를 승계, 권좌에 오른지 13개월 만에 사망함으로써 소련사상 가장 단명한 서기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11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체르넨코는 20세때인 193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몰다비아공화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인 1950년 브레즈네프가 몰다비아 당제1서기로 부임해오자 출세의 기회를 잡기 시작해 1971년 당중앙위원, 1976년 당중앙위 서기국원을 거쳐 1979년에 정치국원이 됐으며 그해 SALT II 협정서명때 브레즈네프를 수행,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브레즈네프의 오른팔로서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 크렘린의 대권경쟁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1983년 미국,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
1982년 한국데이터통신(주) 창립
1982년 태양계 9개 행성이 일적선으로 우주기현상 발생
1981년 사우디 등 6개국, 페르시아만 협력회의(GCC) 헌장에 가조인
1981년 서울대 김원룡 교수팀, 강원도 춘성군 의암서 고구려 석실토총
1977년 경주서 선사시대 주거지 발굴
1976년 명동사건 관련자 11명 입건
1975년 기자협회보 등록 취소
문화공보부가 1975년 3월 10일 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기자협회보`의 등록을 취소했다. 법정시설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1회 발행원칙을 어기고 주2회 발행했다는 이유 등으로 등록을 취소했으나 배경은 다른 데 있었다.
1975년 3월 8일 조선-동아 언론인 집단해직사태의 와중에 조선일보 기자 5명의 해직관련 내용을 증면호에서 기사화했기 때문이었다. 8개월 후 다시 월간으로 복간됐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두번째 폐간되는 등 수난 끝에 1988월 5월27일 제495호부터 주간으로 발행돼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4년 8월 17일 당시 정부가 언론장악 의도를 갖고 추진하던 소위 언론윤리위법 철폐 투쟁과정에서 언론인들의 연대의식을 결집할 필요성이 생겨 창립했다
1973년 올가 코르부트 체조 연기
1973년 유신정우회 창립총회
1972년 에콰도르 새 군사정부 출범
1969년 변영태 전 국무총리 사망
196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회 비준
1965년 월남파병 비둘기부대 인천항 출발(16일 사이공 도착)
1965년 중국 핵실험 규탄대회
1964년 동경서 한일어로협상 개최
1962년 한국-콜롬비아, 국교 수립
1962년 창경원 케이블카 개통
1959년 제1회 노동절 행사 거행
1959년 3월 10일 제1회 근로자의 날 행사가 거행됐다. 대한노총이 발족되면서 근로자의 노고를 범국민적으로 위로·격려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인 1920년대부터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왔으나 대한노총이 발족하면서 노동조합연합회 결성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할 것을 결의, 이날 행사를 처음 거행했다. 그 뒤 1963년에 제정· 공포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3월 10일이 노동절 아닌 `근로자의 날`로 공식 지정됐고, 1964년부터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은 법정 유급 휴일이 됐다. 하지만 1994년 5월 1일 노동절이 공식 부활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메이 데이`로 알려진 5월 1일 `세계 노동일`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날을 기념하여 정해진 날이다.
1956년 영국 전투기 최고 속도 기록
1952년 쿠바 바티스타, 쿠데타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쿠바의 실권자였던 훌겐치오 바티스타 장군이 1952년 3월 10일 칼로스 프리오 소카라스 정부를 내쫓는 쿠데타로 정권을 다시 장악했다. 그는 이미 193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바 있다.
이번 쿠데타는 동트기 바로 직전 그의 추종자들이 군의 주요 본부인 콜롬비아 캠프를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소규모 접전이 있은 후 몇시간 만에 그들은 경찰본부와 통신시설을 장악했다.
스스로를 혁명 의장이라고 칭한 바티스타는 소카라스 정부가 6월 1일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무산시키는 등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세명의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바티스타 역시 쿠데타로 헌법상 자유를 억압하며 선거를 무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1949년 지방자치법 국회 통과
1946년 대한노총 결성
1946년 동양척식회사 폐지, 신한공사 설립
1945년 미군 B-29기 동경 대공습
1939년 일본군, 海南島에 기습상륙
1938년 도산 안창호 선생 별세
1938년 3월 10일 밤 12시. 구 경성제국대학 병원에서는 평생을 항일 구국운동으로 일관해온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독립정신의 화신이자 민주주의의 선구자요, 위대한 정치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향년 60세를 끝으로 한 많은 일생을 마친 것이다. 평생 신명을 바쳐 목마르게 기다리던 조국의 광복을 불과 7년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도산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성리 도롱섬에서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부터 사당에 다니며 한문을 수학했는데 16세 때 두세살 위인 필대은이란 청년 선각자를 사귀게 되어 세계 정세와 나라일에 크게 눈뜨게 됐다. 1894년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등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본 그는 힘없는 나라의 비참한 운명을 깨닫고 애국의 뜻을 키우게 됐다.
