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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論文] . 칼럼 스크랩 앙리 루소의세계
曉 山 추천 0 조회 22 09.02.25 20: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환상과 전설의 素朴派 앙리 루소(HENRY ROUSSEAU)
(1844년 5월2일 출생 ~1910년 9월2일 사망 66세>



(앙리 루소의 싸인)


오늘 날 루소를 환상적인 천재로, 또는 입체파의 선구자적인 존재로
기록하는 이유는 그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환상과 전설,
그리고 단순화된 형태와 기하학적인 구성에 연유한 것이다.
 
 
Myself,Portrait-landscape,by_Henry_Rousseau1890[6].jpg
나자신 ,초상 :풍경-캔버스,油彩 143 by 110.5cm
 
1890년에 그린 것이며 루소 나이 44세 때이고 아직 세관 직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지만 그는 화가로서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명제의 뜻은 자화상 배경에 풍경이 보인다는 뜻이다.
배경은 파리 만국박람회 때의 풍경이다.
 
새로운 과학의 경이와 더불어 이국적 풍물이 공존하는 이 만국박람회는
현실과 꿈울 낳게 하려는 루소의 회화세계와 서로 공통되는 점이 많았다.
 

 

The_Snake_charmer,byHeneryRousseau1907-500.jpg
 땅꾼 1907년-캔버스,유채 168by189.5cm
 
우아한 곡선으로 그려진 열대 식물의 윤곽과 기괴한 꽃들은
달빛에 비치어 엷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주황색 깃털을 가진 새 옆에서 두 마리의 뱀들이 땅꾼이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추어 흉물스럽게 춤을 추고 있다.
 
긴 머리를 산발한 검은 마술사는 눈만이 빛나고 있고,
머리 위 나무 가지 위에서도
 큰 구렁이가 몸을 꿈틀거리며 땅꾼 옆으로 다가온다.
 
밀림의 환상을 그린 작품 중에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 작품이다.
이 그림은 루소의 친구 도로네가 자기 어머니의 부탁으로
루소에게 부탁한 작품이다.
 
루소는 이따금 도로네 부인으로부터 인도 여행담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인도의 풍속적인 땅꾼이 구상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앙리루소450-1[1].jpg
꿈-1910년,캔바스,유채 204 by 299 cm 부분.
 
위에 보여지는 '땅꾼'작품과 같이 밀림의 환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루소가 사망한 해에 그린 최만년 작품이다.
 
분홍,옥색의 꽃들이 피어있고 여러모양의 식물들이 엉켜 있는 가운데
땅꾼의 피리소리를 듣고 있는 나체의 여인과 사자와 코끼리가
귀를 귀울이고 있는 환상의 세계이다.
 
원시림에 있는 소파를 보고 일부 평론가들이 당황하여 루소에게 물었더니
루소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있는 여자는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였다.

 

 

HENREY_ROUSSEAU-즐거위하는_광대들1906년경450.jpg
즐거위하는 광대들-1906년경,캔버스,유채.146 by 114 cm
 
원숭이가 등장하는 밀림을 소재로하는 그림은 5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소가 그린 열대 원시림은 환상의 낙원이요,꿈의 결정이다.
 
그러나 그 꿈은 공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현실을 보고난 후 형성되었다고 한다.
 
밀림에서 그려진 나무와 꽃은 파리식물원에서의 관찰로 출발한 것이다.
"이 온실에 들어와 이국의 색다른 식물을 보고 있으면,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루소는 평론가에게 말한 적이 있다.
 
식물원은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 중의 하나이다.
루소는 식물원에 자주 들러 식물을 많이 보고 연구를 하였으나,
화면에 그려진 모양들은 실제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그림 안에 있는 괴물들이나 새 역시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동물로서
루소의 공상 속에서생각했던 것들을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루소LA_BOHEMIENNE_ENDORMIE_사자달잠자는여인-1.jpg
1897년에 그린 이 그림 잠자는 집시에서 보여주는
명쾌한 기하학적인 구성과 선명한 색채,몽환적인 분위기는
가히 천재적이며 그의 특질이 가징 잘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루소UN_SOIR_DE_CARNAVAL-1.jpg
 사육제의 밤-1886년경, 캔바스 ,유채 116 by 89 cm
 
루소의 초기 작품 중의 하나이면서 1886년 앙데팡당 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밤 하늘에 휘엉청 달빛은 밝고 ,검은 나무의 그림자는
사방을 감싸며 조용한 밤의 분위기가 흐른다.
 
