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쇼팽 Op.3 '서주와 화려한 폴로네즈'
같잖은 인간들이 내 인생에 끼어드는 게 싫어서, 힘을 원했다.
원하는 것을 향해 손을 뻗거나, 원치 않는 것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힘을.
그 힘을 손에 넣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힘을 써서 해야만 할 일들이 내 앞에 있다.
누군가는 내게 은혜를 입었지만, 누군가는 나를 원수로 여긴다. 내게 남은 시간도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간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향해, 내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날 슐라흐타들은 떠올렸습니다. 미친 왕에게 지배당하는 공포를.
윤기가 흐르는 털과 튼튼한 네 다리를 가진 말이 세임의 회의장에 나타났을 때, 모두가 메두사의 얼굴이라도 본 듯한 표정들이었습니다.
"뭘 그렇게들 놀라나? 너희가 마자르인이랑 놀기 싫다길래 반품하고 데려왔다. 말은 누구나 좋아하잖아?"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도망 안 간다는 약속이고 뭐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 포모제 공작을 흘깃 바라보며 왕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게 '사람'을 데려왔을 때 잘 했어야지. 후회되나? 좋은 말로 할 때는 두 귀로 흘리다가, 정신이 번쩍 들 이벤트가 생겨야 반응이 오네."
"도대체 저희를 뭘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참다못한 비엘코폴스카 공작이 감히 어전에서 고함을 질러도, 왕의 푸른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나는 원래 또라이였다. 국민 욕받이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몸이지. 하지만 말이야..."
'재상' 글리터후프의 고삐를 움켜쥔 마자르인 벨러가 왕의 뒷 말을 이어받아, 좌중을 향해 선언했습니다.
"피아스트가의 세 번째 카지미에시가 누구에게 욕을 먹고, 누구에게 사랑받는지... 끝까지 거기 서서, 똑똑히 지켜봐라.
나는 연한 고기를 뜯으면서도 남의 빵조각에 손을 뻗는 놈들의 적이자, 창부들과 광대들, 농부들의 친구다."
더 나은 보편교회의 신자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나를 성 베네딕토의 규칙으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나는 낮잠과 패독 게임...아니 놀이보다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더 활동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느낍니다. (역설)신을 찬양하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전 폴란드의 국왕이자 마워폴스카와 쿠야비의 공작,
크라쿠프와 그니에즈노, 산도미에시, 루블린, 스텡지차, 비드고슈치, 클라이페다(메멜)의 영주이신,
정의로운 카지미에시 3세 폐하."
어우 닭살돋아... 역시 왕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건 내 취향에 안 맞아요.
우리 영감탱이가 전과목에서 능력치 두자리수를 넘기는 괴물이라 나만 고생이지.
하지만 재위 10년째에 달성한 관리력 17은 의미가 꽤 큽니다. 능력치 15 이상이면 그 분야에선 '뛰어난(masterful)' 거예요.
나를 붉은 물살에서 건져낸, 복자 산도미에르스키는 16세 때 능력치가 이미 저만큼이었죠.
내가 아버지처럼 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라는 뜻. 게으름은 치명적인 병이에요.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습니다.
아랫동네에 살고 있는, 짜증나게 잘난 놈도 조금은 나를 다시 보겠군요. 미덕/악덕 특성은 반대 성향의 인물들간에 관계도 페널티를 줍니다.
연대기가 시작된 이래, 쿠야비는 반역의 땅이었습니다.
선왕의 조카였던 레셰크 볼레스와보비치는 체포를 피하려 난을 일으켰다 병으로 죽었고,
그의 누이인 리크사 여대공의 시대에는 농민들이 '마녀에게 세금을 바치기 싫다'면서 들고 일어났으며,
그녀의 손녀인 프락시다는 전 폴란드의 여왕을 꿈꾸다가 알거지가 돼서 내쫓겼죠. 고로 답답해서 내가 뛴다.
"널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어. 그들이 뛰어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흰둥이가 신박한 제안을 해왔습니다. 쿠야비 백작령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농민들을 위해 고속도로를 뚫자네요.
언젠간 네 녀석의 빛나는 관리력을 따라잡을 테다. 공사 감독은 너니까 일해라 레셰크!
(쿠야비의 건설 비용 15% 감소, 번영도 증가)
어릴 땐 소시지 반찬 하나가 그리 맛있는데, 머리가 커진 뒤엔 집밥 팽개치고 전국 맛집 순례를 다녀도 허전할 때가 있어요.
작은 것에 만족하던 기억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게 주어져도 잠시 들뜨다 말 뿐 도로 허전해집니다.
내게 진짜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려면, 일단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걸 들이기 전에 좀더 신중해져야겠죠.
크루세이더 킹즈 2는 '가문을 키우는 게임'입니다. 왕조의 구성원들이 평생을 걸려 얻은 위신과 신앙심의 총합이 곧 게임의 점수죠.
기본적으로는 작위를 가진 가문원이 많을수록 위신을 얻는 데 유리하고, 이는 끝없는 정복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외부로의 확장이냐, 내 왕국을 꾸미느냐. 취향껏 즐기면 될 일이지만, 내 백성들을 배터지게 먹이는 성군 코스프레가 좀더 맘에 들어요.
