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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3.8.25) 말씀/ 하박국 3 : 1 , 2
기도하는 선지자 "
하박국은 2장에서 좀 더 높은 곳인 성루로 올라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2 : 1)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으로 악과 재앙을 선포하면서 대조적으로 놀라운 세가지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한다는 것(4절)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확신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리신다는 확신입니다. 오늘 3장에서 하나님의 확신의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1 , 2절에서 하박국은 기도합니다. 다음 3~15절에서 하박국은 묵상합니다. 그 다음 6~19절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기도하는 하박국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게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 주는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박국에 선지자에 대해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하박국, 둘째는 주의 일에 대하여 부흥을 구하는 하박국,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긍휼을 구하는 하박국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3:2). 처음의 반응은 말씀을 듣고 놀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6절은 그가 얼마나 놀랐는가에 대해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내 앓기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몫 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 그의 심장은 뛰었으며, 입술은 떨렸고, 뼈는 녹았으며, 다리는 후둘거렸습니다. 이러한 떨림은 무엇을 말합니까?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선지자의 온 전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히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읽다가,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듣다가 말씀이 레마로 가슴에 꽃혀지는 경험말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전과 달리 감동도 무뎌지고 삶의 변화도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잔잔한 감동을 받거나 또는 아무 느낌 없이 말씀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데 하박국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두려움을 느꼈나요?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정확 무오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두려움의 체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상을 보았을 때 두려움에 떨었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그에게 계시하셨을 때 그의 마음은 심히 번민으로 가득차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단 7 : 15, 28 참조). 10:15절에서는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다니엘 10:15) 또한 시편 저자는 119편 12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니다. " 말씀을 들었을 때의 두려움은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을 주는 능력이요, 변화를 주는 능력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고 반석을 쳐서 부서트리는 방망이 같다고 하였습니다(렘23:29).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골수를 질러쪼개기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히 4:12). 그런데 말씀을 들어도 떨리지 않고 무감각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지만 사로잡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 하고 하인이 중풍병에서 즉시로 낫는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죄수들은 배를 타고 로마로 항해하는 중에 배가 풍랑을 만나 다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파의 위기에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밤에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붙잡고 믿음으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안전히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말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순종한다면 그대로 되어지는 일을 목격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2. 하나님의 일의 부흥을 기도하는 하박국
하박국의 두 번 째 반응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3'2). 주의 일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1장 5, 6절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회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회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회에게 고할지라 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바로 이것이 주의 일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변론을 하며, 하나님께서는 잘못 처결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3장 2절에서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시켜주옵소서." 여러분 부흥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흥이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또 이 부흥을 위해서 전에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하박국 3장 2절에서 나오는 "부흥"이란 말은 오늘날 사용되는 「부흥집회」란 말과는 거의 연관이 없습니다. 이『부흥하다』란 말은 "살아 있는 채로 보존하다, 진행하고 계신 이 일을 그대로 진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업이 잘 되고,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그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끌려가고 징계를 받고 매를 맞던 심판을 받던 그 일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는 그런 부흥을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 일은 선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인가가 잘 되고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부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 하나님의 역사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부흥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가 이런 부흥을 위해서 기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 일이 필요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1:12). 그들(바벨론)은 파멸하기 위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훈계하기 위하여 오는 것이었고, 심판하기 위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경계하기 위하여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일이 시행되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일이 또한 널리 알려지기를 바랬습니다. "주는 주의 일을‥‥이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3 : 2).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했던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2 :2).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고, 이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여 정녕 응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3 절) 브흥은 하나님의 뜻이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받아 새기고 기도하고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바벨론의 심판이 아닌 직접 주님이 재림하셔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고, 충성된 자와 게으른 자를 구별하여 상과 매를 주시고 선악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깨어 있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때를 때라 말씀의 꼴을 나눠주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주인이 보면 복 있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마태 24:45-46).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하실 일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말씀대로 살기기 쉽지 않습니다. 김호권사님은 매주 교회 꽃꽂이를 섬기십니다. 일을 갔다 와서 피곤한 가운데 무더운 날시 중에도 한 주도 빼지지 않고 정성스럽게 섬기십니다. 주의 맡기신 일로 받아 기쁨으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에게는 매주 시간표를 전해서 중국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 기쁨이요 감사 제목입니다. 어느덧 몇 해가 지나고 지난 22일은 중국형제들 이전경, 장지걸, 모표 세 분이 첫 졸업을 했습니다. 가본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이렇게 잊어버립니다. 대신 니 따 축하 졸업 선물을 드릴 겁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 바쁘고 분주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쉽지 않아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 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점점 때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1-12)
3.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긍휼을 기도하는 하박국
세 번째 선지자의 반응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흘을 잊지 마옵소서" (3 : 2).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선포된 모든 재앙들은 유다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한 죄를 범하고 있었으며, 이기적인 야심과 탐심을 품고 있었고, 서로를 착취하고, 술에 취하기를 즐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진노 중에라도 긍흘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 합니다(3' ).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께 득죄하였을 때, 모세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긍흘을 구하였습니다(출33 장 참조).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를 거역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긍흘을 구하였습니다(민 14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우심을 좇아서는 죄악을 반드시 징계하실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크신 사랑을 따라서 또 한 죄를 씻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70년 간의 포로 생활 이 끝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그들의 땅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성벽이 재건되자 이스라엘은 또 다시 범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들의 죄악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유다 뿐 아니라 누구던지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시편 103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 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시 103 : 10).
하나님은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긍휼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못하였을지라도 언제나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아기로 오셨을 때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예수님을 우러러보며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예언하였습니다(눅 1:72). 우리에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 자녀문제, 가정문제, 장래 취업문제, 결혼 문제등이 있지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이 시대는 죄 가운데 있습니다. 날마다 범죄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도 죄를 본받아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진노 중에서도 귱휼히 여기시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긍휼의 복음을 들고 주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해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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