카니발에 나가면서 입던 舞服을 그대로 입은 채
두 젊은 연인은 손을 잡고 깊은 연정을 나눈다.
 
화면 전체가 검푸른 청색과 검은 색으로 메워져 있으나,
달빛과 남자의 유니크한 흰 옷은 우리에게 淸雅한 감정을 준다.
 
아마 이 여자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루소의 첫 애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나날의 정겨웠던 회고록이 화면에서 스며 나오는 듯 하다.
 
 
HENREY_ROUSSEAU-꽃1895~1990년경.jpg
꽃-1895~1990년경 캔버스 油彩 61 by 49.5 cm
 
루소는 꽃을 테마로 상당히 많은 그림을 남겨 놓았으나
거의 모두 동일한 수법이다.
 
단순한 구도에 빽빽이 꽂아 놓은 꽃들로 거의가 공통적이다.
꽃그림에서는 공간을 단순화시키고 배경은 단지 막을 내린듯 차단시켰다.
 
꽃들도 꽃잎이나,잎맥까지 자세히 그렸으나 현실과는 다른 창작에 의한 꽃이다.
역시 루소의 초현실감을 준다.
 

 

HENREY_ROUSSEAU-꽃1909년450.jpg
Rhc-1909년 캔버스 ,유채,46 by 33 cm
 
르동이나 고갱이 그린 꽃은 현실의 꽃인데도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지만,
루소의 꽃은 꽃의 명확하고 평면적이어서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HENREY_ROUSSEAU-장미빛_양초1908년경450.jpg
장미빛 양초-1908년경 캔버스 유채 16 by 22 cm
 
루소는 평생 3 점의 정물화를 그렸다. 그것도 만년 작품인데 그 당시
입체파 화가들이 정물화를 집중적으로 그리는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였다.
 
아마 이 정물화를 통하여 장차 새로운 미술운동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HENREY_ROUSSEAU-어린이의_초상1908년경450.jpg
 어린이의 초상-1908년경. 캔버스 유채67by52cm
 
루소 만년에 그린 작품이다.
 
루소의 초상화 중에서 배경에 다른 사물을 그리지 않고 
푸른 하늘로만 처리된 작품은 아마 이 작품 하나뿐인 것으로 안다.
 
들은 희고 빨간 꽃들이 피어 먼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빨간 바탕에 흰 점박이 옷을 입은 어린이가 화면에 가득히 앉아 있다.
 
어린이는 손에 인형과 꽃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이다운 표정과 몸가짐은 아니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듯한 맑은 눈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HENREY_ROUSSEAU-인형을_가진_어린이1903년경450.jpg
 인형을 가진 어린이-1903년 경 캔버스 유채 100 by 81cm
 
인형을 든 아이가 화면에 가득히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루소에게 이와 비슷한 어린이의 초상이 몇 점이 있는데
모두가 어린이의 얼굴로 그려지지 않고 어른스러웠다.
 
루소 자신이 동심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어린이로 보지 않고
자기와 대등한 위치에서 보고 있어 이러한 표정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한아름 꺾은 꽃을 옷자락에 담고 있는 어린아이의 허벅지와 복슬 복슬한 두 볼은 매우 우량아이면서 강한 인상을 풍기도 있다.
 
짙은 풀밭에 빨간 꽃과 흰 꽃이 청순한 동심 세계와도 같이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

 

 

HENREY_ROUSSEAU-호랑이사냥1904.jpg
호랑이 사냥-1904년 이전 캔버스 유채 38 by 46 cm
 
루소의 그림에는 사진, 삽화,판화 등에서 착상한 것이 많았다.
이 작품도 당시의 잡지에 실린 에른스트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인물이나 흰 말이나 호랑이나,
모든 현실감은 사라지고 꿈 속의 영상과 같이 원만하고 조용해진다.
 