도산은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에 취임해 초창기 임정의 기반 조성에 주력했다. 1923년 임정내부의 분열을 수습하고 민족운동의 통합과 임정개조를 위해 국민대표회의를 주도했으나 창조파 등 좌익의 반대로 실패한다. 1926년 독립운동의 역량을 통합시켜보려고 중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창립을 선도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본 경찰에 체포, 서울로 압송된 도산은 4년형을 받고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된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돼 고초를 겪으면서 중병을 얻어 보석, 입원 중 파란많은 일생을 마쳤다.“목인(일본 명치천황의 이름)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다” “낙… 심… 마… 오…” 이것이 도산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1937년 총독부 강권에 의한 간도 이민 실시
1933년 루스벨트 미국대통령 뉴딜정책 발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3년 3월 10일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1933년 제3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1934년 3월 4일 루스벨트가 취임했을 때 미국은 남북전쟁이래 최악의 위기인 대공황에 직면해 있었다. 매일 수천명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고 은행 80%가 더 심한 금융공황을 막기 위해 문을 닫았다.
절망과 두려움, 두 단어가 국민들을 휩싸고 있었다.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취임사에서 행한 일성이었다. 취임 이튿날 첫 조치는 나흘간 은행휴업이었다. 재무상태가 취약한 은행 200여개를 없애고 예금은 새로 발족한 연방예금보증공사에서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금융신뢰가 회복됐고 사장되어 있던 10억 달러 이상이 경제로 흘러들어왔다. 생산과잉으로 빚어진 대공황이었다. 농업조정국은 농부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6백만마리의 돼지를 도살케하고 면화경작지를 1,000만 에이커 이하로 줄이도록 했다.
경제는 최악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뉴딜계획`은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35년 4월 루스벨트는 공공사업국(WPA)을 설치해 건설사업을 펼쳤다. 일자리를 만들어 유효수요를 창출하려는 시도였다. 케인즈경제학에 따른 것이었다. 110억 달러의 자금으로 미술가, 문필가에서부터 벽돌공에 이르기까지 850만명을 공익사업에 투입했다.
뉴딜은 그러나 공황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1938년에도 실업자는 여전히 1000만명에 달했다. 뉴딜은 일관성도 없었고 효율성에도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를 구했고 다른 나라들이 전체주의로 돌아설때 미국을 자유국가로 지켜주었던 `확실한 지렛대`였다
1923년 중국, 중일조약 폐기 통고
1920년 국어의 표준발음에 대한 연구업적을 남긴 국어학자 남광우 출생
1916년 청록파시인 혜산 박두진 출생
1898년 독립협회, 첫 만민공동회 개최
1898년 3월10일, 종로 보신각 앞마당에 신분을 초월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독립협회가 주관한 첫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가 열린 이 날, 참석자가 1만 여 명을 헤아렸다. 당시 서울인구는 17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파였다.
부산 영도를 조차(租借)해 극동함대의 석탄 공급기지로 삼으려는 러시아의 침략야욕을 규탄하고 친러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이미 1월초에 러시아 수병들이 영도에 상륙하고, 한국의 재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한러은행까지 개설된 후였지만 독립협회는 이를 방관만 할 수 없었다. 고종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으나 정부가 조차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립협회가 부득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월남 이상재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민중들의 항의가 봇물터지듯 쏟아졌고, 이승만 등 청년 연사들은 열변을 토해 민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냈다. 참가자들은 이미 허가한 러시아 저탄소 조차를 취소 할 것돠 한러은행의 철수를 요구했고, 고종과 러시아는 만민공동회에 충격을 받았지만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역사 이래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연 대중 정치집회가 목적을 성취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고종과 조정은 두 달 뒤 서재필을 추방하고 7월에는 전국의 보부상을 하나로 묶은 '황국협회'를 발족시키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후 10월 28일부터 6일간 열린 제2차 만민공동회는 집회에서 채택한 ‘헌의6조(獻議六條)’ 결의안을 고종에게 전달해 고종 스스로 5조를 덧붙여 재가 공포토록 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고종은 익명의 역모 고발사건을 빌미로 독립협회 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독립협회 혁파령을 내리며 맞섰다. 만민공동회의 좌절이었다.