일관되게 내정 플레이에 집중하다 보면, 영토의 크기가 국력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타이밍이 반드시 옵니다.
폴란드의 왕비, 콘스탄치아 실롱스카가 파격적인 청원을 해왔습니다. "동쪽에 살고 있는 용이 어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sister-in-law라는 저세상 표기가 뜨는 이유는, 그녀가 나의 아내이자 사촌누님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버그에요.
아마 사도좌의 관면을 얻는 데도 한 재물 퍼줬으리라 짐작되는, 가까운 친척간의 결혼이자 모계 결혼이었죠. 이게 다 엄마 때문입니다.
세임의 의장까지 지냈던 나의 외조부 볼레스와프 실롱스키는 말년에 매독을 앓았고, 그로 인한 광증으로 미쳐 날뛰다 결투 끝에 죽었습니다.
내 어머니 베르타는 볼레스와프 실롱스키의 막내딸이었습니다. 복자가 된 내 아버지와는 달리, 친정의 권력투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그녀는 박색인데다 몸도 약하고, 사내와 동침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신의 조카딸 콘스탄치아의 침실에 나를 밀어넣었습니다.
땅을 탐내 서로 죽여대는 실롱스크 공가에서는 저게 평균이었던 모양이죠. 우리 흰둥이가 새삼 대단해요. 왕 시켜준대도 안한다 버티고.
어쨌거나 그녀는 나같은 모질이에겐 과분한 존재입니다. 두 딸을 낳아 왕비로서의 의무를 다했고, 모두가 못났다고 멸시해도 꿋꿋이 견뎠죠.
헌데 뜬금없이 지도 밖으로 떠나버리겠다는 건... 사실상 이혼 요구입니다. 중국으로 떠난 캐릭터는 특수 사망 처리가 되기 때문.
내 결혼생활이 이모양 이꼴이 된 건, 어머니의 독단과 내 방탕함 때문이에요. 그녀에겐 죄가 없습니다.
자유롭고 싶어하는 그녀에게서 마지막 선택지마저 빼앗는 건 아닐까 두렵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면 사실대로 말해야죠.
새삼 그녀를 여인으로서 사랑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 나의 적법한 아내이자 이 나라의 어머니로서 존중한다고.
"절대로 안 되오. 당신은 여기 있어줘야 하니까."
"아무리 돌아선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지만, 그들이 네 가족이라는 사실까지 변하는 건 아니다."
...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죠. 대체로 동감합니다만, 그들도 나를 저렇게 생각해 줄지는... 자신이 없어요.
물론 우리 세대에서 피와 장미의 왕관을 쓰고 광대처럼 춤추는 역할은 내가 맡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야겠죠.
"재상 시켜준대서 왔는데, 강제 개점휴업당하고 말똥이나 치우는 기분이 어떤가?"
"엿같네요."
"말 참 더럽게 하네. 개자식 에메리크가 보내준 놈 맞구나."
"제가 폐하께 무슨 소릴 하건, 평생 까방권 준다던 약속은 꼭 지키십시오."
"알았으니까, 당분간은 찌그러져 있어. 쟤들이 제발 말똥냄새 그만 맡게 해달라고 너한테 와서 싹싹 빌 때까지만."
"비엘코폴스카의 오돈 공은 비위가 좋아서 잘 버티던데요."
"아, 걔는 말오줌 같은 술도 주면 잘 마시거든. 야로폴크랑 어울리더니, 같이 술독에 빠져버렸어."
자유롭고 정의로운 폴란인의 미치광이 왕과, 특수청소에 이골이 난 젊은 마자르인은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헝가리가 크로아티아를 공격했습니다."
"안 봐도 비디오네... 교황이 시켰겠군."
"헝가리의 국왕은 보편교회를 섬겨야 하며, 귀족들을 존중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성왕 이슈트반의 지엄하신 훈령이 그따위로 돼 있긴 해. 하지만, 대관식 하고 싶으면 조카를 또 때리라고? 너무하네..."
동네북 미클로시는 이번에도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크로아트인들은 뭔 죄야...
그의 아버지가 희대의 패륜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어도, 헝가리-크로아티아의 적법한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자.
바줄은 슬로바키아 대공 이슈트반의 손에 옹립되었기 때문에, 조카와 휴전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네요.
폴란드 대사가 에스테르곰의 궁정에 도착하여 겸손하게 자신의 이름을 아뢰자, 마자르인의 왕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고의는 아니었다. 네게 풀꽃의 왕관을 씌워준 이름없는 사제놈이 나한테 추천한 심부름꾼일 뿐이니까, 오해는 마라.
생각이 많았겠지. 신성한 왕관을 머리에 쓰기 위해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네 조카를 또다시 두들겨 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말이다.
끝장을 보기로 했으면, 그 숨통을 재빨리 끊어 고통을 줄여주는 게 자비다. 내가 기꺼이 네 공범이 되어주마. 우린 깐부잖아.
Człowiek dokonuje wyboru,
niewolnik jest posłuszny.
Az ember választ,
a rabszolga engedelmeskedik.
인간은 선택하고,
노예는 복종한다.
End title: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