아라비아인의 빨갛고 노란 색색의 의상은 분홍의 모래 색과
따사로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멀리 보이는 검은 산은 흰말을 한층 선명하게 浮上시켜 주고,
우측의 두 포기의 식물은 루소 특유의 개성을 잘 살려주고 있다.
 

 

HENREY_ROUSSEAU-비행선(애국호)이_뜬_풍경1907~8년.jpg
 비행선(애국호)이 뜬 풍경1907~8년.캔버스 유채
 
루소는 당시 좋지못한 소재로 취급되어 있는 근대적인 현실을
재빨리 자기 풍경화 안에 도입한 화가였다.
 
그는 1890년에 그린 <나 자신, 초상:풍경>에서 에펠탑을 그리고,
이후 비행선이나 복엽비행기가 파리 하늘에 나는 것을 보고
그것 역시 자기 풍경화 안에 그려 넣었다.
 
움직이는 것, 나는 것,진기한 것에 대하여 그는 어린이들과 같이 호기심이
많았고 ,원근법이나 기교면에서도 다분히 동화적이며,물체의 단순화
사물의 위치 등 벌써 실경과는 멀리 떨어진 창작적인 내용인 것으로 보아
루소는 이미  異彩派들이 추구한 예술 활동을 먼저 하고 있었다.
 
후일 입체파 화가들중에서도 에펠탑,풋볼 시합,비행기 등을 그렸다.
 
 
HENREY_ROUSSEAU-파리_근교의_제작소_1890~3.jpg
 파리 근교의 제재소-1890~93년 캔버스,유채.25,5 by 45.5cm
 
루소가 제작한 그림 가운데 가징 많이 다루었던 소재가 풍경이다.
 
만년의 루소의 어느 편지 내용에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크고 순수한 사랑의 대상
(1888년에 죽은 처 크레망스를 가리킨다.)을 잃어버리고
나는 낙담하여 나의 생활은 마치 철학자와 같이 되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존경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만이
내가 사랑하는 전부였다."
 
이 작품은 1890 년대 초기 루소의 풍경화의 대표작으로서
전체적인 균형,순수한 분위기,감미로운 색채로 펼쳐지는
자연에 대한 루소의 감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HENREY_ROUSSEAU-풋볼을_하고_있는_사람들1908년450[1].jpg
 풋볼을 하고 있는 사람들-1908 년 캔버스 유채,100 by 81cm
 
슬로우 비디오를 보고 있는 듯한 완만한 동작과 팔자 수염을 단
선수들의 표정이 유모러스하다.
 
이 그림 역시 정면에서 본 구도로 ,앞에 넓은 면적을 깔고 삼면의 공간은 누런 나뭇잎 하나 하나를 열심히 그려 놓은 晩秋(만추)의 어느 공원 풍경인 것 같다.
 
이 그림은 풋볼을 하는 것이라고 그렸는데,
핸드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정확히 알 수 없다.
 
루소로서는 풋볼을 하든 핸드볼을 하든 상관이 없고, 다만 사람들의 운동감에만 흥미를 갖고 루소의 독자적인 풍경화의 시스템안에 넣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근대적 현실에 눈 뜨기 시작한
루소의 정신세계의 일면을 말해 주는 것이다. 
 

 

War,by_Henry_Rousseau1894-500.jpg
 전쟁의 여신-1894 년 캔버스 유채 114 by195 cm
 
흑마를 달리는 트러블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가는데 마다 공포와 절망과 눈물과 폐허를 남겨 놓을뿐.'이라고
화면 뒤에 적혀 있다.
 
이 그림은 同鄕의 시인 알프레드 쟈리의 추천으로 문학 잡지'리마제'의
삽화로서 그려졌는데, 당초 잡지사측의 부탁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란
내용인데 루소는 내용과는 달리 전쟁의 참화를 그렸다.
 
괴물처럼 보이는 흑마 위에 머리를 풀어헤친 전쟁 여신이
주검이 깔린 숲속을 질풍처럼 달린다.
 
음상한 까마귀는 시체 위에 앉아 있고,피 빛으로 물든 구름은
한층 전쟁의 공포를 더해 주는 것 같다.
 
루소가 49세 때 퇴직후 본격적인 畵業을 시작할 무렵에 그린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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