1876년 그레이엄 벨, 세계 최초로 전화실험 성공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3월 10일 세계최초로 전화실험에 성공했다. 전화선을 타고 처음 흐른 말은 "웟슨군, 이리로 와주게. 자네가 필요하네`라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전화통화의 마지막 실험을 위해 실험장치 앞에 앉았던 벨이 전원으로 사용하던 배터리용 황산그릇을 잘못 건드려 황산이 그의 옷에 쏟아지는 바람에 그는 엉겹결에 실험하려던 통화의 내용을 잊고 첫마디를 이렇게 다급하게 외쳤던 것이다. 웟슨군은 그의 실험조수로 이날 실험통화를 위해 2층 실험실에 대기중에 있던 상태였다.
1847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1870년 미국으로 이민온 벨은 농아자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아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기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26세에 보스턴대학 발성생리학과 교수가 된 그는 농아자에게 `소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얇은 막을 이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기기개발에만 전념해 마침내 이날 전화통화에 성공했다. 1922년 8월2일 그가 사망했을 때 미국의 전화시스템은 1분간 침묵을 지켰다. `전화의 아버지` 그레이엄 벨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1876년 독립운동가 장인환 출생
1873년 도덕적 열정과 선정주의적 경향을 가진 독일의 소설가 바서만 출생
1864년 동학 창설자 수운 최제우 대구서 처형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1824∼1864)선생이 1864년 3월 10일 효수됐다. 경주의 몰락한 양반 후손 출신으로 어릴적 성리학을 공부한 그는 조선왕조에 대한 비판의식과 유교와 불교, 선교의 장점을 융합,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하느님을 모신 존귀한 인격이라는 시천주 사상을 완성하고 동학을 창시했다.
그의 포교활동은 1860년대초 몇년 간으로만 국한되지만, 영남과 호남은 물론 충청도와 경기도까지 교세가 급속도로 확대됐다. 천주교의 한 파로 탄압받다가, 1863년 11월 경주에서 사악한 가르침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사도난정)는 죄목으로 체포돼 이날 대구에서 효수됐다. 문화관광부는 선생을 1998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1853년 청나라 태평천국군이 남경을 점령하고 수도로 함
태평천국군 난징(南京) 점령 관료들의 부패와 과중한 세금 그리고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경작지 부족으로 농민들이 유랑으로 떠돌아 무질서가 횡행하던 청조 말. 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훙수취안(洪秀全)이 나타나 청조타도와 계급평등을 외친다.
중국을 구제하기 위해 하나님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천주교리를 모방한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창시하자 소작인 등 하층민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모든 재산을 성고(聖庫)에 바치고 술과 담배, 아편을 멀리했다.
1851년 1월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세우고 스스로 천왕(天王)에 오른 홍수취안은 모든 요마(妖魔), 즉 우상숭배를 보호하는 청나라 조정과 이를 돕는 세력들을 타도해 지상천국을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거병한다. 이들은 청의 상징인 변발을 자르고 머리를 길러 장발적(長髮賊)으로도 불렸다. 점차 세력을 불려 후베이(湖北)성을 함락시키고 난징까지 점령(1853년 3월10일)한 홍수취안은 국호를 태평(太平)으로 하고 수도이름을 천경(天京)으로 정했다. 병력도 어느새 200만으로 늘어났다.
난징을 본거지로 한 태평천국군은 양쯔강 상류와 베이징 등까지 정벌을 시도해 한때는 중국의 18개 성 가운데 16개성을 장악할 만큼 성장했지만 지도층의 전횡과 내분은 몰락을 재촉했다. 결국 홍수취안이 병사(1864년)하고 난징도 외세의 힘을 빌린 정부군에 점령되면서 태평천국은 무너졌고 유토피아에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845년 러시아 민족주의를 지지한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 출생
1844년 스페인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 파블로데 사라사테 출생
1772년 독일 인도학의 개척자인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 출생
1628년 이탈리아의 의사.생물학자 말피기 출생 - 미시해부학의 기초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